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July 25, 2023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22
천장을 헤딩하는 몬스테라

🍀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식물방의 몬스테라가 천장에 잎이 닿아 줄기가 꺾여 있습니다. 줄기에서 뻗어나온 공기뿌리는 벽에 달라 붙어 있고, 일부는 화분 밑으로 빠져나와 바닥을 기어다닙니다. 한때 몬스테라는 이국적인 정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이었는데, 이제는 애물단지가 된 느낌마저 듭니다. 몬스테라의 진정한 매력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이지요. 몬스테라가 작을 때는 구멍 난 잎을 볼 수 없지만, 점점 대품으로 커갈수록 잎이 찢어지면서 구멍을 냅니다. 그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몬스테라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저는 줄기가 꺾인 5년차 몬스테라를 바라보며 조용히 위로합니다. 


“네가 여기 와서 고생이 많다.” 


얼마 전, <킨포크 가든>이라는 책에서 멕시코의 정원 ‘라스 포자스’(Las Pozas. 초현실주의 시인 에드워드 제임스가 1949년부터 1984년까지 30년에 걸쳐 만든 예술 정원)의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라스 포자스의 정원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 구석에서 무심하게 자라고 있는 몬스테라의 군락 때문이었습니다. 거실 화분에서만 클 것 같던 몬스테라가 버젓이 노지에서 자란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원산지인 멕시코에서는 몬스테라가 자라는 게 당연한 건데도 말이지요.  


오리지널리티가 주는 감동이란 이런 것인가봅니다. “이곳이 진짜 열대구나” 하는 감동이 있는 것이지요. 라스 포자스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저의 몬스테라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몬스테라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180여 년 전이었습니다. 덴마크의 식물학자 프레데릭 리브먼이 멕시코의 정글에서 처음 발견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거실에서 키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식물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뭐하다 이제 나타난 거니!”


그런데 사실 저도 몇 년 전 몬스테라를 처음 봤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그동안 대체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 나타난 것이더냐!”


몬스테라가 뿜어내는 이국적인 매력은 시대를 뛰어넘습니다. 몬스테라를 시작으로 저의 열대식물 위시리스트는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특히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식물 피드는 저의 ‘뽐뿌’를 무한자극했습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의 식물 사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거실이나 침실에 열대식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것이었고, 사진 아래에는  “Urban jungle(어반정글, 도심 속 정글)”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습니다. 


사실 이 어반 정글 스타일의 인테리어 트렌드를 주도한 그룹이 있습니다. ‘어반 정글 블로거스(Urban Jungle Bloggers)’라는 유럽의 가드닝 정보 커뮤니티지요. 이 커뮤니티는 2013년 독일 출신의 식물애호가인 이고르 조시포비크가 만들었습니다. 어반 정글 블로거스는 홈가드닝에 필요한 정보와 팁, 그리고 플랜테리어 아이디어를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고, 현재까지 122만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거실이나 침실에 열대식물을 빼곡하게 채워서 키우는 어반 정글 스타일은 저의 취향도 제대로 저격했습니다. 테라리움이라는 작은 유리 상자 속에 열대를 재현하며 만족하고 있었는데, 공간 전체를 열대식물로 채울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즐거웠습니다. 


문제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열대식물들을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던 중 몬스테라를 비롯하여, 필로덴드론, 안스리움 등의 식물을 유통하는 식물업체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식물 업체들은 대부분 동남아의 농장이나 유럽 등지에서 식물을 수입해왔습니다. 


이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2010년대 초반부터 체계적인 유통망을 갖춘 남미의 식물기업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업들은 원예종이 아닌 남미를 원산지로 하는 원종 식물을 중심으로 유통을 했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개량종에 싫증을 느낀 식물집사들은 열대의 원초적인 자연미가 물씬 풍기는 열대의 원종 식물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유럽의 식물집사들은 남미의 열대우림에서 살던 원종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집 안 곳곳을 울창한 정글의 느낌으로 꾸몄고, 이렇게 꾸민 자신의 공간을 앞다투어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식물 인테리어 흥행에 ‘판’을 깐 것은 다름 아닌 남미의 식물기업이었습니다. 


19세기 초반, 유럽의 식물학자들이 식민지를 통해서 경쟁적으로 식물 탐험을 시작하면서부터 열대의 식물들은 문명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왕실과 귀족들이 콜렉션한 식물들을 온실에 키웠지요. 온실의 난방은 증기를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온실에 모아놓은 열대의 식물들은 식민지에 대한 지배력을 외부에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열대식물들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대중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죠. 특히 이국적인 형태 덕분에 건축가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야수파 화가로 유명한 앙리 마티스는 그의 작품 <뮤직>(1939)의 배경에 몬스테라를 과감하게 그려넣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마티스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필로덴드론을 직접 키우며 작품의 모티프를 얻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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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의 식물방 천장에서 더 이상 뻗을 곳이 없는 몬스테라를 잘라내어 큰 화분에 옮겨주었습니다. 줄기에서 뻗어나온 공기뿌리도 고스란히 살려냈습니다. 큰 화분에 옮긴 몬스테라는 한참 분갈이 몸살을 했지만 이제 조금씩 기운을 내고 있습니다. 저는 좀더 좋은 환경에서 이 식물이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이 몬스테라를 키워줄 사람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식물을 키우는 동생 한 명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형님, 저희 회사에 식물 키울 공간이 하나 있어요. 층고도 4미터는 족히 되고요. 한쪽 벽이 부직포 재질로 되어 있어서 몬스테라가 타고 오르기에도 적당할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런 꿈의 공간이 존재한다니! 저는 당장 동생 편에 몬스테라를 보냈습니다. 그런 환경이라면 분명 저의 식물방에서보다 훨씬 더 크고 멋지게 자랄 것입니다. 동생이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 벽에 몬스테라를 태우면 온통 몬스테라 덩굴이 덮히지 않을까요?”


생각만 해도 멋진 풍경입니다. 180년 전, 한 식물학자가 몬스테라 군락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을 진짜 정글 풍경을 도시의 한복판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아피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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