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작가에게 자신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상품은 필수일까 희망 사항일까. 


어릴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인사동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굿즈가 가장 많이 나온 작가는 단연코 육심원 작가였다. 회화 작업의 패션 아이템화를 생각한다면 육심원 작가도 빼먹지 말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초등학생 때 나도 그의 그림이 그려진 수첩을 샀을 정도였다. 육심원 작가의 작품은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진 배경과 다양한 머리색과 화려한 옷차림의 여성들이 그려진 그림들이 다수였다. 그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면 소개 글에는 ‘여자는 행복해야 한다’로 쓰여있을 정도로 여성 캐릭터로만 작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이 다양한 패션 아이템이 되어 인사동에 작가의 이름을 딴 브랜드숍이 생겼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의 작업을 2002년 언저리에 처음 봤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숍과 상품이 생겨 전성기를 맞는 것을 보고 때아닌 충격을 받기도 했다. 성장을 하며 취향이 바뀌어버린 나는 육심원이라는 이름은 곧 추억 한편에 자리 잡았고 그렇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지금 글을 쓰며 다시 찾아보니 무신사 스토어에 입점하는 등 젊은 층을 타깃으로 더 열심히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 번 더 놀랐다.


회화작가라고 그림만 파는 것은 아니다. 사업 수완이 좋으면 자신의 작업물로 상품을 팔아 작가 기반의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다. 요즘은 회화작가뿐만 아니라 상품이 될 수 있는 소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곧잘 상품도 만들고 브랜드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육심원 작가의 전성기 때보다 더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된 것 같기도 하다. 


6월 1일에 숙명여대 동양화과 학생들에게 굿즈와 관련된 특강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취업은 예전보다 힘들어지고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한 회화과 학생들이 바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것이 작업의 상품화 일 것이고 이 부분의 특강이 필요했는지 나에게 제안이 왔다. 내가 만들어 본 상품들을 한번 꺼내서 둘러보았다. 패브릭 포스터부터 종이 포스터와 파우치 가방, 책, 티셔츠, 책갈피 등 많은 것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은 만들기 까다롭고, 어떤 것은 마진이 남지 않았으며, 어떤 것은 환경오염이 너무 심했다. 그중에도 만들기 수월하고, 마진이 많이 남으며, 환경 오염이 덜한 상품은 있었다. 대신에 손이 너무 많이 간다는 점이 단 하나의 단점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종이로 된 상품이었다.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만들 수 있는 상품마저 종이와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인 것일까…. 작가 입장에서 경제성이 좋은 상품을 고민하고 있다. 만들 때 품이 덜 들고 적게 팔지만 만족할 만한 값을 받으면서 효율적인 그런 상품. 그것이 부채인지 싶어 요즘은 부채 작업을 시작했지만 한 명 한 명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 서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그래도 일단 받은 주문이니 최선을 다해 작업하고 있다.......


그림 하나를 팔면 몇 달을 일하지 않아도 되는 유토피아적 생각이 먹히지 않는 대한민국 안에서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나를 보면 수심도 모르고 발부터 구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더 나은 방법이 있는데 괜히 힘을 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억울해지기도 하고 이렇게 힘들게 해서 돈을 벌어야 비로소 돈을 벌었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 문제인지 하는 생각도 든다.


물가가 무섭게 오르고 밖에 나선 순간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이제 외주로만은 먹고살기 힘들어 굿즈를 더 만들 궁리를 하고 있다. 몇몇 작가들은 도자기 작업을 하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형태의 굿즈를 만들든, 모두  다 엄청난 품이 든다. 실제 작업 기간을 능가하는 품이 든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굿즈는 예술 작품보다는 사업에 가깝다는 것만 깨우치고 있지만 어쩐지 작품과 상품의 경계에 있는 굿즈를 만들고 싶은 나는 오늘도 신선한 형태와 과정을 포함한 굿즈를 구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