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색’ 인터뷰 31

님, 안녕하세요. 11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인사 드립니다. 매월 마지막 주의 고독단 북레터는 책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달의 별색 인터뷰’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11월의 별색 인터뷰 주인공은 최근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펴낸 백수린 소설가입니다👏 (사진 ⓒ이종근, 그루비주얼)

🌈 별색이란?
일반적인 인쇄에서 사용되는 C(시안), M(마젠타), Y(노랑), K(검정) 4가지 색의 조합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특수한 색을 ‘별색’이라고 해요. 고독단 여러분의 독서 생활에 다채로운 별색을 더해 줄 특별한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백수린이라고 합니다. 소설집 『폴링 인 폴』『참담한 빛』『여름의 빌라』,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짧은 소설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출간했고, 몇 권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어요. (사진 ⓒ 신나라)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오래전에 계약한 번역서를 올해 출간하게 되어서 번역 원고를 마무리하며 지냈습니다. 새 소설도 쓰려고 하고 있고요.

— 신작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최근 출간하셨지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책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한 달이나 된 게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산문집을 낼 때는 소설을 낼 때와는 다른 종류의 걱정들을 하게 되는데요. 이미 세상에 나온 책이니 걱정은 그만 하고, 제 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잘 가닿기만을 바라려고 합니다.

— 이번 책에는 제목처럼 작가님께 행복의 느낌을 주는 것들과 작가님이 사랑하시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최근 작가님에게 ‘행복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최근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과 가을의 빛이 제게 ‘행복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따뜻하게 마시는 생강차, 향기로운 보디크림, 얼른 익기를 기다리며 날마다 들여다보는 대봉도 그렇고요.

— 책에서 서울의 조용하고 오래된 동네로 이사한 후 처음으로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에 살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것들에 대해 쓰셨지요. 지역 커뮤니티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면서 작가님께 생긴 변화가 있을까요?

책을 읽으신 분들이 기대하시는 것만큼 제가 이웃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기 때문에 싹싹하게 먼저 말을 걸거나 하지를 못해서일 텐데, 그러다보니 이웃들과 얼굴은 알지만 말을 섞어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언덕 위의 동네에서는 아무래도 서로 얼굴을 볼 일이 많으니 더 가깝게 느껴지기는 해요. 이웃집에서 한밤중에 웃는 소리가 크게 들리면 소음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보다는 “뭐 좋은 일 있으신가보다” 하고 따라 웃게 되는데, 옆집에 사는 사람을, 익명의, 내 삶을 침해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이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 같습니다.

— 반려견 봉봉을 떠나보낸 후 천천히 슬픔과 마주하셨던 시간들을 따라 읽으며 마음이 아렸어요. ‘단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슬픔이라는 ‘좁고 긴 터널’을 지나며 홀로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에세이에도 썼지만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꼭 알맞은 위로를 건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헤아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반려견 봉봉)

저의 경우 위로가 되었던 건 말이 아니라, 작은 행동들이었던 경우가 많았어요. 슬픔을 전부 이해할 수 없고 완벽히 덜어줄 수도 없지만, 그래도 마음을 써주고 있음을 제가 느낄 수 있도록 같이 있어준다거나 음식을 챙겨준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식의 행동들이 몇 마디의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산책을 하며 만난 여러 계절의 풍경들과 그 속에서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요즘에도 산책을 자주 하시나요?

요즘도 산책을 꽤 하는 편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걷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바삐 어딘가를 갈 때는 알아채지 못하는 계절과 날씨의 미세한 변화도 느낄 수 있고요. 새로 생긴 가게나 사라져버린 장소들에 숨은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것도 무척 즐겁습니다.

— 마흔이 되었을 때, 스무 살에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나의 40대가 즐겁고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하리란 걸 예감하셨다는 부분이 좋았어요. 앞으로 40대를 거쳐가며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이나 기대되는 점이 있으신가요?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은 언제나 아주 많아요. 실천에 옮기는 데 무척 더딘 편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40대가 가기 전엔 그간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피아노 연주 배우기, 요리 배우기, 프랑스 자수 배우기 같은 것들이요.

— 작가님의 독서 취향이 궁금합니다. 평소 좋아하시는 작가나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만을 번역해왔는데요. 최근에는 아니 에르노의 『여자아이 기억』이란 책을 번역했어요.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해서 국내 독자들에게 요즘 많이 알려졌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아니 에르노를 무척 좋아했는데요. 이번에 번역하느라 여러 번 읽은 『여자아이 기억』에는 제가 문학작품에서 좋아하는 요소들이 잔뜩 들어 있어 번역하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제가 번역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작품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 작가님만의 독서 습관이 있으신가요?

매우 좋지 않은 자세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엎드리거나 침대에 누워서 책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아니면 카페에서 읽는 것도 좋아하고요. 이왕이면 차와 초콜릿이 곁에 있으면 더 좋겠죠. 특별한 독서습관은 없지만, 언젠가부터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그다음 책으로 넘어가기보다는 읽고 싶었던 책들을 동시에 조금씩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 독서에서 배운 인생살이의 팁이 있을까요?

“관계를 정말로 존중한다면 그에 들여야 하는 노력은 예의를 갖춰 정확히 말하려는 노력이지, 참고 또 참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게 전자는 느슨해진 나사를 조이고 기름을 쳐서 관계가 오래가게끔 정비하는 것이고, 후자는 쉽게 나을 수도 있었던 상처들을 덮고 덮어 곪게 하는 것이다.”

제 책의 추천사를 써주시기도 한 김하나 작가님의 『말하기를 말하기』에 실린 글의 일부인데요. 평소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거절도 못하는 편이라 억지로 참다 곪을 지경이 되어가면, 김하나 작가님의 저 말을 떠올립니다. “예의를 갖춰 정확히” 내 마음과 의견을 다른 이이게 전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귀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새 소설 집필을 시작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보았습니다 :) 작가님의 글을 애정하고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어떤 이야기인지 살짝 들려 주실 수 있을까요?

새 단편소설 집필을 시작하긴 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안 풀려서 12월이 되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내용이 될지 말씀 드리긴 어려울 듯한데요. 인스타그램에 언급했던 새로 쓰려는 소설에 대해서는 (저도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몰라) 말씀 드리기가 어렵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마 내년 상반기에는 첫 장편소설이 출간될 예정이니, 제 글을 기다리시는 독자분들께는 그 책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잘 마무리해서 출간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2022년도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요. 올해를 어떻게 마무리하며 보내실 계획인가요?

올해는 개인적으로 일을 무척 많이 한 한 해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조용하고 평온하게 연말을 맞이하고 싶어요. 올해는 운동을 꾸준히 해보고 싶었는데, 실패한 게 아쉽기 때문에 12월 한 달간은 5분씩이라도 날마다 근력운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공한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은데, 잘할 수 있겠죠?

— 마지막으로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예비 창작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예비 창작자들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야 할 때면 항상 떠올리게 되는 문장으로 제가 들려드리고픈 한 마디를 대신 합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