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뉴스를 읽다가 든 생각
내 차례를 기다리며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10.31. 화요일
독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애매한 지점을 톡 건드린 기사를 좋아하는 허남설 기자입니다. 오늘은 '또' 중동 전쟁에 관한 기사를 전해드리려고 해요.

이스라엘이 지난 10월2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사실상 지상전에 돌입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상 작전 확대"라는 말로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독자님은 '지상전'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저는 황토색 담벼락에 몸을 숨긴 군인들이 지휘관의 수신호에 맞춰 "고, 고, 고(Go, Go, Go)"를 외치며 일제히 문을 박차고 건물 안을 샅샅이 수색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마 <아메리칸 스나이퍼> 같은 전쟁 영화의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겠죠. 어쨌든 검은 밤하늘에 섬광이 수시로 포물선을 그리는 '공중전'과는 양상이 다른 작전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머릿속에 이런 그림을 그려놓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관한 이런저런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대목에서 턱 걸렸어요. 오늘 전할 기사는 그냥 그 부분 때문에 골랐습니다. 기사는 3분 분량이에요.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을 시작하자 통신마저 끊기며 가자지구는 완전히 고립됐다.

☑️ 가자지구 주민들은 전투기 소리가 들리면 주변에 작별을 고하고, 죽었을 때 신원을 알리려고 매일 몸에 매일 이름을 적는다.

☑️ 이들은 공포를 느끼기 전에 폭사하거나, 묻어줄 사람이 있으면 운이 좋다고 느낄 정도로 절망에 빠져있다.
"매일 '마지막 날'을 산다"
2023.10.29. 선명수 기자
10월28일(현지시간) 전기 공급이 중단돼 깜깜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공에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인한 섬광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지상전에 돌입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한때 불빛도, 통신도 완전히 끊겼다. 3주 가까이 이어진 봉쇄에 외부 세계와 연결되던 '마지막 통로'마저 막혀가자 희망도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다. 주민들은 "우리는 그저 다음 차례를,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지상군 투입 작전이 시작된 27일 밤(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모든 유·무선 통신과 인터넷이 끊기면서 이곳은 36시간 가까이 완전한 '고립' 상태가 됐다.


통신 두절은 폭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해도 응급차를 부를 수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가자지구가 이제 세상의 눈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음성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 사진 기자 압둘 라우프 샤트와 연락이 두절됐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적십자위원회, 국경없는의사회, 세이브더칠드런, 머시 코프 등 국제기구와 구호단체들도 한때 가자지구 안에 있는 직원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자지구 내부에 있는 직원으로부터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받은 뒤 직원들과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고 밝혔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성명을 통해 "이런 정보 차단은 대규모 잔학 행위와 인권 침해를 은폐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팔레스타인 통신업체 팔텔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통신 인프라 시설을 29일 오전부터 점진적으로 복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신호가 너무 약해 유선통신 밖에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언제 또 다시 끊길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이날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구호단체의 활동을 위해 가자지구에 스타링크 위성을 지원할 의사를 내비쳤으나, 이스라엘은 스타링크가 하마스의 테러활동에 악용될 수 있다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밝혔다.

10월2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을 집단으로 한 장소에 매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자지구 주민들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머리 위에서 전투기 소리가 들리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신원 미상으로 집단 매장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몸에 매일 이름을 적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가 남아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유언장을 올리기도 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가자지구 내 사망자는 전쟁 3주 만에 80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의 가자지구 활동가인 올파트 알쿠르드는 "이스라엘군은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이 전쟁은 사실상 민간인을 상대로 한 전쟁"이라면서 "우리는 매일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 우리 차례를 기다릴 뿐"이라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70여명의 가족과 친척들을 잃었다.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작가 나이루즈 카르무트는 "이전 전쟁 때는 많은 이들이 그래도 휴전과 삶에 대한 희망을 걸었다면, 이번 전쟁은 다르다"면서 "사람들은 그저 임박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가오는 미사일과 로켓 소리를 듣지 못한 채 그냥 폭사한다면, 그것이 이 모든 잔혹함 속에서 차라리 자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팔레스타인 시인인자 에드워드사이드 도서관 설립자인 모사브 아부 토하도 연일 계속되는 로켓과 미사일 소리가 "죽음이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로 들린다면서 "죽어서 묻어줄 사람이 있는 이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10월2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력과 의약품 부족으로 가동 중단 위기에 놓인 가자지구 내 병원들의 현재 상황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스라엘의 봉쇄가 길어지면서 이미 상당수 병원이 전력 중단으로 폐쇄됐으며, 일부 병원은 응급실 기능만 남긴 채 가동이 중지된 상태다. 구급차 가운데 상당수는 휘발유 부족으로 운영을 멈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가자지구 내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주변도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았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2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마스가 가자지구 내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지하에 지휘센터를 숨겨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한 점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를 부인했다.


