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2022년 5월 마지막주 편지
보내는 사람 : 김스피
받는 사람 :   연구자님


쓸데없는 책과 해찰, 세렌디피티 
[5월의 김스피]

ⓒPaul Pastourmatzis / Unsplash

>5월 레터의 비하인드 : 쓸데없는 책과 해찰, 세렌디피티
 >5월의 해찰 피드 : #언어의 다양성 #K컬처 #리즈시절
>지난 편지 해찰 : 뻔해보이는 책을 일단 펼쳐본다는 것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5월도 어느새 지났습니다. 본격적으로 날도 풀리고 코로나 인원제한이 풀리면서 거의 2년 만에 조금 즐거운 나날을 되찾게 된 것 같습니다. 저도 마스크를 내리고 밤에 종종 산책을 다닙니다. 그간에도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책을 자주 다녔지만, 코로 산책을 한 것은 참 오랜만입니다. 라일락 향이 굉장히 좋습니다. 

이번달은 돌아보니 각각 첫째주(꿀벌), 둘째주(일론 머스크), 셋째주(반지성주의)로 비교적 조금 무겁고 시의적인 주제들로 꾸려졌네요. 어떤 주제든 간에 무작정 덮어놓고 ‘웃기고 쉽게’ 쓸 수 만은 없지만,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주제를 다룬다 하더라도 최대한 ‘한 번 쯤 출퇴근길에 함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끔’ 정리해본다는 원칙은 가져가려고 노력했던 한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쓸데없는 책을 읽는 것에서 나오는 ‘우연한 발견(세렌디피티)’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5월 레터의 비하인드 : 쓸데없는 책과 해찰, 세렌디피티

 연구자님은 보통 읽을 책을 어떻게 고르시는 편인가요? 

일에 필요한 책이라면 관련된 주제로 검색을 해서 고르거나, 혹은 흥미로 읽는 책이라면 인스타에서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는 것을 고르거나 하시는 경우가 많으실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엔 ‘To Read’ 목록이 이미 가득 차 있어도 일단 무조건 도서관에 가서 죽치며 서가를 이리저리 해찰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빌릴 수 있는 책이 5권 있다면 도서관으로 가기 전에 빌리고 싶은 다섯 권을 종이에 빼곡하게 적어서 가지만, 정작 적어 간 책 말고 해찰하다가 눈에 반짝 뜨인 책을 가져오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대체로 어렸을 적 심부름도 이런 식이었어서 많이 혼났습니다.)
수천 권의 책 가운데 ‘하필’ 그 책이 눈에 띄는 이유엔 정말 많은 것들이 있죠. 예를 들면 최근 잡지에서 읽은 인터뷰의 작가가 쓴 책이라든지, 혹은 옛날부터 이름만 익히 들어왔는데 한 번쯤 읽어볼까 싶었던 책이라든지, 혹은 제목이 왠지 끌린다든지 내가 읽고 싶은 책 옆에 꽂혀 있다든지, 책 표지에 귀여운 거위가 그려져있어서 마음에 든다든지 등 엉뚱한 책을 집어 들게 되는 엉뚱한 이유에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 물론 집어 들기만 하고 안 읽는 책도 많습니다만. 

성정이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때도 통상 이런 식으로 엉뚱한 해찰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 사람들의 에피소드에 눈길이 가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오인된 정체성>(2021)의 서문에는 저자가 어떻게 정체성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는데요. 어렸을 적 도서관에서 아이작 뉴턴의 책을 찾으려다가 저자 이름만 비슷한 다른 책을 꺼내 드는 바람에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버린 굉장한 우연이 눈에 띄었습니다. 

