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책 속의 문장으로 만나는 뉴스레터, 텍스처 픽입니다.

하루 한 걸음
"서로 달라서 알 수 없는 것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옮기는 것, 
그래서 번역이 필요하고 번역이 가능하다."
- 사라지는 번역자들』, 김남주(지음), 마음산책
안녕하세요. 책 속의 문장으로 만나는 뉴스레터, 텍스처 픽입니다.
오늘 텍스처가 픽한 인터뷰이는 김남주 번역가입니다. 서른 해가 넘는 오랜 시간을 번역하며 독자와 만나온 그이지만,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보다 시시하고 아무렇지 않은 ‘하루’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삶이 되지요. 순간의 영감도 먼 훗날의 기억도 오늘로부터 시작됩니다. 긴 연휴 같던 추석 명절도 어느새 마지막 날을 맞았네요. 오늘 님의 하루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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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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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읽은 바로는
번역가 김남주

 AROUND 
프랑스문학, 영미문학 번역가. 야스미나 레자의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 『함머클라비어』,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슬픔이여 안녕』,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여자의 빛』,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녹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창백한 언덕풍경』 『우리가 고아였을 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나의 프랑스식 서재』 『사라지는 번역자들』을 썼다. 
내가 이제까지 읽은 바로는 아름다운 문장은 깊은 생각을 이길 수 없고,
문학의 재능은 고독 속에서 쓰고 있을 때에만 피어나는 듯하다.
- 번역가 김남주는 ‘번역가의 삶’을 총체적으로 돌아보기에 충분한 몇 안 되는 번역가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깨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학, 특히 프랑스문학에 끌렸다. 보들레르, 발레리, 엘뤼아르의 시와 카뮈, 사르트르, 라디게의 소설을 읽었는데 또 하나의 우주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우리말로 된 작품을 읽는데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맞닥뜨렸고, 내용과 문맥, 단어, 문화적 차이 같은 것들을 살펴보다가 일단 저자의 언어로 읽어보기로 했다.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고, 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결국 문학 공부의 첫걸음은 원전 읽기라고 생각하고, 서너 계절 동안 심지어는 수업을 빼먹기도 하면서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다가 동화책부터 번역을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일이 밀리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번역자가 되었다.

- 번역가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
이제까지 번역한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하루 한 걸음!”( 『두 늙은 여자』, 벨마 월리스)이다. 덤덤하고 시시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하루들’이 그냥 내 삶인 듯하다. 나는 미루기를 밥먹듯이 하는 인간이라 마감이 닥치면 진한 커피를 마시며 자주 밤을 샌다. 평소에는 아침에 일찍 깨서 커튼만 젖히고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빈둥거린다. 안 풀렸던 일, 해결되지 않은 문장, 스쳐 지나간 음악, 후회, 안타까움, 그리움이 희붐한 아침 빛 속에서 교차한다. 꽤 중요하다 싶은 생각들도 반짝거리고... 이 시간이 가장 나와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
 
- 어느 인터뷰에서 열심히 하는 타입과 타고난 타입이라는 두 타입의 작가가 있다고 했다. ‘열심히’ 타입의 작가와 ‘타고난’ 타입의 작가는 어떻게 달랐나?
다른 분야에서도 수재형이냐 노력형이냐, 유전이냐 양육이냐 하는 논란이 있듯이 예술 분야에서도 그렇다. 두 타입 중 하나에 꼭 우열이 있는 건 아닌 듯하다. 타고난 작가라도 하지 않는다면, 혹은 타고나지 않은 작가라도 열심히 한다면 길이 엇갈리겠지. 하지만 타고난 작가가 어떤 이유로든 열심히 한다면 그걸 당할 수 있을까? 문학에 대한 사랑이든, 도박이든, 명예욕이든, 애국심이든 이유는 상관없다. 시샘, 질투, 감탄, 경외를 넘어 도스토옙스키, 플로베르, 윌리엄 트레버, 솔 벨로 앞에서는 같은 인간이라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고마워진다. 내가 이제까지 읽은 바로는 아름다운 문장은 깊은 생각을 이길 수 없고, 문학의 재능은 고독 속에서 쓰고 있을 때에만 피어나는 듯하다.

