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떠올리게 하는 어라운드의 지난 기록

언제나 여름의 휴일처럼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모름지기 휴가 덕분이겠죠. 모두가 쉬어 가는 이 계절을 느긋이 즐기고 있나요? 이미 충분한 여유를 즐기고 온 사람도, 휴일을 앞두어 마음이 설레는 사람도, 바쁜 일상에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거예요. 그 어떤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해도 선선하고 자유로운 여름밤을 느낄 수 있는 시기가 되길 바라요. 오늘 뉴스레터는 아주 오래전, 무려 《AROUND》 3호에 발행된 목적 없는 여행 이야기를 담은 <베를린 산책자의 일기>와 4년 전 60호에 실렸던 톰톰 카레 주인장의 돌아옴 없는 여행 이야기, <그는 카라반에 삽니다> 기사를 소개합니다. 저마다의 여행 이야기에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우연의 연속이 있죠. 일상을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을 얻기도 해요. 타인의 여행기를 통해 님만의 여행을 그려볼까요?

08.04.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Ver.1 AROUND Vol.60

(2018, August Issue)

<그는 카라반에서 삽니다> 김윤희—톰톰카레 주인


Ver.2 AROUND Vol.03

(2013, Winter Issue)

<베를린 산책자의 여행기>


08.18.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책에 실리지 못한, 숨겨진 어라운드만의 이야기를 전해요.


09.01. What We Like―취향을 나누는 마음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을 소개해요.

Ver.1

<그는 카라반에서 삽니다>

김윤희톰톰카레 주인

작년 가을 즈음 사진 한 장을 봤다. 빈 방에 보통 크기 박스 네 개와 작은 박스 하나, 신발 네 개, 가방 둘, 그리고 책 여덟 권이 놓여 있는 사진. 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한 줄 글이 적혀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짐 줄이기의 끝.” 짐의 주인인 김윤희 씨는 그 짐만 들고 집을 떠나 카라반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나는 이후 한동안 이 사진보다 더 좋은 사진을 보지 못했다. 이 담대한 사람은 지금쯤 카라반 생활에 적응했을까. 잘 살고 있을까.


정다운 사진 박두산, 김윤희

카라반으로 이사하면서 짐을 완전히 줄이던 일이 인상적이었어요. 원래 짐이 별로 없나요?
일단 제주도로 이사 오면서 가지고 온 짐이 별로 없어요. 집이 작고 돈도 없어서 가구나 매트리스도 다 주워다 쓰고, 옷장도 목수가 만들어준 거였 고요. 그래서 가구들은 아낌없이 다 처분할 수 있었고요. 옷도 주로 입는 옷만 번갈아 입는 편이에요. 처음에 짐을 정리하면서 필요 없는 걸 버리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짐이 쉬 줄지 않더라고요. 생각을 바꿔서 당장 쓸 것만 챙기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 처분했어요. 


‘의식주’에 우선순위를 매긴다면요?
음… 저는 ‘식’이 가장 중요해요. 고기를 먹지 않게 되면서 미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방향이 달라졌어요. 맛있는 걸 먹는 ‘미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생태학적인 태도나 건강이 반영된 ‘식’이에요. ‘의’도 중요하지만 많이 의식하지 않는 편이고, ‘주’가 마지막에 있어요.


언제부터 고기를 안 먹기 시작하신 거예요?
7-8
년 정도 되었어요. 처음엔 생선도 안 먹다가 요즘에는 생선과 해산물은 먹어요.

국내에 윤희 씨처럼 카라반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있나요?
없는 것 같아요. 아직 못 찾았어요. 카라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캠핑 용도로 쓰거든요. 카라반에서 모든 생활을 다 하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났어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 사람 발견하긴 했는데, 길 위의 삶을 꿈꾸며 ‘풀타임 카라반 라이프’를 시작한다는 글만 있고 그 뒤 이야기는 더 이상 없더라고요. 저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카라반에서 살고 싶어요.


카라반 생활의 목표가 있다면요.
이 안에 저의 모든 물건을 두고 사는 게 목표예요. 지금 한창 여름인데 아직도 겨울 이불을 쓰고 있어요. 카라반 안에 수납 공간이 많지 않아서 이 이불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 중이거든요. 집이라는 공간이 없어지니까 짐이 많은 게 불안해요.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짐, 그 정도의 수준이 될 정도로 더 줄이고 싶어요.