“6학년이 되어 나는 뉴턴의 세 가지 운동법칙에 관한 과학 활동을 했다. 공립도서관 인물 전기 서가에서 나는 아이작 뉴턴 옆에 있던 ‘뉴턴, 휴이 P.’라고 적힌 책을 발견했다. 그것은 <혁명적 자살>이라는 혼란스러운 제목을 지닌 인상적인 책이었다. 휴이 뉴턴의 이야기는 내게 말했다. 바로 이 나라에서, 즉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이 백인의 세계에서 내가 겪어 본 것보다 훨씬 심각한 배제를 겪은 다른 이들이 있다.-아사드 하이더, <오인된 정체성>”

독서가로도 유명한 독일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의 경우에는 '서가 옆 책(좋은 이웃 법칙)'이라는 특이한 독서론을 피력하기도 했는데요. 대체로 우리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주는 것은 본래 목적했던 책보다도, 서가 옆 같은 선반에 있는 미지의 이웃-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즐겁고 엉뚱한 만남들에 대해 일본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오배(誤配)’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잘못 배달된 편지-배송사고-라는 뜻으로, 비록 잘못 배달된 글이지만 결과적으로 내게는 (제대로 배달된, 의도적인 편지보다도) 더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링크) 우연한 실수나 만남을 통한 발견을 일컫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쓰이곤 하죠.

실제로 이런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워낙 해찰을 좋아하는 터라 도저히 평소 내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한 책을 의도적으로 펼쳐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인스피아를 쓸 때도 초기부터 이번 회차에 쓸만한 책(50%) 쓸데없는 책(50%)을 나누어서 보고 있는 편인데, 신기하게도 외려 쓸데없는 책에서 내가 찾던 내용이 나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그것을 그 회차에 그대로 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론 머스크 회차의 경우에는 만약 꼼꼼하게 보신 분이 있으시다면 조금 다른 결의 인용문이 하나 붙은 걸 눈치채셨을 텐데요. 2021년 가을호 <뉴래디컬리뷰> 속 한 문장입니다. 전혀 해당 회차에 ‘써먹을’ 생각이 없이 펼쳐본 책이지만 당시 회차를 준비하던 중 제 고민에 굉장히 맞닿아있는 대목을 우연히 발견했고 이를 해당 회차에 인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정치경제 서가에 꽂혀있을만한 내용을 담고있는 잡지이고, 그 안에서 제가 본 글은 '환경'의 분류에 들어갈 만한 글입니다. 만약 제가 일론 머스크를 공부하면서 '테크' 분야의 책만 보았다면 맞닥뜨리기 어려웠을 문장이죠.

어쩌면 이런 우연한 만남이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각 분야를 막아둔 격벽이 사실은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엔 과학기술 발명의 역사를 다룬 책과 어떤 문학 평론집을 동시에 읽었는데, 이 책들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 사건의 이미지가 너무도 비슷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레터에서도 한번 다룰 수 있다면 좋겠네요.

만약 전문가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면 이런 해찰은 좀 곤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해찰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안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이런 해찰 속에서 불현듯 푱푱 튀어나오는 재밌는 세렌디피티와 오배들이 책 안에서 헤엄치는 데 더 큰 즐거움을 주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엉망진창 해찰이야말로 공공 도서관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지입니다. 도서관에선 베스트셀러 순서대로 진열하지도, 큐레이터의 눈에 들어온 ‘훌륭하고 좋은 책’만 진열하지도 않으니까요. 심지어 고른 책을 집으로 가지고 와도 되니 팔 운동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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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흔주씨는 도서관은 창작자에게 “광산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찾던 책 옆의 책, 주변의 책을 보면서 시야가 넓어지게 돼요. 같이 묶인 자료들을 훑다가 생각지 못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광산을 파다가 금을 만나기도 하고, 구리나 망간이 나오기도 하듯이 확장의 경험을 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서들은 ‘여기를 파보세요’라고 조언해주는 이들이고요.“(기사)

👤5월의 해찰 피드 : #언어의 다양성 #K컬처 #리즈시절

5월 한 달간 SNS에서 특별히 이슈가 되었던 기사, 이슈가 된 사건 등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좋은 칼럼 등을 소개합니다. 

