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서점에 있는데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시집을 고르더니 내게 이렇게 물었다. “시인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냥 시집 내면 되죠.”라고 대답했다. 그 만남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나는 그 여학생과 함께 시집 준비를 했다. 마침 그 즈음 같은 나이의 시인지망생이 있어서 2인 시집을 내게 되었다.

먼저 독립출판사를 만들었다. 그전부터 ‘시화사’라는 이름으로 동인지나 마을 소개 책을 만들었는데, ‘종이울림’이라는 이름을 새로 짓고 본격적으로 독립출판을 시작했다. 서로 모르는 두 여학생이 만났다. 한 명은 여고생이었고, 또 한 명은 학교밖 청소년이었다. 둘은 의기투합해 시집을 묶었다. 펀딩으로 제작비를 충당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래도 책은 냈다. 제목이『십팔시선』(종이울림, 2018)이다.

 독립출판은 작가가 소비자나 제작자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하겠다는 책 운동이다. 인디 음악도 마찬가지다. 독립영화도 있다. 이러한 인디펜던트 예술은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저예산 예술 활동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라는 노래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장기하와 얼굴들’도 처음엔 인디 밴드였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집에서 자체 제작한 음반들을 직접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최근에 브런치 같은 개인의 글쓰기를 지지하는 플랫폼도 많아졌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지만, 글쓰기 수업으로 살아간다. 글쓰기 수업 이후 학생들이 창작을 한 후 공동 시집을 내거나 작품집을 내는 과정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나 최근에는 직접 학생들이 기획하는 책을 내는 경우가 많다. 독립출판 문화가 저변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K에게서 전화가 왔다. K는 문화 기획이나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무척 바쁜 사람이다. 나는 K 같은 사람을 ‘문화 의병장’이라 부른다. K는 내게 정성을 다해 자신이 알고 있는 생각이나 경험을 나누어 준다. K는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스스로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긴다. 그가 하는 일을 자원봉사라 할 수는 없지만 그의 활동으로 인한 선한 영향력은 자원봉사와 많이 닮았다.

 독립출판은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더라도 신념을 갖고 의미 있는 책을 만드는 일이다. 봉사도 독립출판을 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2인 시집『십팔시선』을 낸 두 작가 김나리다와 윤주도는 이제 이십대 초반의 나이가 되었다. 한 명은 성평등 관련 활동을 하고, 또 한 명은 녹색당 활동을 한다. 시를 쓰는 마음과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이 뜨거워 다행이다.

 나는 독립출판으로 만들어진 책들이 스스로 밀고 나가는 마음을 담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원봉사를 하는 마음도 스스로 밀고 나가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행동일 것이다. 나는 독립출판을 한 책을 보면 반갑다. 그 책들은 모두 뜨거운 열정을 지닌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에서는 봄빛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발견의 기쁨을 계속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