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잔인한 영상’만 보는 사람들 : 그림자 노동

종일 ‘잔인한 영상’만 보는 사람들 : 그림자 노동

The Cleaners who scrub social media : Behind the screen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95), 2023.8.23,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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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AI, 노동, 모더레이터, 인터넷, 비밀주의

1.머리말
2.감춰진 필수노동 : “Behind the Screen”
3.과연 ‘인간 노동’은 쓸데없어질까?
4.노동이 ‘비밀’이 될 때 : “더티 워크”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최근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나 ‘서현역 사건’ 당시 영상을 보고 트라우마를 호소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CCTV, 현장 촬영 영상을 모자이크 없이 고스란히 SNS에 올려서 이를 본 사람들이 충격에 빠진 것이죠.(링크) 과거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었는데요.

만약 그런 영상들을 주 5회 거의 하루 종일 꼬박꼬박 봐야하는 직업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직업이 있습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라는 직업입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Content Moderator·콘텐츠 조정자) =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 텍스트 등의 콘텐츠 가운데 잔인, 극단적이고 유해, 부적합한 것들을 골라내 처리하는 업무를 하는 노동자.

콘텐츠 모더레이터 시장 규모는 약 6조원(2022년 기준 약 49억 달러)에 달합니다만,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로요.

“우리가 대신 ‘총알’을 맞고 있는 거죠...”

근래 저는 케냐의 한 콘텐츠 모더레이터와 관련된 기사(링크)를 읽었습니다.

AI에 사람들이 입력하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글, 이미지 때문에 케냐의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이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다는 사연이었죠.

아동 폭력, 적나라한 시체 사진, 고문, 전쟁 혹은 범죄 영상 등 평생 한번만 봐도 트라우마가 남을만한 끔찍한 것들을 업무 내내 봐야 했고, 결국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지경이 됐다고 합니다.

여전히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10년 이후(링크) '콘텐츠 모더레이터'의 노동 조건과 관련된 문제는 종종 보도가 되어왔습니다. 지난 2018년 페이스북에서 콘텐츠 조정 업무를 하던 셀레나 스콜라라는 여성은 이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고요.(링크) 이에 지난 2020년 페이스북은 전현직 모더레이터 1만여명에게 총 5200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사실 저도 이처럼 하루종일 끔찍한 글, 영상만 보는 사람들이 있고, 해당 업계 규모가 막대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놀랐습니다. 그간 막연하게 ‘신묘한 알고리즘’에 의해 유해 게시물들이 자동으로 걸러진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오히려 이제까지 왜 이걸 몰랐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벙벙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매일같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데요.

<fig.1> 케냐의 콘텐츠 모더레이터 노동자 모팟 오키니(27)는 4개월간 AI 콘텐츠 조정 업무를 하다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빠졌다고 합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은 업무 시간 내내 폭력적인 영상을 봐야 하지만, 대체로 임시직 계약직 형태로 고용되어있어 적절한 심리상담 등을 받지 못합니다.(왼쪽) 컨텐츠 모더레이션 솔루션 관련 전세계 시장 규모 추산치. 2022년 기준 약 49억달러이며 2027년엔 약 2.5배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BBC, CNBC(링크)

여하튼 케냐의 콘텐츠 모더레이터 기사를 읽고 깜짝 놀라서 이런저런 기사들을 더 찾아보던 중, 한 댓글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그 댓글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기계가 저런 일을 대신할 수 있으니 문제 없을 것이다!”

저 역시 처음엔 그 댓글을 보며 ‘그렇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어딘가 찜찜해졌기 때문에 계속 고민을 했습니다.

물론 기술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겠지만, 과연 이런 일을 모두 다 기계에게 맡길 수 있는 걸까요? 오히려 그렇게 ‘기술이 모든 걸 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이런 노동자들이 그림자에 있으면서 주목을 받지 못하게 만든 주범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저 역시 어느정도는 막연히 ‘자동으로’ 이런 유해 영상이 걸러지고 있다고 착각해왔기도 했고요.

통상 이런 기사와 관련해서는 ‘컨텐츠가 얼마나 자극적인지’ 혹은 ‘노동 조건’의 측면에 주목하곤 하는데요.

