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나 타먹으려는 공상부터 깨트려야 합니다.





💬 님한편을 같이 읽어요! 다섯 번째 《한편》의 편지는 졸업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소설 『상록수』를 기억하시나요?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은 실존 인물인 최용신을 모티브로 삼았는데요. 최용신은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이맘때 졸업했답니다. 루씨여학교의 우등 졸업생을 소개하는 기사와 나란히, 농촌으로 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최용신의 글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어요. 열아홉 살의 최용신이 쓴 한 편과 『상록수』의 첫 대목을 함께 읽어요.

원산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문을 나선 금년 봄 졸업생은 20명이니 4년간 그들의 쌓은 공도 적지 않거니와 앞으로도 역시 학해(學海)에 몸을 넣어 장차 조선 사회에 일비지력이라도 도우고서 든든한 기초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의 지망들을 숫자적으로 따져 보면 이화음악과 1인, 이화유치사범 1인, 경성사범연습과 1인, 조선의학교 1인, 협성여자신학교 1인, 기타 상급 학교 6인, 미정 10인이다. 그들 가운데는 장차 음악과 문학에 성공할 소질을 가졌고 또한 이 방면에 노력하는 두 규수가 있으니 즉 전자는 박현숙 양이요, 후자는 최용신 양이다.
 
최 양은 농촌 여성 교육 문제에 많은 연구를 하는 중이니 그가 언제든지 글을 쓰면 ‘조선의 여성운동은 농촌에서부터 일으키자’ — 이것이 내용의 중심이 된다 한다. 그러므로 그는 농촌 문제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한다. 그는 또한 독실한 신앙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본받아 자선의 길을 밟고자 우선 경성 협성여자신학교에 입학해 수양에 노력하리라 한다.

오른쪽 아래가 최용신(《조선일보》 1928년 4월 1일 자 기사에서)

수일이 불과해 중등의 학업을 마치게 되니 기쁨도 있으려니와 반면에는 애연한 느낌도 없지 아니하나, 인연 깊고 정 쌓인 루씨원을 떠나게 되니 형편과 처지가 다 같은 우리들은 이 자리를 당해 회고의 느낌과 새로운 희망과 포부를 가졌을 줄 안다.
 
이제 우리는 교문을 떠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과연 우리의 전도(前途)는 평탄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는 즉 이 사회에 부족함이 있고 없는 것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무엇을 요구하며 누구를 찾는가? 그는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신교육을 받고 나아오는 신인물을 요구한다. 그중에서도 더욱이 현대 중등 교육을 받고 나아가는 여성들을 가장 요구하는 줄 안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출중해 그런 것이 아니라 조선의 재래(在來)를 보면 남성들의 다소의 노력과 활동이 있었으나 그 세력과 활동으로써 그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것은 남성의 노력이 부족하며 활동이 적은 까닭이 아니다. 원래 이 사회의 조직은 남녀 양성으로 된 것이다. 자고이래로 우리 조선 여성이 반만년 동안 암흑 중후에 묻혀 사회의 대세는 고사하고 자기 개성조차 망각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남녀 양성을 표준한 이 사회에서 남성 편중의 활동과 노력할 뿐만으로써는 원만한 발달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우리 교육을 받은 여성이 자각하고 책임의 분(分)을 지고 분투한다고 하면 비로소 완전한 사회를 건설할 줄로 믿는다. 이 의미에서 중등의 교육을 마친 우리들은 자기의 이상하는 바에 의해 자기 힘자라는 데까지 노력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다.
 
이제 그 활동의 첫걸음은 무엇보다 농촌 여성의 지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난 고로 현실 농촌의 상태를 잘 안다. 그러므로 내가 절실히 느끼는 바는 농촌의 발전도 여성의 분투함에 있을 줄 안다. 참으로 현대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북데기 쌓인 농촌을 위해 헌신하는 이가 드문 것은 사실인 동시에 유감이다. 문화에 눈이 어두운 구여성만 모인 농촌이 암흑에서 진보되지 못한다 하면 이 사회는 언제든지 완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 농촌 여성의 향상은 중등 교육을 받은 우리들의 책임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중등 교육을 받고 나아가는 우리로 화려한 도시의 생활만 동경하고 안락한 처지만 꿈꾸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농촌으로 돌아가 문맹 퇴치에 노력하려는가?
 
거듭 말하나니 우리 농촌으로 달려가자! 손을 잡고 달려가자!

