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SNS에서는 현재 구간 인식 주간이 진행되고 있어요. 즐기고 계신가요?
신간 '역차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각주*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것도 즐겨주세요!

신-구간의 조화를 추구합니다

🌱 죽순


일인칭 가난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

『일인칭 가난』을 편집하면서 읽었던 책 가운데에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식사의 질이 나쁜 것, 식사의 양이 적은 것이 '빈자의 식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매일 같은 밥을 먹는 것'이었어요. 노인회관에서 받아 온 비빔밥을 삼등분해 오늘 저녁, 내일 점심과 저녁으로 먹고, 삶은 국수 위에 설탕을 듬뿍 친 '설탕 국수'로 매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요. 그러니까, 누군가의 부실한 식탁을 쓱 보고 "나도 그렇게 먹어"라고 말한다거나, 책을 덮은 후 '가난은 이런 모습이구나' 하고 쉬이 이해해서는 안 되겠죠. 왜냐하면, 그 가난은 수년,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언다잉

신성아 선생님이 혈액암 투병 중인 딸을 간병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던 책은 『언다잉』이라고 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거니와 그 고통을 보호자인 선생님도 겪어본 적 없으니 의사에게 전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유방암에 걸린 앤 보이어가 뱉어낸  『언다잉』에서 고통의 말이 아이를 이해하는 길이 되어주었다고요. 병명도 증상도 다른 두 사람(윤이와 앤 보이어) 사이에서 '고통'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발견하고 익히려고 애쓴 신성아 선생님의 시간에, 뒤늦게나마 조용한 위로를 보내봅니다.

* 기획회의 599호 ‘우리가 사랑한 책’에 실린 글을 재수록합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뒤엎는

🌱 죽순


두괄식으로 하자. 내가 지금 사랑하는 책 다섯 권은 홍은전의 『나는 동물』, 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 에이드리언 리치의 『문턱 너머 저편』,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이다.

이것들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다음에 만들 책들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의 이면을 목도”하도록 한 이 책들로부터. 그리고 이 책들을 읽으며 다시금 인식하게 된 나의 위치로부터. 평화가 아닌 불화를 원하는 이 책들은 나를 어떤 변화의 전위로 이끈다. 당연히 변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두렵고 속상한 가운데 괜히 반가워하고 환호하면서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익숙하게 사랑했던 것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홍은전 인권기록활동가가 장애인과 동물을 만나 그랬던 것처럼.

에이드리언 리치, 「스물한 개의 사랑시」 『문턱 너머 저편』, 한지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 p. 300.


신비, 아름다움, 경이로움


『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2023

『감정의 문화정치』 사라 아메드 지음, 시우 옮김, 오월의봄, 2023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장애인 활동가들을 만나며 2001년에 두 번째로 태어난 홍은전은 2019년 고양이 카라를 만나며 세 번째 생일까지 얻게 된다. 장애인과 짐승의 세계에서 살면서 그는 『나는 동물』을 썼다. 타자에 대한 조심스럽고 깊은 관심이 돋보이는 이 책은 장애인 이동권·탈시설·활동보조인 예산 확보 시위의 맨 앞줄에 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경석, 탈시설운동에 앞장서는 정하,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농장주는 ‘절도’라고 주장하는) 돼지 새벽이 등을 주어로 삼는다. ‘나’가 주어일 때조차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인식의 전환을 설명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쓰일 뿐이다. 그는 인간의 폭력과 학살, 비인간 동물의 몸부림을 향해 몸을 돌리고 서 있다. 몸을 절반쯤 돌린 나는 “내 운명을 그들에게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저 비딱한 시선으로 // 특별한 힘도 없이 / 세상을 재구성하는 그들에게”.

에이드리언 리치, 「천연자원」 『문턱 너머 저편』, pp. 350〜351.


홍은전은 책에서 신비, 아름다움, 경이로움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미지의 영역에 보내는 찬사에 가까운 이 웅장한 단어들은 구체적인 존재의 ‘근처에서 말하는’ 홍은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를 읽으면서 홍은전과 찰떡인 단어들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경이는 이 세계를 반드시 지금과 같은 모습이어야 할 이유가 없는 곳으로, 시간과 노동을 통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곳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경이는 배우는 일을 수반한다”라는 아메드의 설명은 홍은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노시내 옮김, 마티, 2021, p. 134.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 시우 옮김, 오월의봄, 2023, p. 385.


12월 8일에 있었던 북토크에서 홍은전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애운동을 알게 된 후 비장애인인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온통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고, 반려묘 카라를 만나고 동물권운동을 알게 된 후 비짐승인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온통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그 위치의 역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겁고, 해방감을 느낀다고. 『나는 동물』이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감정이었다면, 나는 이 책을 조금은 오해하며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눈물을 찍어 내느라 눈꼬리며 볼이 따끔거렸으니까.

