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면서 덧붙이는 대표적 변명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그럴 듯한 변명으로 들립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유연하다'라는 말의 정의부터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저는 유연함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한 가지 안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개의 대안을 미리 확보해 두고
특정 대안을 차별하지 않으면서 의사결정하는 것"
체조선수의 몸은 상당히 유연한데요, 그들의 유연함이란 '가능한 한 많은 형태(즉 대안)에 자신의 몸을 위치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여러 개의 대안을 미리 마련해 두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조건이 형성되면 어떤 대안을 선택하겠다는 계획 역시 수립해 둬야 합니다. 그래야 의사결정의 적기를 잡을 수 있죠.
어떻습니까? 유연함이란 그냥 앉아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체조선수들이 몸의 유연함을 높이려고 모진 훈련을 감내하는 것처럼, 유연한 의사결정을 하려면 부단한 고민과 계획과 수정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별다른 노력없이 의사결정을 미루기만 하면서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언어도단이니까요.
그래도 의사결정을 연기하면 여러모로 안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안 하면 손실이 생기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말이에요. 그러나 구성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대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리고 의사결정 사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음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은 또 어떻게 막을 생각입니까?
환경 변화가 빠르고 위험하면 의사결정도 그 속도에 맞춰 빠르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좀더 상황을 지켜보고...'란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같은 뜻이니까요. 그리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조직(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에는 미래가 없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