오늘 레터에서는 조금 시점을 바꾸어, ‘AI, 인터넷은 과연 인간 개입이 전혀 필요없을까? 왜 인간 모더레이터의 존재는 가려져 있는가?’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춰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라 T. 로버츠의 <Behind the Screen>와 이얼 프레스의 <더티 워크>를 지팡이 삼아 해찰해보았습니다.

【2.감춰진 필수노동 : “Behind the Screen”】

즐거운 디즈니랜드에선 쓰레기를 옮기는 환경미화원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자동 진공 폐기물 수거 시스템(AVACS·링크) 때문이라는데요. 쓰레기통과 연결된 지하관으로 쓰레기들이 빨려들어가 굳이 지상에서 쓰레기를 옮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쓰레기는 손쉽게 ‘눈에서 사라지’고 고객들은 환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쓰레기는 단지 ‘눈에서 사라졌’을 뿐 이를 최종적으로 치우고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돌보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마치 디즈니랜드가 환상적인 나머지 쓰레기가 저절로 사라진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요.

지난 20여년간 인터넷 생태계를 연구해온 사회학자 사라 T 로버츠는 직접 약 8년간 세계 각지의 다양한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을 직접 인터뷰, 분석해 책 <스크린의 뒤편Behind the Screen>을 썼는데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터넷은 마치 저절로 돌아가는 ‘하이테크 공간’ 같지만, 실은 인간 노동 없이는 절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필수 노동은 간과돼왔습니다.”

즉, 우리는 통상 신묘한 알고리즘, 뭔진 잘 모르겠지만 여튼 마법처럼 잘 작동하는 자동화 프로그램같은 것으로 ‘알아서’ 인터넷 생태계가 잘 관리 유지된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게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실은 기술보다는 인간의 손이 필요한 경우가 더 많으며, 만약 우리가 재밌고 유용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는 뛰어난 자동화 기술보다도, 상당부분 직접 콘텐츠를 사려깊게 골라내고, 문제되는 콘텐츠를 삭제, 편집하고 세심하게 배치한 인간 노동자들 덕분이라는 것이죠.

<fig.2> Sarah T Roberts (왼쪽) 상업 플랫폼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의 노동 조건 및 인터넷 산업에 대해 분석한 책 <Behind the Screen> 책 표지

저자는 <스크린의 뒤편>에서 인터넷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직접 다양한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을 만나 직접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특히, 저는 이 책에서 저자가 왜 인터넷에서 인간 모더레이터의 존재가 중요한지에 대해, 인터넷 역사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아래와 같이 간추려볼 수 있습니다.

1) 90년대부터 ‘인터넷 뒤에 인간’ 있었다! (플랫폼 관리 업무의 중요성)
2) 비즈니스적 엉망 (가게가 북적이면 치울 것도 많아진다)

우선 저자는 인터넷 대중화 초기인 90년대부터 이미 ‘플랫폼의 규칙을 정하고 이를 어긴 게시물을 관리하는’ 모더레이터들은 존재해왔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처럼 산업화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요.

우리는 마치 인터넷은 오프라인과 아주 동떨어진 기준과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 같지만(‘인터넷은 모든 게 자유롭고 평등하다!’), 실은 아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카페에서 훌라후프로 놀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갑자기 때리면 안되듯, 온라인에서도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려면 그 장소의 성격에 걸맞는 헌신과 규칙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거죠.

“(인터넷이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장소’라는 환상에도 불구하고) 초기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검열이 발생했다. 이러한 종류의 콘텐츠 중재 작업은 주로 자발적인 운영진에 의해 수행됐으며, 일반적으로 커뮤니티 규범과 사용자 행동에 관한 특수한 참여 규칙의 시행을 기반으로 했다. 따라서 중재 관행과 스타일은 커뮤니티와 참여자 사이에서 지역적으로 발전했으며, 고도로 규칙에 얽매인 커뮤니티부터 무정부주의적인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사라 T 로버츠, <스크린의 뒤편Behind the Screen>(이하 동일)

이 책에서 저자가 만난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은 하루에도 수천개의 ‘신고된’ 영상, 글을 보고 그것을 보이지 않게 계속 삭제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혐오 댓글 및 영상, 이미지를 판단 후 삭제해 포럼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운영되게 하는 등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업무들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만약 모더레이터 업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라는 저자의 물음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쓰레기통” “100% 포르노”가 되고 말 것이라 단언했죠.

