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웹에서 보기 | 구독하기
VOL.125 인터뷰: 『사람을 목격한 사람』 고병권 작가 인터뷰

✍ 사람을 목격한 사람
오는 20일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입니다. "생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임을 잊지 않으며 아픈 사람, 싸우는 사람의 삶의 의지를 지켜보고 세상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더 멀리 전달되도록 작은 앰프가 되기를 소망"하는 고병권 작가의 인터뷰입니다.

고병권 작가의 글을 읽을 때는 무언가 해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어 새로운 것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비유와 상징’이 온통 현실이 되는 장면에서는 낯선 세계에 굴러떨어진 듯한 충격을 받습니다. 니체의 ‘절름발이’라는 말이 발화된 곳이 노들장애인야학이고, ‘철창에 갇혔다고 상상해 보자’라는 말이 발화된 곳이 교도소였던 순간에요. 그것은 마치 “죽을 것 같은”에서 ‘같은’이 사라진 세계입니다.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장소에 이끌려 따라가서는 자꾸만 눈을 비비게 되고야 마는 책, 그것이 『사람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 본 인터뷰는 지난 23년 12월에 진행했습니다.

▷ 제목 후보로 호소, 두 번째 사람, 싸구려 앰프, 공부하는 심정 등이 올랐었지요. 지금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호소’는 한자 뜻이 좋았습니다. ‘호(呼)’는 ‘부른다’는 뜻인데요. 본래는 도끼 찍는 소리가 산에 울리는 것을 표현한 말이라고 합니다. ‘소(訴)’는 ‘말로써 물리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억울한 일을 알리는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일을 물리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싸구려 앰프’도 비슷한 맥락에서 떠올렸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소리가 너무나 작게 들릴 때 저는 글쓰기 욕망을 느낍니다. 이 책의 글들은 제가 들은 소리를 증폭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쓴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으로 ‘앰프’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다만 ‘싸구려’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하도 아니고 겸손도 아닙니다. 그냥 현장에서 쉽게 가져다 쓸 수 있고 쓰고 나면 잊어버려도 되는 그런 앰프가 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두 번째 사람’도 그 자리가 ‘싸구려 앰프’와 다르지 않습니다. 두 번째 사람의 자리는 슬픔에 빠진 첫 번째 사람이 목소리를 낼 때 옮겨 오는 자리이고, 세 번째 사람이 첫 번째 사람의 소리를 듣고 다가오는 자리입니다. 좋은 수신 장치와 발신 장치가 있어야 할 곳이지요. ‘공부하는 심정’도 이 두 번째 사람의 심정입니다. 단순한 흥미가 아니라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절박함에서, 더 나아가 해방에 대한 열망에서 공부를 해 가는 사람의 마음이죠.


그런데 결국 책 제목은 ‘사람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글들을 모아 놓고 쭉 읽어 보니 모두가 ‘사람’ 이야기더군요. 특히 사람의 지위가 위태롭거나 아예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호소, 두 번째 사람, 싸구려 앰프 등을 나열해 보니 제 글은 ‘사람을 본 사람’에 해당하겠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보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냥 ‘보았다’가 아니라 ‘보고 말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보고 말았고, 본 것을 보지 않은 것으로 할 수 없다, 이 ‘봄’은 ‘구경’이 아니다, 여기에는 ‘증언’의 책무가 따른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격’ 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증언의 책무를 강조하려고요.

 

▷ 책에는 선생님께서 무엇을 보고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변곡점을 맞이하며 삶의 궤적을 그려 왔는지가 담겼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곳을 보아 달라’고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가지만 그곳에서는 동시에 염려하고 힘을 불어넣는 선생님도 보게 됩니다. 선생님을 그 장소들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과거로 돌아갔다기보다 과거가 제게 돌아왔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겁니다. 당시에는 감당할 수 없었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야 자신의 때를 만난 듯, 기억의 다락 어디선가 뛰쳐나옵니다. 저를 이 책의 ‘그 장소들’로 이끈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요. 맞습니다. 저는 찾아간 게 아니라 이끌려 간 겁니다. 노들장애인야 학만 하더라도 거기 선생님들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수업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누군가가, 무언가가 옵니다. 이 책에 소개한 장애해방열사들에 대한 강의 때도 그걸 느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유서에 “미안하네, 용서하게”라고 썼습니다. 허락을 받지 않고 우리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찾아와서 우리를 붙듭니다.