에이드리언 리치가 말한 “자고 있는 동안에도 /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 즉 드러난 현상을 시각 정보로 받아들이는 육체로서의 눈이 아니라 현실의 역사성과 맥락을 읽고 성찰하는 눈을 나는 아직 뜨지 못한 것 같다. “울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명징함”과 기억을 위한 제3의 눈은 언제쯤 뜨이는 것일까.

에이드리언 리치, 「감옥으로부터」 『문덕 너머 저편』, pp. 203〜204.


언어의 힘 그 너머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18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마티, 2021


어설프게 정치적 올바름을 취하려고 하면 오히려 ‘취약’해진다. 장애, 퀴어, 동물 권리에 대한 책을 읽을수록 “잘 모르겠다”라는 변명이 늘어간다. 내 몸을 ‘앎의 방향’으로 돌렸다고 믿어왔는데, 무지를 이유로 나를 방어하고 싶은 유혹이 언제나 찰랑거린다.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 평생 글을 쓰고 활동해 온 오드리 로드는 백인 페미니스트가 흑인 문제에 얼마나 취약한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일갈한 바 있다. “‘흑인 여성의 글은 내 경험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제가 가르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백인 여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플라톤과 셰익스피어, 프루스트는 어떻게 가르친 걸까요?”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18, p. 52.


보편의 권력을 아주 오랫동안 누리고 있는 백인 남성 이성애 중심주의에 균열을 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한국의 출판 현실에서도 드러난다. 『시스터 아웃사이더』뿐 아니라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번역한 박미선 영문학자는 이 책들이 나오기 10년 전부터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책의 의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한국에서 흑인 페미니스트의 책을 내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판단됩니다’ 같은 거절의 메일을 수없이 받았을 터다. 마티에서 2021년 출간한, 미국 내 아시아인 차별 문제를 통렬하게 풀어낸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가 한국의 많은 독자에게 가 닿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이너’가 여러 정체성으로 재해석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어판은 특히 여성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정확히 내가 기대하던 바였고, 그것이 출판사와 서점이 판매고를 예상하며 따지는 이른바 책의 ‘확장성’이라고 간주했다. 그러나 김지승 작가의 생각은 달랐다. 출판사가 요청한 『마이너 필링스』 서평에서 그는 “캐시 박 홍이 쓴 문장 속 ‘인종’의 자리에 나는 자꾸 ‘여성’이나 ‘젠더’를 대신 놓고 이해한 듯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한 개인 안에 교차하고 있는 주체와 타자의 위치를 맥락적으로 바꿔 이해해보는 시도라기보다 쉽고 기만적인 동일화에 가까웠다”라며 위험한 ‘확장’을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그제야 그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 기분”을 느낀다.

김지승, 「소수적 감정이라는 거울 앞에서」, 마티 뉴스레터 <각주> 32호, 2021. 11. 18.


얼얼했다. 앞통수를 맞았다. 사회 분야의 책이 ‘현안’과 붙어서 ‘이슈 파이팅’이 되어야 ‘팔린다’는 공식에 매달려 『마이너 필링스』가 젠더 이슈로서 소환되기를 얼마간 바랐다. 그렇게 인종에 관한 책이 하염없이 뒤로 밀린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접촉 또는 어떤 사랑은 기약 없이 유예된다. 그러다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재차 읽으면서 “내 침묵은 나를 지켜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침묵도 당신을 지켜주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문장에 진하게 그어진 밑줄을 발견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러니까 유색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 더 부지런히 나와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번에 『감정의 문화정치』와 겹쳐 읽으면서는 목소리의 발견과 유통을 맡고 있는 출판 편집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타자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일,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이유에서 타자의 분노를 수신 거부하지 않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은 수신을 거부하지 않는 것보다 적극적인 ‘발신’에 가까운 행동이다. 나는 플라톤, 셰익스피어, 프루스트 말고 앨리스 워커, 엔토자케 샹게, 토니 캐드 밤바라, 글로리아 안잘두아…를 한 권의 책으로 발신하고자 마음먹었다. 가제도 정했다. ‘컬러풀 리딩’(colorful reading). 로드가 말한 대로, 밝지는(white) 않겠지만 짙은 어둠의 공간에 비축되어 있던 감정과 창조력과 힘이 다채롭게 분출될 책을 만들고 싶다.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 p. 380.


