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 조사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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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우승만 10회 

10회. 프로축구 대표 명문 구단 울산현대의 리그 준우승 횟수입니다. 올해로 39주년을 맞은 프로축구 구단이 준우승을 10번이나 차지한 건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기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울산현대 구단과 팬들은 우승의 한이 서려있었습니다.

2019년부터 공격적인 투자로 선수를 영입하고 우승 도전에 나섰지만 번번히 같은 현대家인 전북현대에 밀렸습니다. 최근 3년은 모두 우승 문턱을 눈 앞에 두고 넘지 못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감독도 교체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영입하는 등 공을 들여왔지만 우승은 먼 이야기였습니다. 타 팀 팬들은 준우승만 하는 울산현대라며 '준산현대' 라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3년간 우승 기대감에 부풀어 매년 기념 모자와 티셔츠를 제작해왔습니다. 하지만 입지도 쓰지도 못한 채 폐기처분한 기념품만 산더미였습니다. 하지만 모두 폐기처분해야 했습니다. 그랬던 울산현대가 올해 드디어 17년만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구단 역사의 세번째 우승. 울산현대 소속으로 2회 우승을 경험해본 유일한 선수인 이호는 이날 은퇴식을 할 정도로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간절히 기다려온 만큼 선수들도 팬들도 우승의 기쁨은 남달랐습니다.

매년 우승후보로 점쳐졌던 울산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지난해 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했던 이동경과 이동준이 해외 팀으로 이적하게 됐고, 군 전역 후 핵심 자원으로 평가됐던 장신 공격수 오세훈 역시 해외로 이적했기 때문입니다. 축구팬들과 기자들은 울산현대가 올해는 2, 3위 싸움을 하지 않을까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울산은 강팀의 면모를 과시하며 시즌 내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비록 2위 전북현대가 거센 추격을 해왔지만 지난 3년 간의 상황과 비교하면 승점 차도 꽤 많이 벌려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즌이 진행될수록 울산현대의 경기력은 점점 더 단단해져만 갔습니다.

시즌 시작 전 공을 들여 영입한 엄원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르익으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해줬습니다. 시즌 중반에 영입한 용병인 아마노 준과 마틴 아담의 활약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북과의 승점차는 시즌 막판 5점까지 줄어들었고 또 다시 막판 뒤집기의 위기는 찾아왔습니다. 잔여경기 세 경기를 앞두고 펼쳐진 전북과의 경기에서 1대0으로 끌려가던 울산현대는 후반 추가시간 마틴 아담의 기적같은 연속골이 터지며 전북을 2대1로 역전하며 우승의 9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이후 포항 전을 비기고 강원을 이기며 우승을 확정 지은 울산의 마지막 경기. 경기가 열린 울산문수축구경기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올 시즌 최다인 2만 3천817명의 관중이 운집한 경기장은 말 그대로 잔칫집이었습니다. 웜업존의 선수들은 관중들에게 이따금식 손을 흔들며 분위기를 즐겼고 경기는 비록 2대1로 패했지만 문수축구경기장에는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순간. 팬들의 환호와 눈물이 뒤섞인 문수축구경기장은 함성으로 떠내려갈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지난 3년간 혹시 모를 우승에 대비해 만들었던 우승 티셔츠와 우승 모자는 모두 폐기처분 됐지만, 그동안 모아둔 샴페인 50개는 현장에서 모두 터트렸습니다.

선수들은 우승의 공을 팬들에게 돌렸고 팬들은 그런 선수들을 보며 환호했습니다. 17년을 기다려온 팬들과 선수들은 그 순간 경기장에서 하나였습니다. 이제 우승팀이라는 왕좌를 지켜야하는 울산은 벌써부터 다음 시즌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선수단은 창단 4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도 마지막까지 팬들이 웃을 수 있는 축구를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입니다.  

#2 지역불균형 출발점은?

경상북도 내륙에 영양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영양군의 면적은 815.8k㎡로 서울시 전체 면적보다 34% 이상 넓습니다. 이런 영양군에 왕복 4차로 도로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심지어 영양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로인 국도 31호선조차 왕복 2차로, 편도 차로 1개뿐입니다.

이 도로는 30년 넘게 왕복 2차로, 편도 1차로 상태로 방치돼 왔습니다. 인구가 1만 6천 명밖에 안 되는 도시가 출퇴근 시간마다 주 도로의 정체를 각오해야 하고, 국도에 경운기라도 한 대 등장하는 날에는 도로 전체가 마비됩니다. 국도 바로 옆 산에서는 돌덩어리가 떨어지기 일쑤고 태풍만 오면 곳곳이 침수됩니다. 선형도 구불구불합니다. 영양군 주민이 갑자기 아플 때 병원을 가려 해도, 국도를 타고 넘느라 1시간 20분을 달려가야 의사 얼굴을 봅니다. 이런 이유로 경북 영양군의 치료 가능 사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같은 시점에 서울 강남구의 치료 가능 사망률은 30명에 불과했습니다.

