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는 언제나 노래를 '띄워'드린다고 하네요. 이 말이 좋습니다. 시작할 때 DJ가 작은 편지처럼 읊조리며 첫인사를 하는데 레터를 보낼 때 바로 이 네모 칸 안에 보내는 말이 그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인용, 때로는 소회, 때로는 인사나 예고로 시작하는 말이요. 오늘 레터는 오월의봄 구성원의 이야기입니다. 책과 일하는 사람들의 책 이야기, 책 없는 이야기, 책 없는 곳에서 책 읽는 이야기 등을 보내드려요. 돌아온 야영기, 피드백 채널에서 읽고 싶다고 말씀해주셨던 <동네>를 주제로 한 에세이, 그리고 오월의봄의 ○○○ 소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궁금한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럼, 오늘의 <오!레터> 띄워드립니다. 

오늘의 오!레터
🖍️  Editor's essay <야영기> 
🖍️  Marketer's essay <동네 사랑법>
🍪  오월의봄'es SAY <그 회사가 어떤 회산지 알고 싶으면, ○○○을 보세요?!> 

오랜만에 돌아온 캠퍼 H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종종 야영 이야기로 좋은 기운을 전해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네요. 눈 내리는 겨울날 야영 이야기 다음으로 이렇게 봄이 왔으니 말이죠.

하지만 3월 9일, 그러니까 20대 대선 이후로 봄다운 봄을 누리고 계신 구독자분들이 얼마나 계실까 싶어요. 저 역시 3월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마지막 주쯤에야 심신을 좀 추스르고 인천 영흥도로 야영을 다녀왔습니다. 대부도를 지나 더 들어가면 나오는 섬인데 2001년에 영흥대교가 생기면서 차로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에요.


사실 어디를 가든 야영의 패턴은 늘 비슷한데요. 집 짓고, 밥 먹고, 좀 걷고, 책 읽고 하면 하루가 끝나요. 책은 왜 읽냐고요? 햇볕 좋은 날 밖에서 책 읽으면 기분 좋잖아요. 테라스나 공원이나 밖에 앉아서 읽는 걸 좋아하다 보니 야영 갈 때도 한 권씩은 꼭 챙겨 가게 돼요. 그리고 밤에, 침낭 안에서 헤드랜턴 쓰고 읽는 책이 진짜 잘 읽히거든요.

이번에 영흥도에 들고 간 책은 놀랍게도(?) 《맑스주의 역사 강의》(한형식, 그린비, 2010)였는데요. 마르크스주의 역사 입문서로 쉽게 쓰인 책이라 야영 중에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읽던 중에 그대로 들고 갔어요. 혁명이란 말은 늘 좀 두근두근하고 말이죠. 게다가 침낭 안에서 헤드랜턴을 쓰고 마르크스네, 제2인터내셔널이네, 공산주의네, 하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마치 금서라도 읽는 듯이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색다른 독서 경험을 원하신다면 헤드랜턴 사용을 권해드립니다.


아무튼 요즘은 퇴보에 분노하느라 상상력이 가로막히는 일상 같아요.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잃지 않으려고 더 책을 찾게 되는 것도 같고요. 그리고 그런 일상에서 언제나, 다 같이 못 견디겠다고 터트리는 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지돈의 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문학과지성사, 2020) 142쪽에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그러나 견딜 수 없음, 견디는 것에 대한 거부야말로 혁명의 가장 근원적인 심리 아닐까.”

이번 야영기는 이렇게 요약하면 될 것 같아요. ‘야영장에서 혁명 책 읽는 사람을 보신다면 아는 척해주세요. 헤드랜턴을 선물로 드립니다.’

 [1]

  ‘농·어촌 수당’이라든가, ‘농촌 전형’ 같은 말로는 내가 여덟 살부터 스물 언저리까지 살던 동네를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아 이런 식으로 설명해볼 수 있다. 동네에 편의점 하나가 생겼는데 그날은 밭 매다 땀에 절은 수건 하나씩 둘러 맨 사람들과 그들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이 모조리 나와 잔치를 벌였다(그러고 손에 든 것은 대부분 막걸리나 츄파춥스였다). 대충은 거의 근린이었다는 것에서 규모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 모를 풀뿌리 몇 개를 쥐고 다니는 노인이 종종 보이는, 붕어빵이 다섯 개에 천 원인, 그러나 "싸비스~"의 음성과 함께 여섯 개가 되고야 마는, ‘수퍼마켙’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간혹가다 꽃을 따서 꿀 빠는 애들이 있던 곳. 하교 후엔 가파르고 썩은 배추가 뒹구는 밭고랑에서 엉치뼈 터지도록 썰매를 타다가, 시내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 가 흙 낀 손톱으로 한컴타자연습을 하던 애매한 유년이 내게 있었다.