『마이너 필링스』는 내가 ‘감정’의 동학에 호기심을 품게 된 계기였다. 그즈음 젠더 폭력과 백래시, 인셀 테러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고착된 우울감,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이후에 잔여물처럼 남은 슬픔이 지속되고 있음도 감지되었다. 감정이란 종래엔 꺼지기 마련이고 내면의 활동이기에 고유하고 비밀스럽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사회 전반에 감정이 고였다가 흐르고 폭발했다가 불티를 날리며 개개인에게 옮겨붙는 장면들을 숱하게 보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으며 날 혼란스럽게 했다. 여성 혐오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남성 혐오(?)로 둔갑하면서 남성이 피해를 ‘호소’하며 분노하고,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열정이 선량한 시민을 향한 공격성으로 호도되면서 장애인의 권리보다 비장애인의 편리가 옹호되는 현실이 어지러웠다. 2022년부터 1년간 쉬지 않고 전개된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2023)에는 이렇게 외치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모습이 나온다.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어떻게 더 말해야 합니까.” 리치가 언제나 ‘목적이자 지도’라고 믿었으나 ‘적당하지 않은 연장’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던 ‘말’(언어)의 힘은 여기까지인 것일까. 그렇다면 ‘말’에 선행하는 장애인의 고통(감정)을 알고, 고통(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이 서로(장애인과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과 장애인, 비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감정의 문화정치』를 읽고 있는 이유다.

에이드리언 리치,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문턱 너머 저편』, p. 215.

에이드리언 리치, 「지붕 위의 인부」 『문턱 너머 저편』, p. 63.


『감정의 문화정치』를 비롯해 정동을 논하는 책에서 빠지지 않고 발견되는 이가 있으니 앤 츠베트코비치다. 그는 『우울: 공적 감정』(Depression: A Public Feeling)에서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느낌들’에 언어를 부여함과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우울증을 철저히 개인의 질병으로 치부함으로써 스스로를 관리하도록 만드는 의료 모델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식민주의와 인종차별로 인한 박탈이 야기한 우울에 대해 별도의 장을 할애한다. 우울을 역사화하고 정치화한 이 책이 능력주의와 갈라치기로 파랗게 질려버린 우리를 이해할 방법론을 제시해 주리란 기대를 품고, 『흑인 페미니즘 사상』 『시스터 아웃사이더』 『잔인한 낙관』(후마니타스 ‘딕테’ 시리즈 근간)을 번역한 박미선 영문학자와 오수원 번역가의 공역으로 『우울: 공적 감정』을 마티에서 출간하기로 했다. 『마이너 필링스』로 문을 연 앳(at) 시리즈의 5권이 될 예정이다.


사랑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는 움직임


『문턱 너머 저편』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한지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


공공연히 이야기한 적 없지만, ‘앳’ 시리즈는 에이드리언 리치가 시를 통해 주장한 ‘위치성의 정치학’에 적잖이 빚지고 있다. 그가 정체성을 ‘범주’가 아닌 ‘위치’로 인식한 것은, 괄호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서로를 구분 짓는 경계를 흐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타인의 육체적 고통을/ 그 육체가 살아가는 세상의 고통에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앳 시리즈가 그 연계의 방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글 곳곳에도 말뚝처럼, 아교처럼 인용한 리치의 『문턱 너머 저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다. 리치가 1950년부터 2001년까지 쓴 시들을 선별해 모았기 때문에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시집들의 시까지 조금씩이나마 읽을 수 있다.

에이드리언 리치, 「모순들, 그 흔적을 따라」 『문턱 너머 저편』, p. 431.

최애를 고백한 직후에 말하려니 좀 염치가 없긴 한데, 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사랑을 매일매일 기다린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뒤엎거나 사랑하게 된 무언가를 양껏 사랑하게 하는 이야기라면 더 짜릿하겠다. 그때 거기에서부터 또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어떻게 시작할 것이냐면요, “도약은 아니라도 / 짧고 강렬한 움직임을 유지하면서 말예요.” 왜냐면요, “각각의 움직임은 다음 것을 약속해주거든요.” 끝에 와서야 알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이런 움직임이다. 사랑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는 움직임 말이다

에이드리언 리치, 「어떤 생존자로부터」 『문턱 너머 저편』, p. 227.

괴어오르다
[1] 술, 간장, 초 따위가 발효하여 거품이 부걱부걱 솟아오르다.
[2] 울분 따위의 감정이 속에서 끓어오르다.

“1960년대 이전에 부글부글 괴어오르다가 1960년대 이후로 줄곧 더 일관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 예술가의 실천으로 자기이론을 이론화하려는 내 방식 때문인지, 나는 종종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양가적인 방식으로 이론과 철학의 담론들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예술과 글쓰기의 작업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로런 푸르니에, 『자기 이론』, 양효실 외 옮김, 초벌 번역 중에서


부걱부걱

술 따위가 발효하여 큰 거품이 생기면서 잇따라 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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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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