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막아. 하. 니 맴이 내 맴이다. 세상에 반복해야 할 건 너무 많고, 그중 진심으로 반복하고자 원하는 것도 많지
 
009_존버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한아임 to 오막
2022년 11월
 
오막아.

하. 니 맴이 내 맴이다. 세상에 반복해야 할 건 너무 많고, 그중 진심으로 반복하고자 원하는 것도 많지만, 반복에는 투자가 따른다. 매일매일 해야 할 것 투성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몇 개만 갖고 있어도 하루가 훌쩍 간다. 새로운 게 낄 틈이 없다. 이미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다른 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걸 하고자 하면 이미 하던 것 중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뭔가를 행하는 만큼, 행함 이전에 필요한 생각을 하는 여유로움도 반드시 필요하단 말이지. 심지어 심심해할 시간을 만들라는 얘기도 있지 않냐?

그게 문제다. 심심해야 새로이 ‘이걸 해야겠다’는 영감이 떠오르는데, 심심할 시간은커녕 이미 하던 것도 매일 반복하기 어려우니까. 게다가 새로운 영감이 떠올라 봤자 이미 하기로 한 것들에 치여서 어차피 못 할 테니까, 상상만 해도 과부하부터 온다. 

생각해 보면, 내 불면증은 이것 때문에 시작했다. 나는 지난 3년간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 ‘일’이란 게 직장에서 승진을 하거나 월급이 늘어나는, 그런 눈에 보이는 진보와 발전의 현상을 수반하는 건 아닌데도.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때까지 수십 년을 가둬뒀던 필요가 터져서였다. 그 이전에는 반복해야 하는 걸 필요한 반큼 반복하지 않았고, 설렁설렁했거든. 그래서 3년 동안 신나긴 했는데…

이제 좀 있으면, 흔히들 말하는 ‘creative well’이 바닥을 보일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울적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미안하다. 네가 말한 그러한 달인들을 보면 ‘저렇게 돼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대체 얼마나 더 해야 저렇게 될 수 있는지?! 

나는 존버가 사는 데에, 그리고 살아남는 데에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존버에 실패할 것인가? 실패하더라도 이 작업량을 유지해야 하는 게 아닌가? 번아웃되어 불타 죽더라도 불태울 만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3년 전에는, 그리고 더 나아가 10년 전에는 더욱더, 불태울 만한 것도 없는 자였거든.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답도 없는 고민을 한다. 빡세게 푹 자고 다음 날을 열심히 사는 대신, 잠의 질을 내동댕이친다. 멍청하다.
그래도 고막사람을 통해 평소에 듣던 음악을 다시 한번 곱씹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쓰임 직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Sweet Child O’ Mine은 전설 아닙니까? 그냥 듣기만 하도 짜릿하다. 알 수 없는 희망이 샘솟는다. 10년 전에 ‘그때 그 기술을 배웠으면’이라고 생각할 시간에 10년 후에 ‘지금 시작한 나 자신, 칭찬해’라고 말할 수 있을 지금의 나로 살아야겠다는, 그런 전형적이지만 거짓은 아닌 자기 계발서적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베이스란 듣는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보컬이나 기타에 비해 튀지 않는데, 이는 단순히 볼륨이 작아서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열심히 듣지 않으면 바탕이 되어 주는 베이스는 묵직하게 밑에서, 혹은 뒤에서 기다린다. 그런 베이스가 요즘 들어 레트로의 중심 요소로서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니, 역시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차례는 오고 가는 건가.
한국에는 올여름에 비가 어마어마하게 왔다고 들었다. 그와 반대로 캘리포니아는 기나긴 더위가 통상 ‘여름’이라고 일컫는 기간을 훨씬 넘어서서 계속됐다. 

그 기간 동안 나는 특히나 기타 음악을 많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사막을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을 그 기간 동안 냈는지라, 아예 플레이리스트 하나가 통으로 사막의 기타 테마다. 

이 플레이리스트가 내가 생각하는 음악적 이열치열이다. 더워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청량한 음악을 들으면 처음 몇 번이야 시원하지만, 오히려 속에서 더 열불이 난다. 그래서 사막을 연상시키는 기타를 그렇게도 들었던 거다. 

