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못하는 것을 찾다가 오랫동안 열망했지만 정말로 못하는 운전을 하면 내 성장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어릴 때 호기심으로 잡은 골프카트를 바위에 처박은 기억이 자꾸 떠올라 과연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계속 들었지만 도파민 중독 초기의 나는 내가 못하는 것을 해내는 것이 즐거워 동네 친구를 꼬셔 같이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기에 이른다.


모든 것이 쪄죽는 코로나 시국의 7월. 친구와 나는 광명의 운전면허학원에 가서 70만 원을 할부로 긁고 왔다. 하필 돈도 잘 못 벌 때라 70만 원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던지…. 아니다 70만 원은 지금도 큰돈이다. 대형면허를 따고 싶어서 알아봤는데 동일한 금액이라 여전히 학원 등록을 못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아무튼 등 떠미는 사람이 없어도 이것저것 잘 찾아서 일을 벌이는 30살의 나와 친구 은하는 운전대를 잡으러 광명까지 몇 주를 왔다 갔다 했다. 


‘자 이제 내려서 운전석으로 가세요’


본 게 없고 한 게 없는데 장내 연습장에서 한 바퀴 대충 돌고 강사가 나에게 한말이었다. 지금 이렇게 바로 한다고? 저 사람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하는 생각도 잠시, 무더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고물차를 보니 딱히 큰일은 나지 않을 것 같아 편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엑셀과 브레이크 자동차 작동 방식도 모르던 내가 휠을 잡다니 감개무량했지만 가장 쉬운 장내코스마저 모든 부분이 난코스처럼 느껴졌다. 그다음 주의 강사는 가관이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누를수록 더 세게 튀어 오르는 나답게 오기로 혼자 장내 코스를 익혔다. 강사는 사고 날 것 같은 상황에서만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장내에서 사고 한번 나 봐? 하는 생각으로 해보니 빠르게 운전하는 감각을 익혔고 강사가 내려서 한다는 소리가 ‘거봐 혼자 해봐야 안다니까요? 장내 기능 백 점 받겠네’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이렇게 무더위 뙤약볕 아래서 필기와 실기를 모두 해내고 도로 주행까지 잘 마쳐 면허를 받아냈다.


문제는 집에서 아빠가 독점하고 있는 가족 자동차였다.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마련한 기아 SUV였는데 주행거리가 고작 5만 밖에 되지 않은 새것 같은 똥차를 내가 점유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 고물차로 운전 연수를 꼭 받고 싶었기 때문에 아빠와 말도 안 되는 기싸움을 몇 달 동안 했다. 몰래 차 키를 빼앗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을 켜보고 이것저것 조작해 보고 무서워 다시 아닌 척 돌려놓거나 무작정 연수 강사를 불러 아빠가 회사에 있을 때 전화로 통보하기도 했다. 그제야 나를 본인의 보험 아래로 넣어준 아빠를 조수석에 앉혀 2번의 연수를 끝으로 가족 자동차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이후부터는 쏘카를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전에 관한 나의 여정은 면허학원 메이트였던 은하의 덕이 크다. 나와 비슷하게 일단 일을 저지르는 것을 잘하는 은하는 면허를 따고 나서 무작정 엄마 자동차를 끌고 다녔다. 새벽에 몰래 가지고 나갔다가 주차를 못해서 부모님을 깨우기도 하고 일이 없어도 운전을 할 구실을 만들어 운전을 했다. 폭설에도 강원도를 가기 위해 새벽 운전을 하는 은하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역시 일단 해야 한다. 


해봐야 안다. 


그리고 그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은 내가 처음 하는 것일수록 제일 재미있다. 왜냐면 못하는 것일수록 작은 발전에 큰 전후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여기에 관점을 두면 생각보다 큰 성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때 못할 수도 있지 처음인데’라는 생각은 처음 무언가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호기롭게 시작할수록 힘이 많이 들어가서 오래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약하게 시작할 때 성대하게 끝낼 여지가 있지만 성대하게 시작하면 그 끝이 무엇이 되었든 미약해 보이기 마련인 법이다. 



오늘도 내가 잘 하지 못할 것들의 목록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