“이번에는 금년에 처음으로 참가헌 여자 대원 중에서 제일 좋은 성적을 나타낸 ××여자신학교에 재학중인 채영신 양의 감상담이 있겠습니다.”
하고 회장은 오른편에 여자들이 모여 앉은 데를 바라다본다. 남학생들은 그편으로 머리를 돌리며 손뼉을 친다.
‘채영신’이라고 불린 여자는 한참 만에 얼굴이 딸깃빛이 되어 가지고 일어나더니,
“전 아무 말두 허기 싫습니다!”
하고 머리를 내저으며 여무지게 한마디를 하고는 펄썩 주저앉아 버린다. 사회자는 어쩐 영문인지 몰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뜻밖에 미리 약속까지 하였던 연사가 말하기를 딱 거절하는 데는, 사회자와 청중이 함께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말헙시다.”
“그 대신 독창이래두 시키세.”
상대자가 여자인 까닭에 더욱 호기심을 가진 남학생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음악회에서 억지로 끌어내어 재청이나 시키는 것처럼 짓궂게 박수를 하며 야단들이다.
“간단하게나마 말씀해 주시지요.”
사회자는 좀 무색한 듯이 채영신이가 앉은 편으로 몇 걸음 다가오며 어서 일어나기를 권한다.
그래도 영신은 꼼짝도 아니 하고 앉았다가 곁에서 동무들이 옆구리를 찌르고 등을 떠다밀어서 마지못해 일어났다. 서울 여자들은 잠자리 날개처럼 속살이 하얗게 내비치는 깨끼 적삼에 무늬가 혼란한 조세트나, 근래에 유행하는 수박색 코로나프레프 같은 박래품으로 치마를 정강 마루까지 추켜 입고 다닐 때건만, 그는 언뜻 보기에도 수수한 굵다란 광당포 적삼에 검정 해동저 치마를 입었고, 화장품과는 인연이 없는 듯, 시골서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과년한 처녀를 붙들어다 세워 놓은 것 같다. 그러나 얼굴에 두드러진 특징은 없어도, 청중을 둘러보는 두 눈동자는 인텔리 여성다운 이지가 샛별처럼 빛난다. 그는 사회자를 쏘아보며,
“첫째, 이런 자리에까지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지는 모르지만, 남이 다 말을 허구 난 맨 끄트머리에 언권을 주는 것이 몹시 불쾌합니다.”
새되고 결곡한 목소리다.
“흥, 왼간헌걸.”
“여간내기가 아닌데.”
남학생들은 혀를 내두르며 수군거린다. 제자리에 돌아와 이제껏 흥분을 가라앉히느라고 눈을 딱 감고 있던 동혁이도, 얼굴을 쳐들고 채영신의 편을 주목한다.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영신은 말을 이어,
“둘째는 제 속에 있는 말씀을 솔직허게 쏟아 놓구는 싶어두요, 사회허시는 분이 또 무어라고 제재를 허실 테니깐, 구차스레 그런 속박을 받어 가면서까지 말을 헐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하고 다시 앉아 버린다. 이번에는 여자석에서 손뼉치는 소리가 생철 지붕에 소낙비 쏟아지듯 한다.
사회자는 그만 무안에 취해서 얼굴을 붉히며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아까 박동혁 군이 말헐 때는, 시간이 없다고 주의를 시킨 것이지 말의 내용을 간섭헌 것은 아닙니다.”
하고 뿌옇게 발뺌을 한다. 그러자 동혁이가 벌떡 일어나 나치스식으로 팔을 들며,
“사회!”
하고 회장이 찌렁찌렁하도록 부른다.
“밤을 새우는 한이 있드래두 이런 기회에 우리는 충분히 의견을 교환허고 싶습니다. 위선 지도원리를 통일해 놓고 나서 깃발을 드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톡톡히 항의를 한다. 사회자는 시계를 꺼내 보고 사교적 웃음을 띄우며,
“채영신 씨, 그럼 내년에는 맨 먼첨 언권을 드릴 테니 그렇게 고집허지 마시고 말씀허시지요.”
하고는 장내의 공기를 완화시키려고 슬쩍 농친다.

영신은 다시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대접상으로 간신히 일어났다.
“저는 금년에야 참가를 했으니까, 이렇다고 보고를 헐 만한 재료가 없고요, 고생을 좀 했다고 자랑할 것도 못 될 줄 압니다. 그저 앞으로 이 운동을 꾸준허게 해나갈 결심이 굳을 뿐이니까요.”
하고는 그 영채가 도는 눈을 사방으로 돌리더니,
“그렇지만 저 역시 여러분께 우리 계몽대의 운동이 글자를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한 절대 다수인 농민들의 살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위선 그네들에게 희망의 정신을 넣어 주자는…….”
하다가 상막해서 잠시 이름을 생각해 보더니,
“……박동혁 씨의 의견은 저도 전연 동감입니다!”
하고 남학생 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러분은 학교를 졸업하면 양복을 갈러 붙이고 의자를 타구 앉아서, 월급이나 타먹으려는 공상버텀 깨트려야 헙니다. 우리 남녀가 총동원을 해서 머리를 동쳐매구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서, 우리의 농촌, 어촌, 산촌을 붙들지 않으면, 그네들을 위해서 한몸을 희생에 바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거듭나지 못헙니다!”
그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고만 쓰러지듯이 앉아 버린다. 장내는 엄숙한 기분에 잠겼다. 말썽을 부리던 남학생들도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 그네들의 머릿속에도 감격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을 영원히 거듭나게 하자'는 채영신의 연설에 "여간내기가 아닌데?" 하던 남학생들에게까지 감격의 물결이 퍼집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이 사회는 무엇보다도 신교육을 받고 나아오는 신인물을 요구한다.”라고 선언한 역사 속의 최용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척 조숙해 보이기도 하네요. 자신이 밝힌 포부 그대로 농촌으로 달려가 여성, 어린이의 교육에 헌신한 최용신의 아름다운 삶은 오는 2월 28일 출간될 『최용신 평전』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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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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