🍯 오랜 시간 졸인 마음은 졸인 잼으로 푸는 지혜

2021.4.17

<토요뉴스: 문학/교육>

🍯 오랜 시간 졸인 마음은

졸인 잼으로 푸는 지혜

『 같이 밥 먹을래? 』

큐레이터의 한마디: 요리는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일입니다. 스스로 요리한 음식을 선물할 때, 꽁했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고마운 마음이 피어납니다.

OX퀴즈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의

주인공 아이다는 블랙베리를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검은 색이라며 성게 맛에 비유한다.

정답은 뉴스레터 본문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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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고양이 때문에 한번은 친구와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출장 때문에 알렉스를 일주일간 친구에게 맡긴 게 원인이었다. 알렉스는 사람을 잘 따르지만 다른 고양이의 화장실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드나들며, 심지어 다른 고양이의 집까지 차지하곤 한다. 알렉스 때문에 함께 지내던 친구의 고양이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겨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알렉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친구는 알렉스가 조용조용 다니지 않아서 번거롭다는 내용을, 내가 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SNS에 올렸던 것이다. 알렉스를 이제 주인의 품으로 돌려보내게 되어 시원하다는 내용에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누군가 내 자식이나 가족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들은 것처럼 파르르 손끝이 떨렸다.

유치하게 댓글을 달고 그녀와 ‘똑같은 사람’이 되었다. 화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 심각하게 ‘절교’란 글자까지 떠올리고 있을 때, 내 마음의 빗장을 푼 건 친구가 말없이 건네준,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사과잼이었다. ‘미안해.’ 세 글자가 적힌 쪽지와 함께 건네준 사과잼.

©Jam mascot by @eejitlikeme

사과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사과잼을 주었던 걸까? 작은 락앤락 용기에 담아준 잼은 한두 번 먹을 양에 불과했지만, 사과잼을 보자 화가 언제 났었냐는 듯 이내 풀어졌다.

“사과가 있길래 그냥 한번 만들어봤어.”

잼은 꽤 오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불 앞에 서서 타지 않게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친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그녀가 들였을 정성과 시간을 생각하니, 이 사과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위해 잼을 만든다는 것은 이런 마음일까.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이중종신형을 선고받은 남자 사비에르와 그의 약혼녀 아이다가 주고받은 서신을 엮은 책이다. 남녀가 주고받는 편지 형태의 소설은 고전적인 낭만에 빠져들게 하는데, 『A가 X에게』는 편지로 쓰인 소설 중에 가장 완벽한 형태라고 단언할 만큼 사랑하는 책이다. 그건 아마도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만날 수 없는 절박한 관계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이다가 된 심정으로 만약에 사비에르가 감옥에서 나온다면 어떤 음식을 해줘야 할까 생각했었다. 책은 커피, 빵, 수프를 제외하면 음식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음식에 대한 것이다. 아이다가 작은 정원에서 블랙베리를 따는 장면이 있다.

“블랙베리를 따다 보면 손가락이 빨갛게 물들죠. 그리고 맛은, 그러니까 색깔이 아니라 맛은, 검은색이에요.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검은색. 해저에 살고 있는 무언가의 맛이랑 비슷하죠. 성게나 다른 극피동물도 비슷한 맛일 거예요. 블랙베리 맛만큼 강하거나 자극적이진 않겠지만,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냐고요? 몰라요, 미 구아포.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어요.

그 향 기억해요? 블랙베리 향? 특히 열매가 익기 시작할 때쯤 잎에서 나는 그 향 말이에요. 저는 그 향을 너무 사랑해요. 그 향을 당신이 있는 감방에 전해 주고 싶네요.”

“블랙베리를 삼 킬로그램을 땄어요. 잼을 열 병이나 만들 수 있는 양이죠. 절대 설탕을 많이 넣으면 안 돼요. 성게 맛을 몰아내면 안 되니까. 그런 다음 섭씨 이백 도로 끓이는 거예요.”

-존 버거, 『A가 X에게』 중에서

어느 여름날, 스콘을 구워서 블랙베리 잼을 발라서 먹는데, 블랙베리를 따던 아이다 생각이 났다. 더운 여름날, 머리숱이 많고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의 아이다가 하얀 면으로 된 원피스를 입고 이마의 땀을 훔치며 블랙베리를 따서, 그것으로 잼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장면을 혼자 상상해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빵을 굽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고맙거나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잼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예쁜 병에 스티커 하나 더해 마음을 전하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졸여서 응축된 달콤함은 누군가를 향한 내 마음을 닮는다.

정답 O

아이다는 블랙베리의 맛은,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검은색,

해저에 살고 있는 성게와

비슷한 맛일 거라고 말한다.

도서요약본 읽기

같이 밥 먹을래? 여하연 지음
30대를 이제 막 지난 저자는 자신의 일상과 연애,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여유로운 시선으로 풀어놓는다. 마치 이웃집 언니처럼 때로는 답답한 마음을 유쾌하게 긁어주고, 때로는 내 마음을 안다는 듯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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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문학 뉴스레터에서 『말테의 수기』를 읽고, 고유한 죽음에 관한 계획이 있는지 여쭈었었는데요. 어려운 질문일 수 있었는데 두 분께서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 한 분은 “평범하게 살다 가고 싶네요. 소원이 있다면 요양원이 아닌 제 집에서 눈 감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해주셨고 또 한분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살아있는 장례식’을 치루고 싶습니다. 유언도 그때 남기고 멋드러지게 영상도 남겨서 두고두고 애들이 보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소감 남겨주신 두분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작품 『같이 밥 먹을래?』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었을 때, 또는 고마울 때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요리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소감과 사연을 보내주시면, 다음 토요 뉴스레터에서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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