국도는 지역이 아니라 국가가 설치하고 운영하는 도로죠. 그래서 영양군과 경상북도는 국가에 수없이 국도를 고쳐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요구는 첫 단계부터 좌절되기 일쑤였습니다. 사업을 벌이기 전 진행하는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매번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이러합니다. 인구가 1만 6천 명에 불과하니 이용하는 차량도 많지 않을 텐데, 그런 도로를 넓혀주는 건 ‘재정 낭비’라는 겁니다.

그럼 울산 정도로 규모가 큰 도시에서는 어떨까요? 울산에는 큰 항구가 2곳 있습니다, 공업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부터 울산본항이 운영되어 왔고, 공업지역이 확장되고 물류량이 늘어나면서 1997년 울산신항이 새롭게 조성됐습니다. 두 항구는 붙어있지 않고, 6km 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당연히 두 항구를 오가야 하는 물동량이 적지 않겠죠? 그래서 울산시와 해양수산부는 연결 도로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해 왔습니다. 산업 물동량을 원활하게 처리하고, 대형 화물차나 위험물 운반 차량이 도심에는 되도록 진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이 사업도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서 좌절됐습니다. 도로를 짓는 비용에 대비해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입니다. 울산신항은 오는 2026년까지 2차 확장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물동량은 갈수록 늘어날 겁니다. 지금도 본항과 신항을 오가는 화물들은 도심지역 도로에 얽혀 상습적인 교통 정체와 대형 사고를 일으키곤 합니다. 위험한 화학물질을 실은 화물차가 주거지역 인근을 돌아다니는 것도 참 불안한 일인데, 도로 신설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상 이런 불편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예비타당성조사, 줄여서 ‘예타’라고도 말하는 이건 뭘까요? 이 조사의 취지는 그 이름에 답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비용(총 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가 재정 300억 원 이상)이 드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즉 ‘예비’로, 그런 사업을 추진해도 괜찮을지 그 ‘타당성’을 전문 연구기관에서 ‘조사’하는 제도입니다. 애초부터 이 제도는 재정 낭비를 줄이기 위해, 좀 더 솔직하게는 돈을 안 쓰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예비타당성조사가 도입된 시점이 1999년이라는 점이 그 힌트입니다. IMF 외환위기로 국가 재정 운영이 위태로워지면서 돈을 아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죠. 국가가 사업을 벌이기 전에 그 정도 비용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미리 따져 보고, 그 결과를 참고해서 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말은 ‘참고’라지만, 사실상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대규모 국가 투자 사업의 첫 절차이자, 반드시 넘어야 하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경제성, 투입한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될 지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비용’과 ‘효과’에서 변동이 큰 쪽은 ‘효과’입니다. 도로를 신설한다고 할 때, 산악지형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자면 서울이든 울산이든 도로를 짓는 비용은 거의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효과는 그렇지 않죠. 인구 1만 6천 명인 경북 영양군과 인구 111만 명인 울산시, 948만 명이 넘는 서울시에서 도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물류 개선이나 이동 편익의 정도는 압도적으로 차이가 날 겁니다.

이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인구가 많고 이미 기반시설이 촘촘히 마련돼 경제적 효과를 끌어내기 쉬운 서울과 수도권은 어떤 사업에서든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산업 동력이 떨어지는 비수도권에서는 예비타당성조사의 벽이 나날이 높아지겠죠. 그래서 예비타당성조사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오히려 벌려놓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고, 정부도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경제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사업을 추진할 여지를 준다거나, 낙후된 지역에는 가산점을 주는 방식도 고려해 봤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비수도권이 추진하는 많은 대규모 사업들이 경제성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인구 100만이 넘는 광역시인 울산조차 지역 발전에 필수적인 사업들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건 지역민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국가 균형 발전이나 지역 경제 활성화 같은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기 전에, 같은 국민인데도 도로나 재난 예방 시설, 병원과 같은 생활에 필수적인 편의조차 적절하게 제공받지 못하는 것은 수도권 주민에 비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거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반대로도 생각해 봅시다. 대한민국의 넓은 영토 중 극히 일부인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인구의 절반이 모이고, 모든 기반시설이 집중되는 것 또한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타당하지 않은’ 상황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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