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작가에게 협업은 숙명이다. 


물론 직장인의 일도 크고 작은 협업의 연속이다. 그러나 건물을 공유하며 공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하는 협업이라던가 팀원과 함께 타업체와의 협업이 주를 이루는 편이라 사전 정보 없이 업체와 개인의 위치에서 일을 하는 프리랜서의 압박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두가지의 상황을 모두 겪어본 나는 그렇게 느꼈다. 팀원들과 함께 외주작업자와 소통할 때의 부담과 반대로 내가 외주작업자가 되어 기업의 담당자와 소통하는 것은 다른 무게감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모르는 담당자와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오래 일을 했음에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특히나 창작물을 주고 받는 일이 소통의 방식에 따라 잘 풀릴 수도 있고 쉬운 길을 두고 더 힘든 길을 가게 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정말 슬프게도.. 이 모든 것은 담당자에게 달려있다. 내 경우 다종다양한 작업을 진행해보며 일종의 소통 루틴이 정해져있는 편이고 아주 힘든 사람을 제외하고는 무난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경험으로 보아, 창작물 외주는 소통 담당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 한국 기업의 이벤트나 출판사의 일정은 넉넉하지 않은 편이고, 짧은 기간 안에 담당자와 소통하며 창작을 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2배의 스트레스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일도 아주 수월한 일로 바꾸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이번 레터에서는 어려운 일도 수월하게 만드는 출판사 서해문집의 편집 담당자 이현정님과 진행한 인터뷰를 실어보려한다.


안녕하세요. 현정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해문집에서 청소년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편집자 이현정입니다. 



먼저 현정님이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듣고싶습니다.


예전에는 아주 막연하게 표지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 수있을까 고민하다가 SBI(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몇 개월 정도 수업을 듣고 나서 출판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행본을 만드는 출판사로 갔는데 갑자기 교과서를 만든다고 하는거예요. 쉽지 않았지만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이직해서 서해문집으로 왔습니다. 1년 정도는 성인 책을 했고 그후 회사에서 청소년 책을 많이 만들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청소년 분야로 넘어 온 지 2년 정도되었습니다. 내지와 표지 일러스트가 필요한 책을 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시각작업자와 협업 할 때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시각 작업자들과 소통을 할 수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단기간 내에 많은 양의 삽화와 표지까지 방향을 정하고 결정하는 일이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일이 잘 진행되다가도 삽화가분과 어그러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디자이너와 제가 보았을 때는 좋았는데 갑자기 최종 컨펌에서 피드백이 좋지 않은 일도 있었습니다. 고민을 하다 피드백 과정에서 고통을 줄여 보자 생각했습니다.


제 피드백 메일을 돌아보았는데요. 유사한 패턴이 보이더라고요. 메일을 보면 제일 처음에는 언제나 제가 가장 좋았던 부분을 먼저 말합니다. 그게 작업자에 대한 존중의 의미기도 하고 편집자가 상상한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구현해 주신 분들에 대한 경탄이기도 합니다. 이 사인을 드리면 삽화가분들도 작업 방향 설정에 수월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정 요청을 할 때는 꼭 근거를 말하고 전달하는 편입니다. 원하는 방향에 맞는 문제 해결 방안도 제시하고요.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수정 횟수를 줄이는 것이에요. 첫번째 시안이 오면 무조건 공유해서 작업 방향을 확인받습니다. 다른 의견이 중간에 나와서 일이 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주변에서 나오는 피드백은 제 선에서 정리하는 편입니다. 인상 평가가 주된 경우도 많고 그 피드백을 다 전달하면 삽화작가님들도 힘들고 저도 힘드니까요.



시각 작업자와 일할 때 느낀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다른 작업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다른 작업자와 다른 점은 글로 설명하다가 막히면 이미지를 동원해서 설명(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분을 많이 살피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내부 디자이너와 피드백을 할 때보다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 어렵다고 느낀 건 채색 관련 피드백입니다. 디테일의 정도를 정하기 쉽지 않아서요. 라인 작업을 결정해서 진행했는데 채색 스타일이 생각과 다르게 나와서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안에서 채색 샘플까지 잡으면 작업이 더 수월했습니다.



피드백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나요?


받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해서 피드백을 전달하려고 신경썼습니다. 작은 말투 하나에도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수정 요청에는 근거를 썼고요. 근거를 작가의 이전 작업물에서 찾아오면 더 수월하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제외하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미지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위해 전시를 보는 편입니다. 회사 내에서는 디자이너님과 상의를 많이 하고 배웁니다. 진행 중에 막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상사분에게 샘플 메일을 받아 공부한 후에 보내기도 합니다. 편집자가 갈피를 잘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기준 없이 일을 하면 너무 많은 수정 요청이 있을 수 있고 그러면 외부 작가와 편집자 모두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일을 끝까지 잘 마치겠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중요하고요.



기억에 남는 외주 작업이 있는지요.


이로우 작가님께서 이미지를 책에 얹은 후의 모습까지 고민해서 시안을 잡아 주셨을 때 정말 놀랐고 감동했습니다. 전유니 작가님께서도 콘셉트 설정을 잘 해 주셨고요. 이분들의 공통점은 시간 약속이 정확하고 시안을 매우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전달해 주신다는 점 같습니다.

활자 그대로 옮기는 이미지보다 작가만의 재해석이 들어간 작업물을 개인적으로 더 선호 하구요. 서해문집에서 작업해 주신 많은 작가분들이 좋은 작업을 해주셔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창작자와 편집자 사이에 소통시 중요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작가님들께서 먼저 의견을 주시는 것도 좋았습니다. 채색 방향이라던가 작업 디테일에 맞춘 단가를 먼저 제안해 주시면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라서요.

변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계획을 하는 편이지만 나은 방향을 제안해 주시면 예상하지 못한 좋은 작업물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적합한 이미지를 위해 방향을 맞춰 나가려면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뢰서를 통해 의뢰를 해보신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우선 의뢰서가 있으면 좋은 점은, 작가가 원하는 조건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항목이 정리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기도 하고 기본적인 신뢰도도 올라갑니다. 편집자 입장에서는 외주를 맡기는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불안한 지점이 많아요. 그런 부분을 해소하고 신뢰를 주는 방식이라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이쪽 일은 불안과 변수를 낮추는 것이 관건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의뢰서가 있는게 서로에게 신뢰의 고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현정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듣고싶습니다. 


일단은 편집을 계속하려 합니다. 협업이 제 성향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일이 되도록 진행하는 모든 과정이 좋아서 나중에는 책이 아닌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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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협업에서도 서로가 힘들지 않은 소통 문화가 생겼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작가와 담당자가 수월하게 일을 진행 할 수 있는 기본체계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개개인의 역량에 의지해야하는 수준이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좋은 피드백에 대해 고민하는 담당자분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끝으로 편집자 이현정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