#언어의 다양성 #K컬처
연구자님들도 혹시 <살람! 1만km의 등교길>(링크) 기사를 보셨을지 모르겠는데요. 아프가니스탄 기여자 가족, 학생들의 정착 과정을 담은 이 기사는 한동안 SNS에서도 많이 회자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이후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재탄생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사가 국내 언론사 최초로 아프간어(다리어) 텍스트와 함께 배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사를 얹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는 달리 생각해보면, 그간 이주민이나 난민 관련 국내 기사들이 많았는데 그중 정작 직접 당사자들이 읽을 수 있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편 애플티비의 드라마 <파친코>가 지난달 29일 종영했는데,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던 큰 충격 중 하나는 역시 ‘대사’였습니다. 주로 한국어-표준어 위주인 K드라마들을 보다가 일본어, 각 지역 사투리, 영어, 피진(pidgin·서로 다른 두 언어의 화자가 만나 의사소통을 위해 자연스레 형성한 혼성어) 등이 뒤섞인 대사와 알록달록한 자막들을 듣고 보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었습니다.  
국내에도 점차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고, 점차 K컬처는 해외에서 현지화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여전히 단일한 K문화, 한국어라는 환상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근래 인상 깊게 읽었던 몇편의 글들을 소개합니다.

안녕, 봄과 함께 온 꼬마들
(인터랙티브 페이지)
👤글 속 한문장
ماه اپریل بهار شهر اولسن فرا رسیده، وحال وقت ان است که همه اطفال دوباره به مکتب فرستاده شوند.
(4월의 울산에는 이른 봄이 찾아왔다. 오늘도 꼬마들은 학교에 간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작년 8월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하면서 한국으로 건너와 바닷가 공업도시 울산에 정착하게 된 아프간 가족 157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른이 소란한 동안 아이들은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습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함께 수학문제를 풀고 뛰어놉니다.
"정성껏 쓴 기사를 당사자분들이 직접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기자의 의견으로 다리어 번역본 기사를 재작성했고, 이를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기획 과정의 고민을 담은 기사는 이쪽(링크)입니다. 
<파친코> 번역자 황석희씨 인터뷰
독서 시간: 약 13분 / 글자수 : 약 3000자 
👤글 속 한문장
완성된 대본은 다시 역사학자들의 고증을 거쳤다. ‘여보’, ‘아내’와 같은 어휘가 당시 실제로 쓰였는지 확인하는 류의 작업이었다[...']내가 이전까지 했던 자막 번역은 배우들이 뱉은 걸 자막으로 만든 작업이었다면 이번 대본 번역은 내가 쓴 대사를 배우들이 발화하는, 지금까지와 방향이 반대인 작업이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경해도 넌 그 도박해싼다. 미국, 가라” “아부진 마씨?” “난 무사?” “우린 혼몸이라해수게. 붙어있어 된다 할 땐 언제고.”
이런 낯선 한국어를 해외 프로덕션의 드라마로 접하게 된 것은 굉장히 즐거운 충격이었습니다. 이처럼 독특한 대사의 드라마였던만큼 번역자의 작업 과정도 독특했습니다. 지난해 한글날 레터와 이어지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레터:표준말 아닌 말들)
<파친코>를 K드라마라 부를 수 있는가
독서 시간: 약 18분 / 약 4000자
👤글 속 한문장
‘파친코’는 한국 드라마가 아니다. ‘파친코’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태어날 때 그 나라에 함께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다...소설 ‘파친코’의 그 유명한 첫 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말을, 마치 일본에 대한 규탄으로 받아들이며 ‘국뽕’의 소재로 삼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파친코>와 관련 '세계를 놀라게 한 K드라마' '쪽팔린 일본' '사이다 국뽕' 소재 유튜브들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것에 대해 꺼림칙한 마음을 갖던 중 읽게 된 노정태 칼럼니스트의 칼럼입니다. K컬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한국인(단일민족)'을 묶는 공통 서사란 존재하는가? 등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제공합니다.
‘한국의 언어’는 무엇인가?
독서 시간: 약 15분 / 글자수 : 약 3400자 
👤글 속 한문장
국어 매트릭스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아니 현실을 눈앞에서 지워버린다...이 기계는 국민으로 이루어진 근대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에는 효율적으로 작동했지만, 수많은 배경의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된 지금은 오작동을 하고 있다. 이 기계는 이미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된 한국 사회를 향해 이런 말만 무한 반복한다. '한국에 왔으니 이제 한국어를 하시오.'
👤김스피의 블라블라
다종다양한 한국어의 경계와 결을 섬세하게 살펴온 백승주 교수의 칼럼입니다. 이미 러시아, 중국 간판과 한국어 간판이 나란히 붙은 동네가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올바른 토종 한국어'만 강조될 때 우리는 실상 표준을 얻는 대신 무언가를 잃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리즈 시절 #5월 1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도 벌써 3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전쟁 초기에 푸틴과 우크라이나 관련 회차를 총 2회에 걸쳐 다루었었는데요. 당시 레터를 쓰기 위해 해찰하다가, 스베틀라나 보임의 <노스탤지어의 미래The Future of Nostalgia>를 접하게 되었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노스탤지어에는 복원(회복)적 노스탤지어(restorative)와 성찰적 노스탤지어(reflective)가 있는데, 이중 전자는 과거의 특정 시점 혹은 있었던 적 없던 과거의 완벽한 가치를 이상화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링크) 이를 보며 저는 우크라이나 독립을 '역사적 러시아의 붕괴'라고 강조하던 푸틴의 연설이 떠올랐습니다.(링크)
'리즈 시절'이라는 단어로 근래의 국제 정세를 짚어낸 이정철 연구원의 글을 보면서 어쩌면 제국주의가 득세하는 나라, 극우파 등은 '이상화 된 미래'보다도 '이상화 된 과거'를 미래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꼭 극우집단만의('남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과거가 제 입맛에 맞는 달콤한 노스탤지어 솜사탕 같은 것이 아닌 실질적인 교훈이 되기 위해선 그 시기의 그들이 얼마나 '망설임' 안에서 '결단'을 해왔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홍기빈의 글은 2022년의 우리를 1960년 5월 16일로 데려다놓습니다.

