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유천지 6호실"

 태화복지재단은 1921년에 세워진,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입니다. 당시 매우 척박했던 이 땅에, 소외된 여성과 아동을 위한 사회사업을 펼쳤던 태화의 노력은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태화 창립 100년을 준비하며, 태화의 역사와 사회복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본 내용은 1997년 4월 1일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 발행한 ['태화이야기' - 이덕주 著]에서 발췌 구성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 '태화관' 3.1운동 이야기 "별유천지 6호실"

"挑花流水에 沓然去하니 別有天地에 非人間이라"
"복숭아 꽃 떨어져 흐르는 물따라 아스라이 흘러가네.
속세 떠난 별천지 예 아닌가."
  -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시 <山中 答俗人> 中 -

 별유천지(別有天地), 속세(俗世)에 반대되는 세상, 무릉도원(武陵桃源), 도원향(桃園鄕)으로 묘사되는 이상세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유토피아(utopia) 또는 파라다이스(paradise)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3.1운동 때 독립선언식이 선포되었던 태화관 별유천지건물.
그 앞의 인물은 당시 중화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옥고를 치른 후
1926년부터 태화여자관 부속 성경학원 교감으로 봉직한 이효덕 전도사>
 태화가 인사동에서 사업을 시작하던 1921년 4태화관 경내에 별유천지가 있어 장안의 명물이었습니다.
초대관장 마이어스는 이완용으로부터 이곳 부지와 건물을 구입한 후한국 최초의 여성 사회사업 기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공식 개관에 앞서 하루 동안 태화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했는데몰려드는 사람들로 개방 기간을 사흘로 연장해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서양 여자가 하는 사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호기심으로 온 사람도 많았지만태화관 자체를 구경하러 온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400년 동안 권문세도가의 저택이었다가 서울 제일가는 요릿집이었던 태화관은 이 점 외에도 구경거리가 많았으니특히중문을 지나면 널찍하니 연못이 눈에 들어오고 연못 둘레에 태화정’ ‘낙원정이 오누이처럼 서 있는 중에 온갖 나무와 화초들이 계절 따라 그림을 달리 그려내는 풍경이 과연 절경이었습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 같은 비경이 있었으니 별유천지가 여기 아닌가 싶었지요태화관이 처음 문을 열었던 때가 4월 초였으니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이태백이 꿈속에서 보았다는 별유천지가 이와 다를까실제로 태화관 정원 숲으로 이어지는 언덕 입구에는 別有天地(별유천지)’라 새긴 간판이 서 있어 속세와 낙원을 구분 짓는 듯 했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태화관을 구경하러 몰려든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그건 바로 2년 전태화관 별유천지에서 일어난 사건그 사건을 기억하고 그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그 사건은 바로 기미년 만세사건!

<태화빌딩 로비에 걸린 한국독립선언도(허규 그림, 1990)>
 그 당시 명월관 분점으로 쓰였던 이곳이 훗날 민족의 성지라 불릴 만큼 유명한 곳이 된 것은 바로 이곳에서 민족대표 29분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함으로 3.1만세운동의 불길을 지폈기 때문입니다.
 손병희 선생으로부터 거사 하루 전에 연락받았던 요릿집 주인은 태화관에서 제일로 치는 방, ‘별유천지 6호실을 깨끗이 치우고 손님들을 맞았습니다아직 겨울 찬바람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별유천지는 민족의 봄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기미년 만세사건 당시태화관의 실소유주는 바로 매국노의 상징 이완용한말 어지러운 때 권력을 이용해 이곳을 차지했으나 성난 민중의 분노가 두려워 도심 한복판 이 집을 요릿집 명월관에 세주고 변두리로 이사 가서 살던 중자기 소유 집에서 이 일이 벌어졌으니그 심정이 어땠을까요팔겠다고 내놓을 만했지요바로 이때미국 남감리교 여선교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선교를 전개할 공간을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그래서 서울 한복판 인사동 194번지 일대가 감리교 사회선교의 중심태화여자관 일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태화여자관 유희장(무산아동운동장)>
 선교사들은 태화관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급적 옛 건물을 부수지 않고 사업에 필요하게 개조해서 사용했는데어린이들이 뛰어 놓을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하느라 연못을 메운 것 외에는 옛날 풍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손님을 맞았습니다태화관 집 중의 집경치 중의 경치, ‘별유천지 6호실’. 바로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하여 민족의 성지로 일컬어지던 그 방도 헐리지 않고 원형 그대로 새로운 손님을 맞았으니한 세대 후에 민족의 운명을 짊어질 어린아이들의 배움과 놀이의 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1937년 태화관이 대대적인 건축을 하면서 옛날 있었던 건물들을 모두 헐기 전까지 별유천지 6호실은 태화유치원 교실이 되어 수백 명이 넘는 아이들의 응석과 웃음을 받아들였지요비록 남의 땅빼앗길 들녘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루어질 해방된 세상,

별유천지’ 낙원을 그리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의 숲 캠프로
심신의 치유와
힐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감염예방을 위해 복지관 전체 방역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

코로나19로 떨어진 서로의 거리,
마음까지 멀어질 순 없겠지요?
사회복지법인 감리회 태화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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