니체는 사유란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원할 때 찾아온다고 했는데요. 정말이지 우리가 부르지 않아도 우리에게 닥치는 것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장소들’은 곳곳에 있습니다. 누군가가, 무언가가 아무 때나 찾아오고 아무 곳에서나 말을 걸고 소매를 잡습니다. 그걸 뿌리치는 사람과 뿌리치지 않는 사람,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안 듣는 사람, 못 듣는 사람, 못 들은 척하는 사람이있고, 거기에 듣고 응답하는 사람이 있는 것뿐입니다.

책임이란, ‘응답’의 문제입니다. 책임을 영어로 ‘responsibility’라고 하는데요, 글자 그대로 ‘응답(response)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응답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들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또한 누군가 말하고 있다는 뜻이고요. 책임의 시작은 그것입니다. 누군가 말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귀를 기울이는 것, 주의를 기울이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이것에 대한 책임 내지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께서 “우리”라고 호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우리’ 그리고 어떤 ‘당신’을 생각하셨나요?
제7부에 묶은 연대 발언들에는 ‘나’, ‘당신’, ‘우리’라는 말이 섞여 있습니다. ‘나’라는 말에서 ‘우리’라는 말로 넘어가면 나를 누군가와 동일시하는 효과가 나고, 누군가를 ‘당신’이라고 부르면 그를 ‘나’와 다른 ‘타자’로 만드는 효과가 생겨나지요.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우리’라는 말을 쓸 때, 내가 하는 말이 이를테면 지하철 행동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말과 같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고, ‘당신’이라는 말을 쓸 때 그 사람을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노들야학 입구에 걸려 있던 것인데요.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이 했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저는 이 구절이 ‘나’와 ‘당신’, ‘우리’의 관계를 잘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나’는 ‘당신’에게 ‘우리’가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야학에 왔을 때 저는 ‘당신’이었습니다. 어떤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 부끄러움은 이 사람들의 문제, 이 사람들의 고통을 몰랐다는 것에서 생긴 게 아닙니다. 저의 부끄러움은 내가 속한 사회,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폭력성, 내가 이루고 있는 관계가 만들어 낸 부자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움은 무엇보다 나에 대한 감정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로서 ‘당신’과 함께 ‘우리’로서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연대 발언을 할 때, 나는 나였던 ‘당신’ 그리고 우리일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당신’이라고 불렀습니다.
▷ 전작 『묵묵』에서는 ‘빈자리’라는 단어가 눈에 많이 띄었는데요. 이번 책에는 ‘삶의 의지’, ‘의존’, ‘함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변화를 느끼셨는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묵묵』에는 빈자리와 침묵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어 있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르며,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누군가 말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요. 『묵묵』이 듣기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책은 말하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들은 말을 제 목소리로 다시 표현해 보는 것, 응답해 보는 시도라고 할까요. 하지만 대부분이 말을 찾는 데 실패한 글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용산참사 때 자신이 목격한 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의 몸짓으로 시작해서, ‘사람 살려’라는 푯말 앞에서 말을 찾는 데 실패한 제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그럼에도 왜인지 저는 이 ‘말의 실패’에서 희망을 말하고 싶습니다. 실패한 말은 말하지 않는 것과 다릅니다.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파농은 「흑인의 실제 경험」이라는 글에서 흑인의 경험을 설명할 말을 찾다가 마지막에 가서 엉엉 울고 맙니다. 적절한 말이 없다는 것, 그러나 그 울음이 말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무언가가 도래하려면 지금의 우리가 실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말들, 기존 생각들의 한계를 자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말로서는 응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실패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희망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희망에는 미덥지 못한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말을 써 본 것은 어떤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중증 장애인과의 공동 격리를 자원한 사람들이 그렇고요. 누군가 옮겨 주지 않으면 한 뼘도 움직일 수 없는 최중증 장애인이자 탈시설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종강 선생님이, 시설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을 지켜보는 눈이자 말하는 입으로서 시설에 함께 남겠다고 말하는 대목 같은 곳에서 그런 걸 느낍니다. 제가 ‘함께’라는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들을 알게 된 덕분입니다.
고병권

노들장애인야학 철학 교사. 읽기의 집 집사. 생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임을 잊지 않으며 아픈 사람, 싸우는 사람의 삶의 의지를 지켜보고 세상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더 멀리 전달되도록 작은 앰프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람을 주저앉히는 글이 아니라 작은 힘, 작은 기쁨이라도 건넬 수 있는 춤과 같은 글을 쓰고자 한다.