- 그중에서도 특별히 읽는 자로서 마음에 담은 작가가 있을까?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시구로 등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겨온 번역가의 ‘픽(pick)’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이시구로는 한 인터뷰에서 “작가란 어쩌면 평생 ‘한 권’의 책을 쓰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같은 소설을 거듭 썼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다 보면 겹치는 부분을 만나고 그 변용과 변화가 반갑기도 한데, 나는 기질상 싫증을 잘 내고 살짝 경박한 데가 있어서 그런지 비슷한 게 반복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처방한다고 가정하면, 남녀 관계가 주된 관심사인 시기라면 프랑수아즈 사강을 픽하고 싶다. 사강은 여러 가지 면이 있는, 심지어 대중적인 면까지 있는 작가이지만 남녀 관계의 심리 지도를 치밀하게 그려 놓았다. 그 지도에 정통한가의 여부가 실제 애정 생활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결국 남녀 관계의 출발은 나와 나 자신의 관계라는 것까지. 또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한 시기라면 로맹 가리를 픽해야 한다. 러시아 이민자로서 프랑스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평생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를 탐구했다. 여러 개의 가명으로 글을 쓰기도 했고. 단편집 한 권을 읽고 나면 다른 작품들을 더 읽을 것인지 알게 될 거다. 야스미나 레자는 좀 특이한 작가다. 우리를 단숨에 파리의 거리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혹시 연극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작가의 〈아트〉를 알고 있을 테고,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조디 포스터와 케이트 윈슬렛이 나온 〈대학살의 신〉의 그 놀라운 대사를 기억할 거다. 몇 작품이 있는데, 내 픽은 우선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요즘 나를 위한 나의 ‘픽’은 솔 벨로다. 연속해서 읽고 있다. 절판된 건 원서로 보고 허조그』 『오기 마치의 모험』 『비의 왕 헨더슨은 우리말 판으로 나와 있다. 흥미로운 건 20년 전에 『험볼트의 선물』을 읽었을 때는 그냥 그랬다는 거다. 이런 식이다. 지금 나에게 꽂히는 걸 읽어야 한다.

- 최근 번역한 마담 보바리는 무명작가였던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스타로 만든 문제작이었다. 19세기 문제작을 지금-여기 독자들이 꼭 읽어야 할 이유를 제안한다면?
이제 ‘문학이라는 이상한 영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인 듯하다. 읽을 것, 볼 것들이 쏟아지는 지금-여기에서 무려 160여 년 전에 나온 이 책이 도대체 왜 새로 번역되고 줄곧 현역으로 읽히는 걸까? 사실 이 작품은 아주 오래된 바위 같고 물 같고 무슨 특수한 감별지 같다. 기라성 같은 작가들은 압도되어 격찬하는데, 일반 독자들은 태연하다.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고구마 세 개를 연속으로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문장은 그저 하늘이나 바람처럼 자연스러울 뿐이다. 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나무에는 나뭇잎이 달려 있는 이 당연한 소설 속으로 들어가 겹쳐진 층위를 스스로의 눈으로 발견하는 것은 곧 문학의 영토로 들어가는 열쇠다.

- 마지막 질문이다. 번역은 대체 무엇일까?
밥벌이로 오랫동안 번역을 하면서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발레리 라르보는 번역이란 “말의 무게를 재는 것”이라고 했다. 한쪽에는 출발어를, 또 한쪽에는 도착어를 올려놓고 추저울이 평행이 되어야 비로소 번역이라는 거다. 또 조르주 무냉에 의하면 번역은 유리가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채색 유리’ 같은 직역과 유리가 없다고 착각할 정도로 완전히 투명한 ‘투명 유리’ 같은 의역으로 나뉜다고 했다. 책 속에서 번역학의 이런저런 견해들과 부딪히고 실제로 다국적 번역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고인 생각을 사라지는 번역자들에 풀어낸 적이 있다. 쓰는 동안 즐거웠다. 음, 번역이란,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해도 될까? 요컨대 소통이란 무엇일까?!   

