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어느새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9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인사 드립니다. 매월 마지막 주의 고독단 북레터는 책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달의 별색 인터뷰’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9월의 별색 인터뷰 주인공은 장편소설 『페퍼민트』를 쓴 백온유 작가입니다👏

학교와 도서관에서 독자님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편소설을 쓰고 있어요. 이 소설은 올해 초 ‘창비 스위치’에 연재되었던 소설인데요. 처음으로 연재를 시도해 본 것이라 미흡한 점이 많아 퇴고를 오랫동안 하는 중입니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소설이 출간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책이 예쁘게 나와서 뿌듯해요. 그런데 한숨 돌리기 무섭게 새로운 소설의 마감이 코앞이라 분주한 마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해원의 엄마 캐릭터를 다룰 때, ‘그 사람의 잘못에 고의가 없다면 너그럽게 바라봐 주자, 욕하지 말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보려고 했습니다. 해원의 엄마도 자신의 잘못과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비난을 받는 상황에 놓였을 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보니 오히려 죄의식이 희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보면서 감탄한 문장이 있는데요.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책에 나오는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라는 문장입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끝까지 발버둥 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죄송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내게 백 번 천 번 이상의 사과를 요구한다면 내 삶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이게 죽을 만큼 큰 잘못인가? 내가 이 정도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에 오히려 뻔뻔한 태도를 취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구축된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해원의 엄마를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적인 인물 중에서도 나름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외면한 건 아니고 나름대로 목돈을 만들어서 보상을 해 줬다고 말하니까요.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인물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10대가 느끼는 막막함이 제게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고 선택지가 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주 극단적이면서도 좁은 선택지만을 앞에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투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시안이는 가장 귀한 것을 내려놓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숭고하고 결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자 잘 성장하긴 하겠지만 다시 조우할지, 자신의 결정을 사는 동안 번복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100프로라는 것은 없으니까,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그들이 조우할지 어떨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달린 일인 것 같습니다.

윤이형 작가님의 『붕대 감기』라는 소설을 좋아하는데요. 여성으로서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꾸려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사람마다 각자의 입장과 각자의 속도, 각자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잘 몰랐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마음 깊이 새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불쑥 미워하고 싶어질 때, 비난하고 싶어질 때, 내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할 때, 『붕대 감기』라는 소설을 떠올립니다. 마음이 편안해져요. (거의?)

오늘의작가상·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백온유 작가의 데뷔작.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유원'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가족을 향한 부채감, 자기혐오, 증오와 연민 등 복잡한 감정들 속에서 흔들리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렸어요.

✅백온유 작가의 전작이 궁금하다면?
작가님의 첫 소설 『유원』 출간 당시 정혜윤 PD와 함께 나눈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