니체에 이르는 길이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섬세히 펼쳐낸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철저하고 깊이 있게 읽어낸 〈북클럽 『자본』〉 시리즈(전 12권), 우리 사회의 현재를 그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묵묵』, 현장의 운동과 사건과 사람을 담아낸 『“살아가겠다”』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추방과 탈주』 등을 썼다.


더불어 읽기 좋은 책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이가라시 다이 지음 | 노수경 옮김
들리지 않는 부모의 들리는 아이, 코다
부모와 다른 아이로 자란 긴 외로움의 시간을 뒤로하고
힘차게 써 내려간 ‘엄마의 역사’, 농인과 농사회 이야기

일본의 대표적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작가 이가라시 다이가 농인 어머니의 삶을 취재해서 쓴 에세이입니다. 1950년대에 가족 중 유일한 농인으로 태어난 어머니가 언어를 갖지 못한 채 보낸 유년 시절부터 수어를 배워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된 농학교 시기, 농학교에서 만난 아버지 고지와 결혼해 주변의 우려 속에서 자신을 낳기까지 30여 년에 걸친 시간을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와 당대 농사회의 현실을 엮어 복원해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들리지 않는 사람들’과 ‘들리는 사람들’이 차이에 갈등하면서도 공생의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온 날들, 일본 농사회와 농교육 현장이 걸어온 길, 장애인의 출생을 막는 우생보호법이 존재하던 시기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그들을 지원하며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펼쳐칩니다.

한편 이 책은 농인 부모의 언어인 수어를 충분히 익히지 못해 자라는 내내 외로웠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수어를 다시 배우고 농인의 역사를 공부하며 어머니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아무런 소통 수단 없이 고립되었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부모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온 세상과 불화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포개어보며, 또한 다른 언어를 가진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족과 이웃, 사회가 각자의 자리에서 했던 노력들을 알아가며 비로소 과거와 화해한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과거로부터 받은 소중한 것을 가지고 어떤 미래를 꾸려가야 할지 그 실마리를 찾습니다. ‘차이’를 넘어서는 첫걸음은 ‘물어보는’ 것입니다. 용기 내어 묻고 답한다면, 과거가 남긴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힘차게 손을 내미는 책입니다.
시간 참 빠르죠. 4월에는 꽃이 피고 어린 잎이 움트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니 더 그렇습니다. 벌써 4월 중순이고 곧 1분기도 지나갑니다. 붙잡을 건 붙잡고, 놓을 것은 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그렇듯 독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피드백 응답합니다. 지난 북뉴스는 김상태 작가님의 <말랑한 고고학> 연재였습니다.

👀: 독자 | 🎱: 담당자

👀 서울커피
잘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연재가 아니었다면 고고학에 관해 관심을 가질 일은 적어도 올해에는 없었을 거예요.

🎱
안녕하세요. 서울커피 독자님. 평소 생활하면서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즐거운 봄날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희희
꾸준히 좋은 이야기 생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쉬면서 하라고 하는 말과 불가능한 것을 하라는 말이 담당자님들에게는 같은 의미로 닿을지도 모르겠네요.

🎱
반갑습니다, 희히 독자님. 읽어주시는 독자가 있어서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쉬면서 하고 있습니다. 독자님의 말씀은 응원의 의미로 닿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뉴스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의 책 출간 기념
두 번째 북토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4월 20일(토) 오후 3시
장소: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화랑전시관 3전시실


꿈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실현해 나가는 암탉 '잎싹'의 아름다운 여정이 새판소리 무대로 찾아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 도서를 소지한 분들께는 티켓 40% 특별 할인 혜택을 제공합니다.

일시: 5월 2일(목)~4일(토) 목, 금 오후 8시 | 토 오후 3시
장소: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독자가 북뉴스를 완성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