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위령비를 세워도 부족한 식집사...
Nov 1, 2022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3
<그동안 내가 죽인 식물이 한 트럭: 식물위령비>, 레고테크닉 위에 식물이름표, 2022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지난 주말, 식물 그림과 굿즈를 판매 전시에 참여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제 전시부스에 찾아오신 분들께 일일히 인사를 건네며 여쭤본 질문이 있었습니다. "혹시 식물 키우세요?"라고 물었더니, 십중팔구 이런 대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식물을 많이 죽여서요. ㅎㅎ;;"  

저는 그분께 부스 앞에 놓인 식물위령비를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제가 죽인 식물은 한 트럭이에요. 😅"
그러면 대부분 웃으시며 사진을 찍어갑니다. 

언제부턴가 키우던 식물을 죽이면 식물이름표를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정글플랜츠를 사모으던 때 생긴 버릇인데요. 정글플랜츠는 대부분 보르네오섬과 같은 연평균 습도 80% 이상에서 사는 열대식물들이다보니 반드시 온실에 넣어 키워야 합니다. 문제는 한여름 환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죠.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남은 건 수태에 꽂힌 식물이름표가 전부였습니다. 식물도 생소한데 이름은 더 생소했기 때문에, 이름표라도 챙겨둬야 나중에 내가 어떤 식물을 키웠는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기억을 못할 정도로 식물이름표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수북이 쌓인 식물이름표를 보고 있자니,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았죠. 그날 레고로 만든 트럭 위에 코르크판을 세우고 이름표를 꽂기 시작했습니다. 기억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꽂는 순간 이름표는 묘비명이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했습니다. 

저의 SNS에 이 레고트럭 사진을 공유하니, 식물집사님들의 격한 공감의 답글이 올라왔습니다. 

"뭐지? 우리집에 왔다 갔나?"

"두 번째 트럭은 어디 있죠?"

"신박하네요;; 트럭 하나로 모자랄텐데..."

"아이고... 진짜 한 트럭이네요. ㅠㅠ"

"넘 웃프네요."

모두들 한 트럭 정도는 식물을 보낸 경험이 있는 분들이지 싶습니다. 식물을 죽이는 일은 식물집사에겐 운명과 같습니다. 이미 18세기 유럽의 많은 식물학자들도 열대식물을 온전히 살리는 데는 애를 먹었다고 하니까요. 역사학자 루크 키오의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상자>라는 책에서도 그 고충을 언급합니다.  

"리빙스턴(영국 식물학자)은 식물 1천 개체 중 오직 한 개체만이 여행에서 살아남는다고 추정했다."

이미 200여 년 전에도 원예전문가들조차 많은 식물을 죽여왔던 거죠. 그 이유는 인도, 호주와 같은 식민지의 열대식물을 몇 개월의 항해를 거쳐 영국으로 가져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배로 이동하는 동안 살아남은 식물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던 중 1842년 너새니얼 워드라는 영국의 식물학자가 이동식 온실을 발명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워디언 케이스(wardian case)'. 바로 오늘날 테라리움의 시초이죠. 너새니얼 워드는 워디언 케이스에 고사리와 같은 열대식물을 담아 영국으로 실어 옮기는 데 성공하면서, 유럽의 원예 열풍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고사리와 같이 높은 습도에 살아온 식물이 대륙을 건너서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의 원리가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식물의 원산지를 확인하라."

특히 열대관엽식물은 높은 습도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너새니얼 워드 역시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동형 유리 온실을 만들어 고사리가 살 수 있는 고습의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지요. 물론, 유리 온실은 단순히 습도뿐 아니라, 식물이 살 수 있는 온도와 빛, 토양, 통풍 등의 환경이 갖추어진 작은 생태계였습니다. 

우리 역시 집에 식물을 들이면, 어디에 놓을까 먼저 생각하지요. 예를 들어 어둑한 침실이 허전하다고 빛을 좋아하는 유칼립투스를 놓는다면 식물이 자랄 리 없습니다. 식물을 집에 들이면 그 식물에 맞는 생태계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도 여전히 묘비명이 된 식물이름표를 코르크판에 꽂는 중입니다. 안다고 다 실천할 수 없는 게 또 인생인가봅니다. 식물이름표가 하나둘 늘어나다보면, '나한테 이런 식물도 있었네' 하는 어처구니 없는 순간도 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 사무실 문을 열고 출근하면 문앞에 놓아둔 '식물 위령비' 앞에서 두손 모아 합장하고 들어섭니다. 🙏

p.s. 네이버 식물 인플루언서 글로스터님은 항상 식물을 잘 키우려면 '원산지를 확인하라'고 조언합니다. 아래에 붙인 초보식물집사를 위한 가이드 영상에서도 또 강조하죠. 

-아피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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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_ 육지거북 알 낳았어요!

저희 집에서 5년 동안 키운 동헤르만 육지거북 부부가 알을 낳았습니다. 알 3개 중 하나는 어미가 실수로 깬 것 같네요. ㅠ 육지거북은 부화가 힘들다고 하는데, 꼭 성공할 수 있기를 함께 응원해주세요. :)
📢Re: 아피스토 당첨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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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문지은님은 apistogrooma@gmail.com으로 이메일 부탁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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