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힘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인 것 같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첫 번째 관계인 어머니와의 관계부터 아버지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까지 소규모 사회생활을 겪고 나면 집 밖에 더 어렵고 힘든 관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질풍노도의 시기의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고 힘들었다. 뭣도 모르고 시작한 첫 사회인 유치원 시절을 빠르게 지나쳐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총 12년이 거의 내내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내 성격의 문제였을 수도 있는데 동갑내기들과는 늘 어려웠다. 그나마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잠시 잠깐 끌 수 있어서 버티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닌 경험은 극명한 장단점을 남겼다. 이 시기에 정체성이 만들어지면서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가 시시해지기 시작했고 미대입시를 준비하러 가는 학원이 제일 재밌는 공간이 되었다. 우선순위가 바뀌니 교육 과정 이수를 위해 억지로 학교를 가다시피 했다. 그러나 미술이 공통분모가 아닌 친구들과 지내면서 또래집단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편 너무 어린 시절부터 특정 성향으로 고립되어 굳어지는 것이 좋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절에도 나중에 회화과로 복수전공을 하면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꽤나 즐겁게 보낸 것을 생각하면 결국엔 공통분모의 사람들을 찾아다는 것이 인간의 평생 숙제인가 싶다. 커뮤니티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직장이 없기 때문에 올 수 있는 고립감이었다. 사람을 만날 일이 없어 관계를 어려워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웬걸.. 잠깐 다녔던 회사 생활 때보다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있다. 마치 물 위를 고요하게 유영하는 백조(아 제가 백조 라기보다는)의 아래 다리가 미친 듯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로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출퇴근이 없어 시간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지만 그 아래로는 스케줄 관리부터 계약서, 작업, 미팅 등을 혼자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지만 없는 그런 상태로 쭉 간다. 


외주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대면 미팅을 한다. 코로나 완화 정책 이후로는 대면 미팅을 선호하는데 직접 보고 의견을 주고받아야 방향 설정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뢰도 상승에도 도움이 된다. 비슷한 업계의 사람들과의 친분도 쌓을 수 있어서 의외로 클라이언트가 종종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의 수는 사람들을 만나야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미팅을 선호한다. 온라인상 팔로워가 많아도 이들의 오프라인으로 끌어와야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상 만남을 많이 만들기위해 노력한다.


외주 작업 이외에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사람들을 만날 일 제법 많다. 책 관련 행사나 강의를 열게 되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소통을 하다 보면 이 만남이 일과 관련된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11년 동안 프리랜서로 살아도 생각보다 고립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학창 시절보다 지금의 삶에서의 인간관계가 더 즐겁다. 학생 시절의 편협한 시각과 부족한 경험으로 좁은 관계밖에 만들어지지 못했다면, 일과 취향으로 이루어진 성인의 관계는 안정적이고 풍요롭기 때문이다. 물론 학창 시절에는 지금 갖지 못하는 또 다른 어리숙하고 싱그러운 경험들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다시없을 경험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학창 시절의 인간관계가 어려웠다고 해서 성인의 인간관계가 똑같이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어릴때도 알았다면….!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 페어나 전시를 다니며 온라인의 관계를 오프라인으로 끌어오는 것은 다른 수준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같은 분야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벼운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정기적인 모임이 있어도 좋다. 내 경우, 오전에 하는 운동이 그것인데 신체적으로 힘든 행위를 다함께 해나가는 것에 대한 동지애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주3일 오전에만 만나기 때문에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장점이다.



고립되지 않은 것은 비단 프리랜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주요 숙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