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다소 스스로의 이별에 확신이 없어 보이는 듯한 영화의 제목은 사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이별은 어느 한 순간에 무 자르듯이 시작되지 않는다. 조금씩 견디고 쌓이던 것들이 모여서 문득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결심과 결단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 전까지 이별은 모호한 것일 수 밖에 없다. 헤어짐을 대략적으로 예상한 그 순간부터, 어쩌면 이미 헤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헤어질 것 같다, 헤어질 수도 있다 등 말은 사실은, 결국 아직 이별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별을 한 것과 다름 없다. 영화는 이렇게 지난한 결심의 과정을 러닝 타임을 들여 천천히 이야기 한다.
영화의 시작은 이미 아영과 준호의 이별이 시작된 이후이다. 담배를 태우는 고등학생들을 염탐하다 몰래 뺏어 피우는 준호는 티셔츠에 체크 남방 차림으로 친구 모임에 나오고, 준호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는 아영은 잘 차려 입은 채로 준호와 동반한다.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지쳐 보이는 아영과,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전혀 알 수 없는 채로 시간만 때우는 준호의 모습은 같은 집에 살며 삶을 나누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볼 수도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아영의 결심은 준호의 옷 매무새를 정돈해주는 것을 포기하면서 시작된다. 대충 걸치고 온 옷차림에 아쉬운 말을 몇 마디 얹지만, 어떻게든 단정하게 만들어주려던 손은 이내 후줄근한 티셔츠를 보고 거두어진다. 아영이 준호를 붙잡던 손을 하나 포기한 것이다.
(중략)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로 근근이 붙어 있던 아영과 준호의 연애는 그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야 태블릿을 핑계로 끝이 난다. 그제서야 전화 번호를 지워내는 그들은 오랜 연애만큼이나 오랜 완충 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끝을 맺는다.
헤어짐의 시점은 과연 언제일까? 시작부터 끝이 난 연애가 있고, 끝이 나고서도 끝나지 않은 연애도 있다. 말로 특정할 수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끝이 났음을 서로가 알고 있다. ‘어쩌면’이 사라지고 더 이상 모호해지지 않는 지점에, 연애는 끝이 난다.
인디즈 임다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