궁극적인 꿈이 있다면요.
저는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해요. 미국에서는 트레일러에서 살면 ‘가난하게’ 보잖아요.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집을 얻는 것보다는 싸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카라반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캠핑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저는 스스로 가난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미국 트레일러 생활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집 없는 설움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매달 자동차 할부금이 나가요. 월세 낸다 생각하고 내고 있어요. 사실 카라반 가격이 싸지는 않기 때문에 “차라리 집을 사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집을 살 수 없었거든요. 지금이 좋아요. 카라반에서 살기도 하고, 알빙RVing도 가능하고, 일석이조거든요. 저는 집이나 땅을 사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더 하거나 하고 싶은 일에 제한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현재를 참고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땅을 사는 일련의 일들에 즐거움을 못 느껴요. 최종적으로는 ‘돌아옴 없는 여행’이 꿈이에요. 지금 돈을 벌고 있는 것도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여행만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좀 더 즐거운 생활을 하고 싶어요.


카라반에 살면서 가장 좋았을 때를 이야기해주세요.
지난 겨울 제주도에 눈이 정말 많이 왔잖아요. 폭설 때문에 온 동네가 마비가 되어서 저도 카라반에 갇혔어요. 혼자 식사할 때는 가공 식품을 먹지 않고 최소한으로 조리한 간결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는 편인데, 그날은 전에 이 차를 타던 사람이 저장해둔 컵라면이랑 참치 캔 꺼내서 먹으며 내내 좀비 영화만 봤어요. 좀비 세상이 된 것 같았죠. 그날 정말 좋았어요.

Ver.2

<베를린 산책자의 여행기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좋아해, 여행지에서든 생활하고 있는 도시에서든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산책을 하면서 그날의 공기와 온도를 온전히 느끼고 기록한다. 물론 독일에서도 나는 산책하는 여행자였다.


글·사진 변재은 기획 여수정

쉼을 위한 산책

내 나이 서른, 많이 지쳐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들만의 안정된 삶을 찾아 영위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와는 대비적으로 빡빡하게 살고 있는 내 청춘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런 내게 당시에는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독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아무런 기대도 계획도 없이 단순히 ‘쉼’을 위한 한달의 시간을 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직접 그곳에 발을 내딛기 전, 내게 독일은 어둡고 차가운 도시로 각인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독일’ 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독일어 발음과 무표정하고 콧대 높은 외국인들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뜻밖에도 내가 만난 독일은 기존에 가졌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어떤 곳보다 느리고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는 곳이었다. 독일에 처음 온 그날은 겨울이었다. 서울에서보다 조금은 더 차갑게 느껴지는 공기가 시원했다. 그동안 속에서 눌려지고 있던 무거운 마음이 찬 공기와 함께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낯선 곳에서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었다. 차가울 줄 알았던 이 도시가 참 따뜻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와 독일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좋아해, 여행지에서든 생활하고 있는 도시에서든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산책을 하면서 그날의 공기와 온도를 온전히 느끼고 기록한다. 물론 독일에서도 나는 산책하는 여행자였다. 마치 내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인양 느즈막히 일어나 밥을 해먹고 느긋하게 집을 나서서 마을을 산책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가 해가 저물 즈음에는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다음날은 옆 마을, 그 다음날은 그 옆 마을.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매일 그곳의 하늘을 바라보며 세모네모 마을(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독일은 마치 세모, 네모 모양의 초코송이 과자 같았다.)을 기록했다. 나는 그곳에서 여행이 아닌 ‘쉼’을 하고 돌아왔고 그렇게 기록된 산책의 날들을 모아 홍대의 한 카페에서 작은 전시를 하기도 했다.

게으른 여행자가 되어보기

여행 전 계획과 사전조사가 필수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행지에 대해 미리 공부하지 않고 직접 부딪히는 경우가 훨씬 재밌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지를 선택할 때, 지인이 머물고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편하게 여행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몇번의 여행을 통해 나에게 맞는 여행방법을 찾은 경우다. 현지에 거주하는 지인을 통해 그곳 사람들과 우리의 문화적 차이를 글이 아닌 체험으로 얻게 될 때, 단순히 즐거움 이상의 만족감을 느낀다.


지도나 가이드북 없이 그냥 걷는다. 길을 걷다보면 어느곳이든 나올 것이고, 나오지 않으면 물어보면 된다. 지도가 없는 대신 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알 수 있도록 지명을 메모해두고, 이후에 그곳이 궁금해지면 찾아본다.


