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불탔었던 2008년 2월의 화재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이제 막 수능 시험을 마치고 신나는 대학 생활을 앞두고 있었던 저는 솔직히 그날이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요. 하지만 이 사건이 많은 한국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사건이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기는 합니다. 실제로도 숭례문이 불에 타 건물의 상단부가 쓰러지는 장면 등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망연자실 했었던 시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숭례문은 우리나라의 국보 1호라는 상징성이 큰 문화재이기도 했으니까요. 방화범 채 씨의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었잖아.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는 말마따나, 누군가는 내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600년 전에 세워진 문 하나를 두고 왜 이리 야단이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라의 수도 한가운데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이 문의 소중함은 여러 번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소중함은 어떤 방식으로 또 다시 강조되는 게 좋을까요? 저는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건 이번 주에 <노트르담 온 파이어>라는 영화를 보고 든 생각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이 오실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났었던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정확히는 2019년 4월 15일을 재현한, 재난 영화 형태의 픽션 영화입니다. 픽션이지만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톤으로, 말하자면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그려냅니다. 장면들이 상당히 리얼해서, 보는 내내 대체 어떻게 찍은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요. 크게는 두 가지 방식이 핵심 포인트였다고 합니다. 첫째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외양과 내부 구조가 비슷한 성당들을 물색한 뒤, 그곳에서 촬영을 한 것이구요. 두 번째는 정말 간단합니다. 말 그대로 사건 당일 실제로 찍힌 영상들을 활용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숭례문만큼 파리 시민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인 노트르담이 불에 휩싸이고 있는 장면을 시민들이 가만 보고 있었을 리가 없잖아요?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 순간을 각자의 카메라에 담아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이 슬픈 소식을 공유했을 거란 말이죠. 이를 떠올린 감독 장 자크 아노가 제작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냅니다. 시민들에게 사건 당일 찍은 각자의 노트르담 영상을 공개적으로 제보받자. 이를 위해 웹사이트까지 개설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영화엔 다양한 각도&화질의 노트르담의 영상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리얼 영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리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믿기 어려우나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는 프랑스 혁명 시기의 작가 앙투안 드 리바롤의 말로 문을 엽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사람들 입장에서 가장 소중히 관리되고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기에, 이곳에 불이 났다는 말은 도저히 믿기가 힘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영화엔 그와 관련한 장면들이 몇 등장합니다. 그중 한 사람은 노트르담 주변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새 교황이라도 뽑은 거야? 왜 지붕에서 연기가 나?” 교황 선출 방식에 대해 친숙한 유럽인들 사이에서 꽤 성공할 확률이 높은 조크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현상이 그만큼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사람들이 연기를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정말 소중히 보호받아야 하는 문화재들이 실제로 불에 휩싸이는 일이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안전한 것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망각하고 맙니다. 그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명확한 사인이 눈에 보이는 데도, 이를 부정하기 바쁩니다. 숭례문은 불에 탄 지 5년 만에 다시 시민들에게 공개되었고(부실 공사 논란이 꽤 있었기는 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2024년 12월을 목표로 재건 작업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사고가 일으킨 경각심으로 인해, 두 번째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지극히 낮아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충분한 것일까요?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만들어졌지만, <숭례 온 파이어>는 없습니다. 대신 존재하는 것은 부실 공사 논란이라는 현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도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다시 한번, 꼭 숭례문만이 아니라, 각자의 소중한 무언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노트르담 온 파이어>를 보고 떠오른 영화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라는 영화인데요. 이 영화 역시 파리와 관련한 영화로, 정확히는 2015년 발생했던 '탈리츠 열차 테러 사건'을 재현한 영화입니다. IS 연계 테러범의 파리행 고속열차 테러 계획은 세 명의 휴가 중인 미군에 의해 저지됐었는데요, 이스트우드 감독은 실제로 그 당사자 셋을 캐스팅하여 각자 본인 역을 연기하게 합니다. 그렇게 픽션 영화에 '현실의 무언가'들이 삽입되게 됩니다. <노트르담 온 파이어>와 더불어 재현 영화들의 방법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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