- 번역가로 김남주를 성장하게 한 책과 문장들이 궁금하다.
  📚 김남주의 문장들
문학의 영토로 들어가는 열쇠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지음), 김남주(옮김), 문학동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덟 번쯤 읽었는데, 네 번째쯤부터 점점 줄거리가 사라졌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탄생한 후 가장 공들여 묘사되었다는 여주인공 에마는 여전히 프릴 장식이 네 겹으로 달리고 코르사주 형태로 상체의 곡선을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고 그 작고 예쁜 발에 꼭 맞는 부츠 위에 덧신을 신은 채 마차의 발판을 오르내리며 애인과의 밀회를 즐겼지만, 그 연애의 결말과 또 다른 연애의 추억이 행간에서 없어졌다.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곧 나다!”라고 한 이유가 점차 떠올랐다. 한심한 에마와 답답한 샤를과 비열한 로돌프와 무서운 뢰뢰가 다 나였다!
    • 먼저 지상의 온갖 영화를 그토록 갈망하던 두 눈에, 이어 따스한 미풍과 사랑의 향기를 그토록 좋아하던 코에, 거짓을 말하기 위해 벌리고 교만으로 신음하며 색욕으로 울부짖던 입술에, 감미로운 감촉을 즐기던 두 손에, 마지막으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달려갈 때 그토록 재빨랐으나 이제 다시는 걷지 못할 두 발바닥에 차례로 성유를 발랐다.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달라지는 것
      숨은 조화 - 심미적 경험의 파장』, 문광훈(지음), 아트북스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채우는 언어의 폭포
      비의 왕 헨더슨』, 솔 벨로(지음), 이화연(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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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이가 추천한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문장들을 제안합니다

      삶의 막다른 곳에서 떠올린 문학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어느 포로수용소에서 기억에만 의지해 이루어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강의를 글로 옮긴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유제프 차프스키는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20세기 최고의 소설을 그의 동료 포로들과 함께 읽으며 영혼의 구원을 찾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이죠. 독서를 넘어서는 진정한 체험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 속 문장에서,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이 그토록 되찾고 싶었던 진정한 삶을 발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프루스트는 여전히 자신의 새롭고 거대한 또 하나의 인간 희극을 위해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고, 조절하고, 통제하고, 채집하고 있었다.

          • 프루스트의 감성은 현실에서보다 문학 작품 안에서 더 완전하게 발휘되었다. 그는 현실의 사건들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조금 늦게, 그리고 복잡하게 반응했다.

            제목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저자 유제프 차프스키/류재화
            출판사 밤의책
              •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 소설가가 쓴 책은 꿈과 같은 방식으로, 그러나 우리가 자면서 꾸는 꿈보다 더 선명하고 더 오래 기억되는 꿈으로 우리를 뒤흔들 것이다.

                제목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김희영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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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근두근, 이 주의 신간 소비

              나의 말을 듣는 너를 위해서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써야 한다면 우리는 왜 그간 우리의 세계관을 담지 못하는 그 많은 표현들을 새로고침해 왔을까? 우리는 그렇게 배웠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기 위해 잠시의 불편함을 감내했던 우리의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우리가 지양하는 세계관에서 벗어나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관이 반영된 표현으로 고쳐가기 위해 우리는 그간 많은 표현들을 바꿔왔다.
              -『언어의 높이뛰기』, 신지영(지음), 인플루엔셜

              🍋 큐레이터 L
              내가 쓰는 언어를 고르고 점검하는 일은 듣는 이에게 닿고자 하는 노력이다. 무심히 말했던 단어가 품은 차별과 권위를 인식하고 입 앞에 놓인 변화를 시작할 때.
              #언어감수성 #일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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