그렇게 다시 만나보는 것이 더 반갑기도 하고 그리워진다. 그리고 평소보다 느리게 걷는다. 휴식을 위한 여행이니만큼 쫓기지 않고 매순간을 즐긴다. 꼭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두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때로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때 느껴지는 순간의 느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거나 노트에 메모해두기도 한다. 그 기록들은 오래도록 여행의 여운을 남겨준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조금은 게으른 여행자가 되어보기를 권한다.

독일의 인상

나는 독일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독일인의 생김새를 알지도 못했다. ‘유럽권 사람들이 다 하얀 얼굴에 큰 눈, 매부리코를 가졌지 뭐’라고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나라별로 조금씩 생김새나 풍기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건 확실하다. 그만큼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나였다. 올 1월, 독일로 쉼을 위한 여행을 떠나왔을 때에야 처음으로 독일 사람을 보았고, 그들이 나에게 준 인상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에서 늘 봐오던 사람들처럼 무언가에 쫓기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다. 


언제나 느긋하다. 계산대에서 동전을 하나하나 센 뒤에 계산을 해도 누구 하나 짜증내는 이가 없다. 그것이 이들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나에게는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들의 느긋한 생활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이 좋았다. 지금의 남편이 왜 이곳을 추천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나를 봐온 그는 그때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늦게나마 전공을 살려 미술학도의 길을 택한 남편과 함께 베를린에 머물고 있다. 처음 만났던 독일과 독일인이 좋았고, 무엇보다 그동안 나도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었기에 결혼 후 당분간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그의 청혼도 흔쾌히 받아줄 수 있었다. 그와 함께인 독일(그리고 베를린)은 여전히 나에게 휴식이 되어주는 곳이다.

《주연 사전》을 펼쳐 '여름'을 찾는다면 "2017년 10월의 오키나와"라고 기록되어 있겠죠. 여름이 네 번째로 좋다던 평생의 마음은 2017년 10월 23일, 손바닥 뒤집듯 방향을 바꾸어 여름에 사랑이란 단어를 붙여 놓았습니다. 유창하게 할 줄 아는 말이 없어, 이국의 친절에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만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몰라요. 어느 날 나하에서 만난 한 여자가 말했죠. "발음 참 좋다. 예쁘게 말하네." 그때 영혼 한 조각을 오키나와에 두고 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덕에 눈을 감고 2017년 10월을 떠올리면 금세 여름으로 갈 수 있어요. 뙤약볕이 내리쬐는 8월의 한중간보다 2017년 10월이 더 여름답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어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오키나와.


에디터 이주연

여름에 꼭 떠나라는 법이 있나요? 여유가 사치처럼 느껴져 쉬지 못하고 매일 같은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도 있겠죠. 바로 저처럼! 슬프지만 올여름엔 일상에 치여 발이 묶여 있었어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앞으로 벌일 일들에 까마득해 어디로도 떠나지 못했죠. 그래도 괜찮아요. 멀리 떠난 것처럼 산책을 많이 했거든요. 있잖아요, 거리엔 참 귀엽고 다정한 것들이 많아요. 어르신들이 앉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작은 가게의 알록달록한 과일들, 어느 집의 빨래, 콘크리트 바닥에서 피어나는 여린 풀들. 자, 눈을 크게 뜨고 보세요! 우리 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걸으며 기쁨을 찾아봅시다.


에디터 김지수

나와 너의 산책

지난주 뉴스레터에서는 산책을 주제로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 콘텐츠를 공유했어요. 숨겨진 장소부터 영화, 음악, 책과 향까지. 님의 산책 취향은 어떤가요? 걷는 시간을 채우는 님의 주변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어라운드 직원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보내고 님의 산책 취향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오늘은 어라운드의 지난 기사 속 두 가지 여행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어요. 잠시나마 멀리 떠나온 기분을 느꼈나요? 어떤 여행의 기억이었든 다시 돌아왔을 때 나아갈 힘이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책 너머의 이야기, 오직 뉴스레터에서만 볼 수 있는 어라운드의 또 다른 소식을 전해드릴게요. 다가오는 주말도 여름의 산뜻함으로 가득 채우시길 바라요. 다다음 주 목요일 아침 8시에 만나요. 아듀! 


'산책자(A Walker)’를 주제로 한 《AROUND》 84호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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