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7, 2023
-준비2호-
로벤스보고서,
한국에서 뿌리내릴 수 있을까?
최근 가장 핫한, 로벤스보고서

50년전에 영국의회에 제출된 로벤스보고서,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노사정이 모두 같은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도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죠. 지금까지 신문기사들을 살펴보면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로벤스보고서의 문제의식을 부정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최근 국회미래연구원의 박상훈 거버넌스 연구위원은 로벤스보고서를 노동안전분야의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라고 칭합니다.


로벤스보고서, 통찰의 순간

로벤스보고서가 나오기 전 영국의 상황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매년 1,000명에 가까운 산재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었고, 대형참사도 반복되었죠. 처벌과 감독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체계가 요구될 때, 우리는 '통찰(insight)의 순간'을 맞이 하게 됩니다. 

"직장 내 사고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무관심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기이한 역설이 있다. 사회는 주요 재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연간 산업재해 사망 및 부상 통계에 대해 일시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터에서의 심각한 사고는 개인의 경험에서 볼 때 드문 사건이다. 더구나 유해한 작업 환경에 노출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나는 은밀한 질병까지 인식하기는 어렵다. 이로부터 실질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개인적 경험으로 안전인식을 고취하기 어려우며,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이고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안전의식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제 및 행정조직 선진화를 위한 로벤스 보고서 번역 및 해제



산업재해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은 이유


1960년대 영국은 20세기 초기에 비해서 산업재해가 상당히 감소한 상태였습니다. 근로조건도 상당히 개선되었죠. 그러나 더 이상 감소되지 않는 정체기를 맞이 하게 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차원의 고민과 분석이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 "법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결함은 너무 많은 법이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연달아 제정된 각각의 법령은 하나의 확인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을 뿐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터안전보건의 문제를 외부기관이 강제하는 상세한 규칙의 문제로 여기도록 본능적으로 길들여져 왔다고 말합니다.  작업장을 더 자주 방문하여 개선시키겠다는 전략은 감독관의 수를 고려할 때 명백히 실현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더 많은 감독으로 무관심한 태도가 고쳐질리 만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실행해야 하는가?

"작금의 산업재해와 질병 수위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위험을 발생시키는 사람과 위험을 안고 일하는 사람에게 있다. 우리의 현재 체계는 국가 규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개인적 책임과 자율적 노력에 너무 적게 의존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

이에 따라 더 효과적인 자율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시스템는 국가에 의한 규제와 감독, 사업의 자율규제(self regulation)와 자조(self-help)로 구조화됩니다. 그리고 자율규제 시스템의 3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죠.

1) 일터안전보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2) 책임성의 명확한 정의

3) 실질적인 목표에 기반한 평가



자율규제에 대한 해석의 차이들


2022년 11월 30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 감축로드맵'을 발표합니다. 그는 "적발과 처벌로는 재해율이 감소하지 않았다", "실제 안전역량향상을 위한 노력보다는 당장의 처벌을 피하기 위한 페이퍼작업에만 몰두한다"고 우리나라의 안전보건의 현실을 진단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은 "자기규율 예방체계'이며, 이를 위해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힙니다. 로벤스보고서를 한국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선언이었죠. 그러나 노동계와 경영계는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노동계에서는 자율규제를 '규제완화'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고, '인간의 선의'에 대한 지나친 기대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무늬만 '자율'일뿐 또 다른 규제가 더해지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의심했죠.


중대재해, 처벌서 예방 중심…‘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정부

기업 자율예방 실효성 논란…위험평가 의무화 '또다른 규제'



로벤스 보고서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해석의 차이, 실현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로벤스보고서의 원칙이 한국사회에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관행에 맞서 제도의 패러다임적 변화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목표지향적이고 체계화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사의 관점이 다르고, 정치의 영역에서 여야는 항상 대립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영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이러한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특별한 인물, 알프레드 로벤스에 대해

이 과정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노사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로벤스'라는 인물의 독특함입니다.
그는 1910년 맨체스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밑바닥 인생으로 시작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였죠. 그는 지역 노동조합활동부터 시작하여 영국 노동당에서 하원의원을 지냈습니다. 이후 국영석탄공사 사장을 10년간 엮임하였습니다. 당시 영국의 석탄산업은 침체기였고 파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석탄산업의 불합리한 임금구조를 개선하여 파업을 줄이고, 석탄산업을 현대화하고, 새로운 판매처를 개척합니다. 석탄산업쇠퇴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정책'을 도입하도록 여야를 성공적으로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국광산노동조합의 사무총장이었던 페인터(Willian Paynter)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는 국영석탄공사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갱도를 직접 방문하고, 광부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했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다가 1966년 144명의 목숨을 앗아간 애버밴 참사(웨일스 탄광촌 석탄폐기물 붕괴사고)로 중대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합니다. 붕괴된 폐기물이 초등학교를 덮쳐 116명의 아이들이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로벤스는 국영석탄공사 사장 3번째 임기를 수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버라 캐슬 노동부장관은 새로운 일터안전보건 정책 보고서의 총괄책임자로  로벤스가 가장 적임자라고 지목합니다. 그는 노사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얼마되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벤스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된 이후 의회권력은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이동하였지만, 로벤스보고서는 꾸준히 이행됩니다.



로벤스 보고서, 한국에서 뿌리내리기

우리는 로벤스 보고서라는 씨앗을 받았습니다. 그 씨앗은 새로운 산업안전보건의 원칙과 방향, 그리고 영감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씨앗에 거름을 주고, 가꾸어 꽃피우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요? 

"그는 진보적인 신념을 정당화하는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실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꺼이 보수당 정부에서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했고, 보수당 정부로 하여금 자신이 제안한 노동안전체제의 재편과제를 수용하게 함으로써, 변화를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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