  그 동네에선 엄마가 다니던 뜨개방에 자주 갔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가져다 놓은 찬과 살림살이로 분연했기에 어느 가정집 한구석에 소일거리로 실뭉치와 바늘을 갖다 놓은 정도였다. 누구나 거기에 가면 밥을 먹을 먹거나 낮잠을 잘 수 있었고, 나는 목적 없이 그러나 알뜰히 그곳을 잘 썼다. 그런 나를 아주머니들은 참 예뻐하셨고, 나는 어린 나이에도 내가 받는 애정을 알 수 있었다. 누가 건네는 검지 끝의 장을 빨아먹고 장갑이나 가방에 다는 체리 모양 액세서리를 얻으면서. 누런 장판이 뜯겨 군데군데 시멘트가 심겨 있는 바닥에 귀를 대고 누우면 아주머니들은 내가 아는 얘기 반, 모르는 얘기 반을 했다.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하며 그들 사이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좋았다. 


  세상의 전략인지도 모른 채 응당 어른이 되면 떠나는 것이 수순인 줄 알아 서울로 와서 살게 됐다. 당시 나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술에 미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삶의 땔감이 될 게 없었기에 내 집이 어떤 동네에 있든지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만사 그러하듯 진정에 도달한 순간, 나는 새로운(2년 지나서) 동네를 훑어보게 된다. 이곳엔 정말 있을 게 다 있었다. 편의점을 셈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거니와 심지어 콩나물과 팬티를 같이 팔았다. 시내에선 볼 수 있었기에 전대미문의 것은 아니었지만, 집 앞 오 분 거리에 그런 게 있다니 신기했다. 거리에는 <딱 한 잔만>이라는 소줏집이나 <그럴만두>라는 만둣집의 간판도 없이 들어본 가게들만 빠르게 무너졌다 생기기를 반복했다. 과연 유일의 정서, 정을 나눌 곳이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그들은 아무도 서로를 모른다는 사실을 가끔 알아차렸어도 금세 익숙해졌다. 나는 익숙을 무기 삼아 과거를 청산한 뒤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는 망상에 가슴이 웅장해졌으며, 모든 것이 영어로 적혀있는 국적교란의 카페에 들러 팔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나의 근간을 확인하는 일은 머지않아 일어났다.


[2]


  번화가에 나가 머리를 하려면 십팔만 원을 내야 한다기에 동네 미장원에 기웃거린 날이었다. 머리하는 의자는 딱 하나, 수건을 머리에 대충 둘러 묶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평상처럼 넓게 퍼진 의자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풍경이 내 앞에 있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원장님은 날 자리에 앉히고도 십 분은 더 마저 수다를 떨며 머리카락도 쓸고 노래도 흥얼거렸다. 손님들과 뭔가를 공동으로 구매하시는지 입속말로 행해지는 산수 끝엔 지폐 몇 장이 손에서 손으로 오갔다. 허공에 날아다니는 대화 몇 점을 주워들으면 '톡 쏘는데 어딘가 리듬감 있고 부드러운 데가 있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윽고 다가온 원장님의 조심스러운 손가락이 머리끈을 푸르고 내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평상 위 주황 수건 아주머니는 전화를 받더니 "나 두어 시간 더 걸리니까 집에 있어. 술 처먹지 말고~"하고 끊는다. (일동 웃음)

  머리를 다 말고 하늘색 수건 하나 터번처럼 둘러주시고는 두어 시간 집에서 쉬다가 오라고 하셨다. 옛 뜨개방에서 배운 것이 그것인지라 집에 놀고 있던 수박을 썰어서 가져갔는데 짐 챙겨 나가던 아주머니 두 분이 내가 먹을 복이 있네, 하면서 다시 들어오셨다. 옹기종기 이쑤시개에 수박 하나씩을 꽂아 씹으며 나는 밀려오는 이상한 안도를 만끽했다. 바로 그때, 단추 세 개가 꼭 여며진 다홍색 마이를 입은 아주머니가 "모두~ 안녕하신가~?" 하면서 사뿐사뿐 등장. 갑자기 이 모든 게 연출된 상황인 것처럼 느껴지며 나도 한 배역 차지하고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다홍 마이 아주머니와는 이런 대화도 했다.


-(청포도 사탕을 건네며) 아가, 내 딸 할려?

-네, 엄마

-아유~ 있지도 않은 딸이 그리워지려고 하네


  마음이 누그러지니 없던 너스레도 나온다. 처음 보는 사람 입으로부터 그리움이라는 말을 듣는 게 좋았다. 그로부터 한 시간 더 난 다섯 가구의 가정사를 속성으로 알게 되는데…. 떼는 입마다 시련인데 자꾸만 유쾌한 입담에 웃게 되었다. 원장님은 냉동고에서 얼린 음료수를 꺼내 집에 가는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그는 "나 가방 없슈." 하며 툴툴. 그러자 원장님이 자기 가방에 있는 것들을 탈탈 털어서 내동댕이친 뒤 "이게 가방 아니면 뭐유." 하고는 비닐봉지에 신문지를 깔아 깡깡한 음료수를 넣어 가방과 함께 다시 건넸다. 그걸 보면서 왠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아주머니는 "온도 차 때문에 물 생길까 봐 그러지?" 하고 원장님의 사랑법을 한 번 더 읊어주었다.


