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아임과 오막에게, 제일 먼저 고막사람의 지면에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022_고막사람 편안하고 경이로운 초대에 응하며
혜원 to 아임 & 오막
2023년 6월
 
보고싶은 아임과 오막에게,


제일 먼저 고막사람의 지면에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주로 출근해서 메일을 확인하는 오전 근무 시간에 고막사람을 읽는다. 간간히 내 메일함으로 찾아 오는 너희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가끔은 일을 하다 말고 너희가 나누는 대화에 끼어서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편지글에 가끔 내 이름이나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날에는 기분이 좋아서 모니터 앞에서 배시시 웃곤했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의 인연이 말이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를 나왔지만, 학창시절 단 한 번도 셋이 특별히 친했거나, 한 그룹에 속했던 적은 없었다. 나와 오막의 교집합인 아임과의 개별적인 관계가 있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중학교 졸업과 함께 자연스레 소원해 졌더랬다. 그런데 내가 불현듯 ‘무언가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 바로 아임이었다. 이후 20여 년 만에 만난 우리는 1년 만에 번역서를 내고, 소설을 쓰고, 전시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웠던 2021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매주 혹은 격주의 시간을 서로에게 고정하여 생각을 나누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아임에게 고정한 시간은 오막과도 연결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임과의 대화를 통해 오막이 아임과 공유했던 생각의 파편들을 일부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생각하게 된다. 만나게 될 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는 말이 있던데,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이 뉴스레터로의 초대는 나에게 그 어느 초대보다 편안하고 경이로운 초대였다. 



우리 셋의 학창시절, 오막이 보여준 도쿄 여행 사진은 나에게 가장 먼저 향수 어린 한 애니메이션 작품과 그 사운드 트랙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바다가 들린다>(1993)이다. 
어때? 우리 중학교 교복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일본의 9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이틴 로맨스이다. ‘여름이었다’ 밈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하는 작품이랄까? 풍요로운 버블 시대 일본의 정취가 곳곳에 묻어나며 향수를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표적인 지브리 작품들과는 결이 매우 달라서 지브리 작품인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청량하고 세련된, 보다 담백하고 성숙한 정서 때문은 아니었을까 한다. 
넷플릭스에도 올라와 있으니 아직 안 봤다면, 여름이 오기 전 보기를 추천한다.


이 곡은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휴대폰 벨소리로 만들기까지 했던 곡이다.
First Impression - Nagata Shigeru (The Ocean Waves OST)
아마도 작품 전체의 정서를 제일 잘 표현하고 있는 곡이 아닐까 싶다.
The Ocean Waves - Nagata Shigeru (The Ocean Waves OST)
이 곡은 위의 곡에 가사를 붙인 버전이다. 아련 그 잡채…
Ocean Waves 1993 Ending Theme (I can Hear the Sea) - Nagata Shigeru (The Ocean Waves OST)
이 곡을 제일 추천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유튜브 링크를 찾지 못해서 스포티파이 링크를 남긴다:
전 앨범을 꼭 들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데, 유튜브 프리미엄에서만 재생 가능한 듯하다. (혹시 몰라 링크로 첨부한다.)
<바다가 들린다>의 바다가 아련한 추억의 바다였다면, 오막이 소개해 준 타츠로 야마시타의 앨범은 태양이 작열하고 열대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영화 <비치>(2000)의 바다를 떠오르게 한다. 
Porcelain - Moby (The Beach OST)
개인적으로 이 영화와 음악은 대학생때 배낭 하나 둘러매고 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를 일주했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위 영상의 댓글들을 읽어보니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 이 음악을 찾아온 것 같았다. 태국의 공기처럼 습하고 혼란스러웠던 미성숙한 젊음의 기억같은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카프리오의 캐스팅은 정말 잘 맞아 떨어진다. 영화는 그야말로 2000년대 초 백인 남성 미국인이 생각하는 ‘청춘 시절’ 이미지의 종합 선물세트와 같다. 이국적인 동남아시아 외딴섬에서의 모험, 섹시한 프랑스 여자와의 로맨스, 그리고 마리화나.
한편, 작열하는 태양과 노스탤지어의 바다라면 비치보이스를 빼놓을 수 없겠다. 비치보이스의 곡들은 나에게 달콤하고, 몽롱하며, 나른할 것 같은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연상시키는데,  동시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 『댄스 댄스 댄스』(1988) 같은 하루키의 초기작들을 떠오르게 한다.
Kokomo - The Beach Boys (Cocktail OST)
California Girls - The Beach Boys
Surfin U.S.A - The Beach Boys
그런데 비치보이스의 이 명랑한 곡들은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는 왠지 모를 불안을 드리우는 요소이기도 했다. 고독함, 상실이나 죽음 같은 것들. 그래서 그런걸까? 가끔 비치보이스의 천진한 밝음을 듣고 있노라면 어쩐지 그 밝음에서 더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임과 오막은 비치보이스를 좋아하시는지?
***
오랜만에 이 곡들을 듣고 있자니, 오막 그리고 아임과 함께 저녁의 사막 한가운데서 고막사람 플레이 리스트를 듣고 있는 상상을 했다. 우리 셋은 캠핑카 앞에 피운 불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앉아서 가만히 음악을 듣고 있다. 오막이는 일본에서 새로 사 온 기타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오막이 말 대로 우리 꼭 함께 사막으로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자. 아니, 사막까지 가지 않더라도 오막이가 도쿄에서 가져 온 그 앨범을 꼭 같이 들어볼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언젠가 어느 장소에서 우리 한 밤의 청음회를 열도록 하자. 
그럼 오막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캘리포니아 걸 아임의 여행 이야기를 기다리며,

서울에서
혜원
이번 편지를 보낸 이혜원은...
이혜원은 전시를 만들고 번역을 하며 글을 쓴다.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 (space xx, 2021)를 기획했으며 아임과  『괴물성: 시각 문화에서의 인간 괴물』(2021)을 공역했다. 지금은 도시 경관을 디스토피아적으로 재현한 예술 사례들을 검토하는 논문집, 『누아르 어바니즘: 현대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들』(2023 예정)을 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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