저자에 따르면 - 미화원들이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금방 치우듯, 이들이 재빠르게 문제의 소지가 있는 콘텐츠를 ‘처리’했기 때문에 인터넷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fig.3> 다큐멘터리, 인터뷰 영상에 출연한 전직 콘텐츠 모더레이터들. (TheVerge1 VICE2) 이들은 충격적인 영상을 계속 보며 지인들과 이 충격을 공유하고 나눌 수도 없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다룬 책이나 레터에서 그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언뜻언뜻 이들이 묘사하는 내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굉장히 수위가 높습니다.(대부분 명백한 범죄의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플랫폼 기업들은 모더레이터들의 노동을 애써 숨기고 평가절하 해왔는데요.

꿈의 나라 디즈니랜드가 ‘쓰레기’를 숨기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요.

“인터넷 기업들의 입장에선 이처럼 대규모 상업용 콘텐츠 모더레이션 산업이 눈에 띄는 것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왜냐면 이런 업무가 잘 알려지고, 그 작동방식 및 필요성이 고객들에게 널리 이해될 경우, 불쾌하고 잔인한 컨텐츠를 유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사의 플랫폼이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두드러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가능성, 이미지는 분명 대부분의 플랫폼들이 자사 서비스를 홍보하려는 이미지와는 동떨어져있다.”

“(모더레이션 업무는) 상업용 사이트,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필수불가결한 핵심 업무지만, 기업들은 대체로 이런 작업에서 거리를 두거나 직접적으로 알리는 것을 꺼려한다. 이들의 존재는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 구역’이라는 통념에 정면으로 위반, 모순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소셜 미디어 의사 결정 생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이지 않는 인간 최종 결정자의 존재를 암시하고, 소셜미디어 플랫폼-사용자 간의 일대일 관계라는 편안한 관념을 뒤흔든다.”

확실히 ‘A플랫폼=마약 거래의 온상’ 같은 이미지가 박히면 플랫폼으로서도 치명적이겠죠. 내가 올리는 글을 누군가 24시간 보고, 삭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할 수 있고요.

심지어 과거 페이스북의 한 직원은 모더레이션 업무를 두고 “토 나오는(Yucky) 업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아무런 책임과 보장도 되지 않는 단기계약직, 제3세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아웃소싱되곤 하죠. 이 과정에서 이들은 제대로 된 정서적 지원을 받지도 못하고, 취약한 지점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두 번째는 ‘비즈니스적 엉망’에 대한 것인데요. 핵심은 오늘날 유해한 콘텐츠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늘어난 이유는, 어느정도 플랫폼에서 이쪽이 이득이라서 그렇게 유도한 측면이 크다는 겁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터넷에 올라오는 콘텐츠의 분량은 2010년대 이후 엄청난 기세로 증가했는데요. 이는 비단 기술의 발전 때문이라기보다는, SNS 플랫폼 등에서 더 많은 고객들을 모아 더 많은 콘텐츠를 업로드, 소통하게 하는 것을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면서 - 일단 누구나 오픈된 커뮤니티에 글을 자유롭게 올리고, 그 중에 “문제의 소지가 있어 신고된 것을 추후에 지우는” 방식으로 업로드의 허들을 대폭 낮췄기 때문입니다.

“2014년에 유저들이 유튜브에 업로드 한 동영상은 1분에 100시간 분량이었다[...]2015년엔 1분 당 400시간으로 늘었고, 2017년엔 전 세계적으로 유튜브에 있는 동영상을 10억 시간 시청했다.”

“대부분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는 별다른 사전 심사 없이 모든 업로드를 허용하는 쪽이 일반적이며[...]게시물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이나 결정이 (콘텐츠가) 이미 플랫폼에 일정 기간 게시된 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SNS 모델은 더 많은 고객이, 더 자주 방문해야 수익이 오르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별다른 제재 없이 ‘맘껏’ 게시물을 올리게 해두고서, 추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신고를 통해 적발해 내리는 구조로 하는 편이 훨씬 더 ‘비즈니스적으로 이득’입니다.