현재 물과 연료, 의약품이 모두 부족한 알시파 병원에는 환자 5000여명을 포함해 이재민 약 6만여명이 공습을 피하기 위해 대피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의 폭격이 심할 때면 병원 건물도 15분마다 흔들린다고 전했다.


이 병원에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여읜 신생아 130명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 공습에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에서 산모들이 숨을 거두는 와중에 의사들이 달려가 출산시킨 미숙아들로, 이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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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중사>로 유명한 역사학자 하워드 진(1922~2010)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공군기를 타고 독일군 주둔지를 폭격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나치 소탕'이란 대의만 생각했던 그는 훗날 그 작전에서 민간인 역시 숱하게 희생된 사실을 알고 이렇게 회고했어요. "우리가 폭격한 고도에서는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없었고, 비명도 들을 수 없었으며, 피도 보지 못했고, 사지가 찢겨나간 광경도 보이지 않았다."(<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중에서)

하워드 진이 참전했던 때에 비교하면, 지금 우리는 전장의 소식을 훨씬 더 빠르게 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개시했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확전을 용인했으며, 지상전의 난관은 하마스의 '땅굴' 토벌과 이란의 참전 여부가 될 것이고, 주변국 여론을 의식해 가자지구를 차근차근 장악하는 전술을 택했다는 사실 등등.

이렇게 전쟁의 현황부터 국제 정세까지 섭렵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오랜 분쟁에 대한 해법 논쟁이나 미국·러시아·중국 등 세계 열강의 손익 계산까지 관심이 미칠지도 모릅니다. 독자님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랬어요. 각종 SNS와 커뮤니티, 다른 뉴스레터를 뒤져 이 전쟁을 거시적으로 분석한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런 관심을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20대의 하워드 진이 비행했던 고도에 저 역시 갇혔다고 문득 깨닫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전투기 소리가 들리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신원 미상으로 집단 매장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몸에 매일 이름을 적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가 그렇습니다.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된 전쟁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만,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전쟁을 끝끝내―적어도 전쟁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알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에 빠집니다.
10월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습에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쟁을 보도하는 기사들이 매일 쏟아집니다. 인류가 여전히 이런 대규모 전쟁을 치른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런지 매일 전쟁에 관한 뭔가를 읽게 되더라고요. 시시각각 전황부터 전투의 판세까지, 다양한 뉴스로 도배된 스크린에서 이제는 '작별 인사를 하고 몸에 이름을 새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부러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이라는데, 기나긴 전쟁에 무뎌지지 않으려면 그 일이나마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대국의 지정학적 논리보다 더 먼저 떠올려야 할 게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장면들을 분명 보았다." 지난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맞아 키이우를 다녀온 박은하 기자가 쓴 취재 후기입니다. 전쟁의 대의명분과 희생자의 얼굴 사이에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봉쇄 4주 차에 접어든 가자지구의 상황을 담은 기사입니다. 유엔(UN)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필요한 구호 물품의 최소량이 하루 트럭 100대분이라고 판단했지만, 9일 동안 가자지구에 진입한 트럭이 100대가 겨우 넘습니다. 그나마도 이스라엘이 일부 봉쇄를 풀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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