제국주의와 ‘리즈 시절’
독서 시간: 약 7분 / 글자수 : 약 1500자
👤글 속 한문장 
오늘날 중국과 일본의 행동도 자신들의 ‘리즈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9세기 중반 이후 1945년 패전까지 ‘리즈 시절’을 보냈다. 채 100년이 안 되는 기간이고, 세계적인 수준의 ‘리즈 시절’도 아니지만, 충분히 긍지를 느낄 만한 경험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리즈 시절’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제국주의적 꿈을 꾸는 국가 및 자신들의 한창 때의 이상화 된 추억에 얽매여있는 정치 집단들에 대해 생각해본 이정철 연구원의 글입니다. '리즈 시절' 단어의 핵심은 '과거'인데요. 통상 사람들은 보수나 진보 등의 정치적 지향이 미래 지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강력한' 지향을 지닌 정치집단의 사상 동력은 과거 지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과거 특정 시점에 대한 이미지는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비록 '구체적인 거짓'이라 할지라도요.
1960년의 선택, 2022년의 선택
독서 시간: 약 16분 / 글자수 : 약 3100자 
👤글 속 한문장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의 상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떠한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해 나가느냐일 수밖에 없다. 1960년 5월 하순의 시점에서 입장이 갈렸던 함석헌과 장준하를 두고 먼 훗날의 역사가들이야 왈가왈부할 수 있지만, 막상 그 시점을 현재로 살고 있었던 두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였을 것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홍기빈 작가의 칼럼(<두번째 의견>)입니다. 이 글을 찬찬히 읽으면서 지난주 레터에 다루었던 책 중 제가 개인적으로 밑줄을 그어두었던 대목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지난회차에선 주로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반지성주의와 지성주의를 가르는 핵심은 '망설임'의 유무일런지 모릅니다. 반지성주의적 결정엔 망설임과 불안이 없습니다.
“실제의 삶은 매순간마다 망설이고 같은 얼마만큼의 가능성 속에서 어떤 것을 결정해야만 하는지 망설이고 있다. 이 형이상학적 망설임이 삶과 관련된 모든 것에 불안과 전율이라는 분명한 특징을 부여하고 있다.”-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란>  
💌지난 편지 해찰 : 뻔해보이는 책을 일단 펼쳐본다는 것