<fig.4> 과거 페이스북에 어린 아이가 얻어맞는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즉시 4만건 넘게 공유되며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왼쪽) 전문가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영상이 플랫폼 입장에선 이용자를 붙잡는 큰 이득이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때문에 문제의 해결책인 '원천적인 차단'이라는 강수는 절대 두지 않는 대신, 일단 뭐든지 자유롭게 올리게 하고 이후 신고받는 것만 검토 후 내리는 현행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거죠. Netflix

쉽게 떠올려보자면, 만약 인터넷 공간이 폐쇄적이고 회원들에게만 공개되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면 사이트는 큰 돈을 벌지 못하겠죠. 수많은 사람들이 뜨내기처럼 어그로를 끌고, 문제가 되는 글들을 올리고, 서로 싸우고 이슈가 돼야 리텐션, 광고 수익이 늘어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과거 읽었던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김아미,2022·링크)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 이용자들은 과거에 비해 개방적이고, 규칙이 없는(‘표현의 자유’) 플랫폼에서 유해 콘텐츠 외에도 수많은 욕설, 노골적인 비방 등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초반 아이들은 이런식으로 온라인에서 스스로 통제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수 있었다. 반면 지금의 어린이 청소년은 배타성, 폐쇄성이 최소화된 플랫폼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은서 : “가수들이 자주 오고 직접 댓글도 남기는 건 좋은데…플랫폼에 들어오기가 되게 쉬워요. 자식 자랑을 하는 분들도 있고, 안티 팬들도 와서 온갖 욕이나 패드립을 치는 거예요.”
플랫폼에 가입하는 이용자들의 연령층은 다양해졌고, 활동 조건은 줄어들었다[…]또래만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는 어려워졌다[…]운영진이 그 공간을 장악하고 통제하거나 갈등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아이들을 고객층으로 유입해야 하는 기업이 이런 변화를 왜 묵인할까? 플랫폼 운영 기업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접속해서 오랜 시간 머물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용자의 가입이나 활동을 제한할 유인이 없다[…]기업 입장에서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가장 손쉬운 이윤 창출 수단이다.

-김아미,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

201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명백하게 이런 흐름은 가시화되며, 컨텐츠 수 증가에 따라 트롤들의 숫자도 늘었고, 그중 나쁜 콘텐츠를 지워야하는 모더레이터의 업무도 늘어나게 된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 쓰레기가 없는 것처럼 디즈니랜드를 거니는 방문객처럼, 심하게 불쾌한 게시물에 맞닥뜨리지 않고 비교적 매끈한 인터넷 공간을 거닐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3.과연 ‘인간 노동’은 쓸데없어질까?】

모더레이터들은 나쁜 걸 우리 대신 많이 보고, 고생을 합니다.

일각에선 나중에 자동화 시스템이 잘 발달하면 이런 걸 굳이 사람이 할 필요 없으니 해결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자는 “검수 과정에 있어, 결코 기계가 인간 모더레이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그 중요성이 줄어들거나 기계로 대체되기는 커녕, AI 시대엔 인간의 손길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라고도 하는데요. 그가 이처럼 단호하게 말하는 핵심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검수는 결코 ‘단순 노동’이 아니다 (시리아 테러 사진은 ‘고어’인가?)
2)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경계를 원한다

우선 첫 번째 항목에 대해선, 이 책에는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 모더레이터 인터뷰가 등장하는데요. 그중 실리콘 밸리에서 ‘인하우스 계약직’으로 일하는 모더레이터들의 사례가 인상적입니다. 별다른 교육 절차 없이 곧바로 민감한 현장 업무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 조건은 엉망이지만, 반드시 미국 명문 문과대 졸업생 위주로 뽑는다고 하는데요.1) 여기서 이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잔인한’ 것을 깜짝 놀라며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검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잔인함에도 다양한 종류의 잔인함이 있고(때론 예술 영화나 기록 다큐멘터리의 잔인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실제 이 책을 읽다보면 이들이 자주 맞닥뜨리는 문제는 엄밀하게는 ‘잔인함’의 종류에 대한 것입니다. 대부분 국제 분쟁에서의 잔인함은 절대적인 수치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다른 입장의 잔인함이 맞닿는 부분에서 생겨납니다.

모더레이터들은 주로 어떤 잔인함은 허용하고, 어떤 잔인함은 허용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를 골똘히 고민합니다.