특히, 위 플레이리스트에 여러 곡이 등장하는 Hermanos Gutiérrez의 음악 세계는 뜨겁기가 짝이 없다. 음악이 너무 핫해서 내가 있었던 그런 현실 세계의 여름쯤이야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정도의 더위 수준인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춤 중에서도 느린 춤을 멋지게 추는 게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몸치라서 모든 춤을 다 못 추지만, 춤 잘 추는 사람들에게도 느린 춤이 더 어려워 보인다는 뜻…)

이런 느린 기타곡을 연주하는 것도 마치 느린 춤을 추는 것처럼 어렵지 않을까? 느린 만큼 기교나 막무가내식 연습으로 채울 수 없는, 소울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이걸 여름에 들었지만, 사실 사계절 다 적합한 적막함이 있어서 너무 멋진 듯…

그리고 이거: 
Richard Houghten - Glowing Light
Richard Houghten이란 이분도 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서 알게 됐는데, 이분의 기타는 좀 더 활동적이면서, 타악기 음이 경쾌하다. 너무 시원해…! 청량한데 너무 날더러 ‘너도 좀 청량해라!’ 하는 정도의 부담은 주지 않아서 고마운 곡이었다.
얼마 전에 블로그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인생이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고, 내놓고 있느냐로 나뉘기 때문에, 음악도 그것과 연관해 듣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에 대해 고막사람에서 얘기할 때도 어떤 이야기를 썼으며, 그에 대해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아무튼 그리하여, 또 다른 이야기의 플레이리스트에서도 기타가 자주 등장한다. 이 경우에는 기타가 내게 자유와 방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기타란 휴대가 가능한 악기라는 점, 그리고 콘서트홀이 아닌 거리에서도 꽤 자주 들리는 악기라는 점 때문에 그럴 거다. 피아노, 바이올린, 오보에 같은 클래식 악기보다, 그리고 드럼처럼 거대한 악기보다 기타는 등에 사뿐히 걸쳐 매고 내 몸처럼 함께할 수 있다. 그래서 왠지 멋져. 나는 ‘떠날 수 있다’는 개념이 너무나 멋있게 느껴진다.

이 플레이리스트에 여러 번 등장하는 이치카 니토의 곡 중에서도 나는 이것을 정말 좋아한다:
뭔가 내가 좋아하는 코드라고. 도시적이야…!

언젠가 우연히 유튜브 어딘가에서 봤는데, 이치카 니토는 기타를 그냥 친다 한다. 그러면 곡이 나온다 한다. 그렇다 한다. 거의 다 (혹은 전부였나?) 즉흥 연주의 결과물이라 한다.

나에게는 이분의 곡들이 뭔가 정교한 느낌을 주는데, 그러면서도 온기가 느껴져서 좋다. (참고로 이 플레이리스트는 인간 주인공이 인간형 로봇과 친구가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것이었어서, 이치카 니토의 차가운데 배려가 공존하는 음악 스타일에 꽂혔다.)

이런 곡도 있다:
마지막으로, 장대한 곡 중에서도 기타가 큰 역할을 하는 곡을 보낸다.
There Are Some Remedies Worse Than the Disease라 한다. 철학적이다. 이 뮤지션은 무슨 뜻으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는데, 곡에서 느껴지지 않냐… 병보다 더한 치료제도 있다. 더 나아가, 문제보다 더한 해결책이 있다. 

게으름과 반복 실패가 문제라면, 해결책은 부지런함과 반복일 거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그 끝에는 계속된 부지런함과 반복일 뿐인 건지?

지속이 가능하도록 우물을 충전해야 한다. 충전을 하지 않는다면 멈춰야 하는데,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면 넘어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 내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나”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건방지다. 어딜 감히? 시작도 안 했는데. 3년 빡세게 일한 걸로는 시작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게다가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알았다, 못 멈출 거라는 걸.

왜냐하면, 어떤 할배 작가가 알려줬다. 절대 글 쓰는 걸 멈추지 않고, 그걸 세상에 내놓는 것 역시 절대 멈추지 않는 방법을.