  나의 과거 동네를 드문드문 회상할 때는 그저 고색창연함 때문에 생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한 아름다움을, 늙어감이 낡아감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의 삶과 자존과 나눔에서 가르친 사람들이 그 동네에 있었고, 어디에나 삶과 사람은 있다. 지금의 팔천 원 짜리 커피나 팬티 파는 편의점이 있는 곳 역시 내가 발 딛고 사는 '동네'다. 동네를 들여다보면 한 시절이 생긴다. 세월이나 사정을 근거로 결별하는 땅과의 추억은 마음속에 고이 묻어두고, 새로운 터에 가더라도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묻어 두었던 뿌리는 내게 다른 동네에서도 마음을 놓고 자리 잡게 만들어주었다. 미장원을 방문한 뒤로 번쩍이는 커피집이나 잘 차려진 과일 가게에 가더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무언가 나누고 싶어진 것을 보면 말이다.

그 회사가 어떤 회산지 알고 싶으면, ○○○을 보세요?!

 

뭘 먹는지를 보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누군가의 유명한 말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마찬가지로 저는 단연코 탕비실이 그 회사를 알려준다고 봅니다. (높은 이직률로 유명한 출판계답게) 이런저런 회사를 옮겨 다니며 경험했던 제각각이었던 탕비실이 스쳐 지나가는데, 떠올려보니 이 탕비실의 구성과 운영방식이 그 회사의 문화를 은근히 잘 드러내더란 말이죠.

 

그렇다면 오월의봄 탕비실은 어떤 모습인지 같이 한번 살펴보시죠.

 

기본적으로 낱개 포장된 ‘탕비실 간식’들이 단맛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견과류, 소용량 봉지 스낵을 섞어 짠맛 등 달지 않은 맛도 구성을 해두었습니다. 최근에는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 때문에 사무실 안에서 식사를 해결할 때도 있곤 해서 여러 컵라면도 탕비실에 더해졌고요. 몇 달 전에는 비건인 구성원이 함께하게 되어 약과와 쌀과자, 비건 라면 등 비건인도 즐길 수 있는 간식도 구비했습니다. 냉장고 냉동실 안에는 비건 아이스크림도 있습죠. 훗.

 

마실 것도 꽤 다양한 편입니다. 커피는 원두를 사서 갈아 내려 마시곤 하고, 누군가가 간혹 먹는 믹스커피도 놓여 있습니다. 각종 차도 배치되어 있어요. 여름에 차게 마시면 어울릴 과일 냉침차도 있고, 카페인이 들지 않은 차도 꽤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회사’가, 어떤 것은 동료들이, 어떤 것은 함께하는 저·역자 선생님과 제작처에서 보내주신 것들이고요. 살펴보다 보니 이 다양한 간식들에 모인 것은 이곳을 둘러싼 여러 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아마도 그 마음은 먹고 마실 간식거리를 고르고 입에 넣는 이 잠시간의 휴식을, 조용한 격무를 함께 겪어내는 동료들과 함께 누리고 싶은 동지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성들의 다시쓰기/다시읽기 욕망은 어떻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비틀고 전복해왔는가?

20세기 초 최초의 춘향전 영화에서 19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를 거쳐 지금의 웹툰에 이르기까지, 고전소설의 개작 양상을 통해 여성적 다시쓰기의 변천사를 면밀히 추적한 문화연구서. 저자가 고전소설의 개작에 주목한 것은 그 텍스트들이 젠더 트라우마, 그리고 가부장제에 대한 다양한 저항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젠더적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해 생기는 트라우마를 가리켜 ‘젠더 트라우마’라고 명명한다. 그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다시 쓰고 싶은 충동과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다시쓰기’라는 저항의 행위를 통해 서사의 주체가 된다.

고전소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여성 서사인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은 가부장제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그 자체로 여성들이 고난을 극복하는 승리의 서사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부장제의 규칙을 잘 따르는 여성들의 승리였다. 그런데 젠더 관계가 점점 복잡한 양상을 띠는, 즉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점점 더 크게 내고 싶어 하는 20세기에 들어 이 세 편의 소설은 폐기되지 않고 개작이라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들 소설이 다양하게 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잘 알려져 있기에 이를 통해 여성 집단이 일종의 공감과 해석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친구에게 <오!레터> 추천하기
아래의 링크를 친구에게 공유해주세요!
💌  링크

<오!레터> 지난화 보러 가기
💌  링크

독자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오월의봄
maybook05@naver.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63-15 201호 우)10881 070-7704-5590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