“제가 콘텐츠 모더레이터 업무를 할 당시에 플랫폼에 아랍의 봄 관련 콘텐츠들이 굉장히 많이 올라왔어요. 그리고 이미지, 영상들 중 상당수는 굉장히 잔인했죠. 하지만 그 지역에서 활동가들이 이런 현장을 알릴 수 있는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창구는 이 플랫폼 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아예 삭제하는 대신) ‘18세 이상입니다’라는 경고 문구만 띄우고 볼 수 있게 했어요. 예를 들어, 만약 베트남에서 분신자살하는 승려의 다큐멘터리 영상이 있다면 그 영상 자체가 굉장히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삭제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만약 방화가 맥락이 소거되어 단지 자살, 폭력 영상이 된다면 허용될 수 없죠...”

예를 들어 한 노동자는 시리아의 한 학교에 테러리스트가 폭격을 가해 20명의 어린아이들이 사망한 영상을 지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이를 지우지 않았습니다. 만약 영상이 단순히 ‘잔인하기 때문에’ 지워버렸다면, 세계적으로 이 사안이 널리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fig.5> 페이스북에서 인하우스 정규직 콘텐츠 모더레이터로 일하다가 결국 트라우마로 인해 반년 뒤 일을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한 여성. <Behind the Screen>에서도 이런 인하우스 노동자들은 보통 "더 높은 수준의, 까다롭고 복잡한 이슈들"을 다루었습니다. (왼쪽) 과거 페이스북이 '유해한' 콘텐츠로 판단해 삭제 처리했던 베트남전과 관련된 유명한, 1973년 퓰리처상 수상 사진 '소녀의 절규' / The Verge(링크), <The Cleaners>(예고편)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이런 문제들에 부딪치고, 실제로 SNS에 어떤 게시물이 올라오는지는 ‘현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과거 미얀마에서, 페이스북에 근거 없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가 퍼져나가고 그것이 실제 로힝야족에 대한 끔찍한 혐오,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습니다.(링크)2)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이미지를 차단하고, 어떤 이미지를 편집하느냐에 따라 현실의 분쟁,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문제는 임시직 노동자들이 충분한 배경지식 없이 이런 업무를 일상적으로 별 지침 없이 해야하며, 이 과정에서 서로 논의할 기회도 없고, 이런 기준은 대체로 ‘대외비’이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이런 정책에 대해 공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는 거죠.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더 투명하게 공개되고 더 많은 숙고, 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분쟁 지역 영상의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는 지식과 능력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틀린은 메가테크 내부 정책과 경찰청의 추가 지침 정도만 참고한 상태로 해당 영상의 검토와 판단을 맡았다[...]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이러한 정책의 근거를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대신 그녀는 시키는 대로 메가테크의 정책을 준수했다.”

두번째는,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경계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선까지는 용납을 하고, 어느 선부터는 ‘문제’라고 판단해서 차단할 것인가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판단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의 섬세한 센스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이 때문에 이 책에선 그 ‘미묘함’을 감지할 수 있는 언어능력과 문화적 컨텍스트 보유능력에 따라 노동자들이 ‘위계화’되는 맥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만약에 채널에서 오직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멘션만 허용한다면 방문자들이 떠날 겁니다.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죠[...]하지만 그 괜찮음과 괜찮지 않음 사이의 티핑포인트란 과연 어디쯤일까요?”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벽히 기대에는 못미치는 실정이다. 하나의 명백한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사용자가 업로드하는 콘텐츠의 절대적인 양 자체를 줄이는 것이지만, 이것은 누구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만한 해결책이다[...]콘텐츠는 플랫폼에 있어 너무도 중요하다. 콘텐츠는 사용자들이 계속 머무르도록 스크롤을 내리며 새로운 사진과 비디오를 볼 수 있게 하고, 읽을만한 새로운 게시글, 새로운 광고를 제공하는 미끼와도 같다[...]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은 계속해서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고, 지속가능한 섬세한 판단들을 요청받게 될 것이다.”

이 대목을 꽤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곰곰 상상해보면, 확실히 만약 어떤 유튜브 채널 댓글창에 지나치게 크리에이터나 주제에 대한 호의적인 댓글만이 도배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댓글을 읽는 재미를 잃고 말 것입니다.

