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여름은 언제 시작되나요? 저는 물병에 보리차 티백을 담아 냉장고에 넣는 날을 여름의 시작으로 삼곤 합니다. 지난 주말, 물병을 냉장고에 넣으면서 작게 낙담했습니다. 역시 엉망인 일상을 실감하는 데는 냉장고를 열어보는 것 만한 게 없더군요. 말라 비틀어진 식재료와 과일, 유통기한이 지난 양념류를 분류해 버리고 정리하면서 휴일을 보냈습니다.
집안의 '터줏대감'인 냉장고 없는 삶,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냉장고가 우리 일상에 등장한 건 생각보다 꽤 근래의 일입니다. 가정용 전기 냉장고는 1910년 미국에서 최초로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야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해요. 식재료 보관이 간편해지면서 이를 둘러싼 식재료 저장법 등 일상의 지식 역시 냉장고 한켠으로 쳐박혔습니다.
무엇보다 냉장고는 음식물 쓰레기 발생에 일조합니다. 한국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중 28.7%는 음식물 쓰레기, 그 중에서도 약 10%는 건드리지도 않은 채 보관만 하다가 버린 것들이라고 해요. 음식물 쓰레기가 썩으면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등 영양 섭취와 관련된 온실가스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발생량의 30%에 달합니다. 교통수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13%임을 감안하면 우리의 식생활, 식습관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4월30일(토) 오후 열렸던 첫 번째 소셜트립 '오늘은 채소를 만나는 행동'은 이처럼 '문제적' 가전제품인 냉장고의 쓸모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냉장고 속 채소는 겉으로 신선해보여도 이미 영양분은 손실된 경우가 많다고 해요. 보존기간이 긴 것과 건강하게 보관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라는 거죠.
소셜트립을 이끌어 준 박혜윤 생활학자는 식재료를 구입하기 전 두 가지 질문을 기억하자고 말합니다. '이 식재료는 언제 태어났지?' 요즘은 계절과 상관없이 다양한 식재료를 대형마트에서 구할 수 있어서 어느 것이 제철 식재료인지 마음을 쓰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잖아요. 하지만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은 계절마다 다릅니다.
또 '이 식재료는 어떻게 살아왔지?'라는 질문도 중요합니다. 적절한 보관방법과도 연결되기 때문이죠. 저는 강의를 들으면서 당근이나 무 같은 뿌리채소들은 냉장고 안에서도 "서서 자라려고 노력을 한다"라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식재료 역시 '생명'이라는 걸 깨닫고 뭉클했달까요. 소셜트립 참여를 위해 멀리 해남에서부터 온 행동구독자 테이님은 식재료에 대한 두 가지 질문이 단순히 식재료 뿐만이 아니라 "사람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해석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다름'을 생각하는 이야기였다고요.
- 참고문헌 <사람의 부엌>(류지현 지음, 낮은산 펴냄, 2017). <채소 저장 안내서>(ver.1) (비매품, 생활학자 박혜윤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