일반적으로는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 할배 작가가 후배들에게 그랬다. 더 큰 두려움을 만들라고. 바로,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겠다고 말하고서 갖은 변명으로 그렇게 행하지 않는 머저리가 되는 걸 두려워하라고. 세상에는 좋은 작가, 나쁜 작가, 글 잘 쓰는 작가, 글 못 쓰는 작가가 있을 순 있지만, 글을 안 쓰면서 글 쓰는 거에 대해 떠들기만 하는 자는 그 중 어느 작가도 아닌, 그냥 머저리라고. (Dean Wesley Smith라는 이 할배 작가는 실제로 영어의 ‘머저리’에 버금가는 말을 쓴다. 워너비라는 말도 많이 쓰고. Aspirant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그게 그렇게 챙피할 수가 없어.) 

딘이 하는 조언이 나에게 다 적용되진 않지만, 위 조언은 진짜로 적용됐다. (참고로 딘은 그냥 딘이다. 할배는 내 나이의 배가 되는 경험을 지녔지만, 모두에게 미스터 스미스가 아닌 딘이란 얘기다. 실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을 때도 딘은 자유로이 그냥 딘이었다. 내가 알기로, 누구나와 그런다.) 

딘은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는 두려움’이 쥐라고 상상하라고 했고, ‘글을 안 쓰고 세상에 안 내놓는 두려움’이 곰이라고 상상하라고 했다. (호랑이였나? 하여튼 작은 동물 vs. 더 큰 동물.)

나는 그렇게 상상했고, 이제 호랑인지 곰인지 뭔지 하는 괴물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나를 징벌하러 올까 봐 잠을 못 잔다. 

물론 딘은 이 말도 했다. 건강이 우선이다. 그리고 가족/연인/친구 등도 우선이다.

사실 근데 나는 멈추고 싶지가 않은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그 속도에 일단 올라타면 롤러코스터 같아서 스릴이 넘치는데, 그게 갑자기 추락할까 봐, 이제 우물이 바닥나서 원하지 않는데도 멈춰야 할까 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그런 걱정을 하는 거지.

그래서 말인데, 안 멈추도록 우물을 충전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정말로 봄에 샌프란시스코로 가기로, 전에 언급한 그 친구(D라고 부르겠다)와 얘기했다.

이혜원 기획자도 혹시나 이때 올 수 있지 않을까, 빅 픽쳐를 그리고 있다. 혹시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의 작업과 연결해 출장 여행을 간다면, 내 이 쉬고 싶은데 쉬고 싶진 않고 일을 하지만 아무리 해도 절대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만 드는 멍청한 상태를 어떻게 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모그타 출장 여행이 될지의 여부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정도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행운을 빌어줘.

너도 봄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막사람도 출장 여행으로 가서 뭐 재밌는 거 하면 되지 않나…! ‘샌프란시스코의 소리’ 기획 시리즈. 

그래, 나는 3중 출장을 그리고 있다. 어떻게 할 거냐면, 모그타 빅 픽쳐가 예정대로 잘 풀려서 샌프란시스코의 그로테스크한 측면을 조사하고, 고막사람으로서 소리를 수집하고, D와도 만나서 이 보은 것을 바탕으로 여행 회고록을 쓰겠다…!

글 안 쓰다가 죽는 것보단 글 쓰다 죽는 게 낫지 않나… 나는 딱히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없고, 하고 싶은 걸 안 할 거면 별로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졌다고 해서 계속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죽어지길 기다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재작년쯤이면 죽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 죽어져서, 수년 째 죽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진짜 마지막으로:  
가사에는 “I may be paranoid, but not an android”라고 나오지만, 제목만 보면 Paranoid Android다. 편집증적 안드로이드는 멈출 수가 없다.

아무튼, 다음 편지에서 네가 말한 기타 ‘소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겠다.

어쩌다 보니 한아임의 구구절절이 상당히 많다. 오막과 고막사람들의 양해를 부탁하며, 이만 총총.
- 아임. -
P.S: 안내:

고막사람 여러분!

인스타그램 계정이 요즘 불안정해. 계속 비번을 바꾸라고 하더니, 최근에는 정지가 된 적도 있었어. 아무래도 한국과 미국에서 서로 다른 디바이스들이 접속하니까 알고리듬님이 싫어하는 것 같아.

지금은 다시 복구가 됐다만, 언제까지 그런 상태일지는 알 수 없음.

혹시나 사라져도 놀라지 말아. 그리고 이메일 답장 버튼을 누르면 우리와 얘기할 수 있다는 점...! 우리는 물지 않아...!
이번 편지를 보낸 한아임은...
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하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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