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경계를 유지하고 거절에 대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아래의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 내가 ‘타인과의 분리’가 잘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세요.
저는 어렸을 적에 엄마가 계란 후라이를 해 주면서 “노른자를 터뜨려줄까 그냥 줄까?” 라는 질문하면 “엄마 마음대로 해주세요”라고 선택권을 넘겨주고는 마음속으로는 앞뒤로 노릇하게 익힌 반숙으로 된 계란을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곤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이 독심술을 부리듯 정확히 나의 요구사항을 알아주기를 기대했던 것이죠.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알고 있다고(혹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처럼 저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상대의 감정 상태와 내 감정 상태를 분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이 힘들어지는 일이 생기면 제가 다 떠안아서 대신 짊어지곤 했지요. 같이 숙제 하다가 친구가 어려운 문제를 푸느라 낑낑대면 몇 시간이건 대신해서 풀어주다가 저는 제 할 일을 못하고, 친구는 할 일이 없어져서 심심해서 멀뚱멀뚱해지곤 했습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이 해야 할 자리에서 일을 대신해 주고 있었던 것이죠. 결국 저는 제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친구는 자기가 배워야 할 공부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분리, 개별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와 타인과의 경계가 모호지면서 이렇게 여러가지로 문제가 생깁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굳이 입을 열어서 내 의사를 전달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말하지 않고서도 내가 원하는 데로 다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대한 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분노하게 되겠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다고 여기면 내가 할 일과 타인이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남이 할 일을 내가 대신해 주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는 요구하지도 않은 호의를 베풀다가 혼자 지쳐 떨어져 버리겠죠.
이런 경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타인을 다 알 수 없다, 그리고 타인도 나의 사정을 모른다”라는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그 사람의 시각과 관점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지’ 를 기반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상대의 마음속 생각까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미리 상대방의 대답과 반응을 예측하고, 어려운 부탁을 하거나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 망설이거나 아예 지레 포기하곤 하죠. 그런데 용기 내서 이야기 해 보았더니 예상과 다르게 상대방이 반응하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지 않나요? 우리의 예상 비껴가는 이유는 그야말로 그것이 나의 관점에서 나온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할 때 ‘대화와 소통’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나의 상황과 의견을 최대한 담백하게 전달하면 그것은 자체로 상대방에게 정보가 되며 상대방도 이를 기반으로 입장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예측보다 더 정확한 것은 직접 소통하고 상대의 의사를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입장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입장 또한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다름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여기서도 상대의 마음을 섣불리 재단하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서로 의견 차이가 크다면 대화를 통해서 입장차이를 좁혀 나가는 소통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입장을 어떻게 듣고 계시나요?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 최대한 판단하지 않고 그 자체로 담백하게 이해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