[할로윈, 결국은 산 자들의 이야기] (2021.11.3 발행·링크는 하단 사진)

인스피아를 준비하는 과정은 크게 두 경로입니다. 1)어떤 사안이 이슈가 되어서 그 ‘사안에 대해’ 조사하게 되는 경우 2)딴짓하다가 재밌는 걸 발견해서 그것으로 이야기를 넓혀가는 경우입니다. 사실 할로윈의 경우는 '할로윈이니까 할로윈에 대해 해찰하자'라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의도로 준비된 회차입니다. 즉 가장 1번 경로적인 회차였죠. 국내에 한권 전체를 할로윈만 다룬 책이 있을리 없어서 처음으로 급하게 해외책을 공수해 메인으로 삼았습니다. 단지 제목에 할로윈이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그런데 정작 읽어가다보니 예상치도 못한 재미난 포인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핵심은 할로윈이 미국에서도 정착된지 반 세기 정도 밖에 안 된 '남의 나라 축제'이고 그것은 사실 그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것이라는 포인트였죠. 이 책과 함께 붙여본 다른 책도 그저 1920년대 민간 귀신 관련 설화, 자료들을 모아둔 보고서같은 형식의 책이었는데, 평소 구글에서 '귀신'이나 '할로윈'을 쳤을 때 결코 나오지 않을만한 사료(해찰거리)들이 잔뜩이라 엄청 신나게 헤집어보았습니다. 당시 사회의 커다란 걱정거리나 문제를 귀신 탓으로 여겨온 역사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쩌면 IMF 귀신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진짜로 있었고(...) 그래서 기사 사진을 잘라 넣었죠.
아무리 '뻔해보이는' 책과 주제라 할지라도 성실하게 쓰여진 글을 일단 '실제로 붙잡고 앉아서 읽어보면' 반드시 독특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던 회차입니다. 뻔한 주제를 뻔하게 만드는 건, 주제보다도 나의 무덤덤한 태도와 게으름일 수 있죠. 재미난 해찰의 요는 '진정성 있게 쓰여진 책'과 '성실히 딴짓하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래도 만약 지금 와서 외국책 하나랑 1920년대에 쓰여진 두꺼운 민속보고서 던져주면서 다음주 레터 준비하라고 하면 도망가고 싶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대체로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래 사진을 누르시면 편지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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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을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인 유머와 놀이는 패러디의 힘을 가질 순 있으나 그것 자체가 체제전복적인 것은 아니다. 되레 할로윈이 갖는 반전의 힘은 때로 치명적으로 반사회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만약 할로윈이 문화적 다양성과 유연성을 위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사회의 편협한 공격성을 위한 공간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할로윈은 약자들에 의해 혁명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약자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페스티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카니발처럼 말이다

오늘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레터를 잘 보셨다면 아래 '피드백 남기러 가기'에 간단히 감상이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구자님 나름의 ‘좋아하는 도서관(혹은 다른 장소) 해찰법’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피드백 남기러 가기 버튼 설문에 해당 질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새 날씨가 급 여름이 되어버렸는데요. 아무쪼록 일교차에 주의하시고 냉방병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오늘 편지는 어떠셨나요? 편지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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