가끔 ‘어그로인지 혹은 정당한 비판인지’ 헷갈리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댓글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이야기가 진전되는지 궁금해하고 기웃대고 더 많이 몰려들겠죠.(‘저기서 누가 싸운대요?’ ‘뭐가 문제래요?’) 이 때문에 어디까지는 제재를 가하고 허용할 것인지의 문제를 판단하는 건 결국 기계가 일괄적으로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한 개별 채널 운영자 입장을 넘어, 플랫폼 운영자의 측면에서도 검열은 아주 세심해야 하는 문젭니다. 일단 위에서도 봤듯, 플랫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자주 플랫폼에 방문하고 오래 체류하는 것인데요. (그래야 광고가 많이 붙으니까요) 이때 만약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글 자체를 일괄 삭제해버린다면, 사람들은 흥미를 잃고 플랫폼을 떠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때문에 이런 일은 향후 웬만해서는 기계가 ‘대신’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훨씬 더 인간의 집약적 노동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는 거죠.

이처럼 모더레이터들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의료 지원이나 적정한 임금, 복지 등을 보장받지 못한 채, ‘그림자’ 아래 가려져 왔습니다.

1)콘텐츠 모더레이션에는 콘텍스트에 대한 지식, 교양, 언어(영어) 실력 등에 따라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는데요. <Behind the Screen>에서 저자는 이 유형별 위계를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1.인하우스=특정사이트의 전문, 전속인력/출퇴근/주로 계약직 2.부티크=모더레이션 전문 대행사 3.콜센터=필리핀, 케냐, 인도 등 해외 주재 서드파티 회사 4.초미세노동플랫폼(Mechanical Turk 외))

이중 인하우스 유형의 노동자들은 직접 실리콘밸리의 페이스북 등 본사로 출근을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들은 가장 난해한 종류의 콘텐츠 모더레이션을 맡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단기 계약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임금 수준도 높지 않으며 업무 및 교육 '효율'을 위해 주로 실리콘밸리 정규직의 로망을 가진 고학력 인문대 졸업생(...)을 '회전문'처럼 뽑아 쓴다고 합니다. 실제 이들은 처음 이 업무를 맡을 때 자세한 안내, 교육을 받지 못해서 이런 종류의 업무인지 모르고 대략적으로 '윤리 업무' 정도로 알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편 비용 문제로 점차 해외 아웃소싱이 늘면서, 이들의 업무는 더욱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낮은 곳에 매달린 열매low hanging fruit'는 싹 다 아웃소싱으로 돌리고, 이들은 더 까다로운 업무만 맡는 거죠.

2)무슬림을 향한 인종차별적 단어인 칼랄(kalar)은 동시에 '병아리콩'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당시 로힝야를 향한 혐오 게시글 가운데 이런 '비속어'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해 혐오 게시글을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못했다는 로이터의 분석이 있습니다. 해당 문화, 비속어 등을 잘 알고 있는 모더레이터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죠.

【4.노동이 ‘비밀’이 될 때 : “더티 워크”】

앞서 보았듯, 콘텐츠 모더레이터 업무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필수 노동’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보잘것 없는 존재’ ‘치워버리고 싶은 비밀’로 치부되어왔죠. 이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있는 편이 여러모로 기업엔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선 필요한 노동이면서도, ‘더러운 것’ 취급 받아 외면되는 노동이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이얼 프레스는 <더티 워크>에서 이런 노동을 ‘더티 워크Dirty work’라고 말하는데요. 예를 들어 교도관, 도축업, 드론폭격조종사 등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일이 ‘없는 것처럼’ 살길 원하죠.

예를 들면 고기가 공장식 도축장이 아닌 ‘청결한 마트의 고기 나무’에서 짠-하고 열리거나, 저렴한 석유는 쓰고 싶지만 그것이 수많은 삼림을 파괴하는 과정이라는 ‘시스템’을 외면하길 원하는 겁니다.

“불쾌한 행위는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으로 옮겨졌다[…]우리가 문명화라 부르는 모든 과정의 특징이 바로 이 격리의 움직임, 혐오스러운 것을 ‘무대 뒤편’에 숨기는 일임을 우리는 앞으로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 과정>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이런 ‘더티 워크’가 없는 것처럼 살 수 있지만, 이 시스템을 매끈하게 유지하기 위해 죄책감, 정신적 트라우마를 오롯이 겪어야 하는 것은 일부 노동자들의 몫입니다.

<fig.6> '왜 우리 가족을 죽였나요?'라는 문구가 쓰여진 벽 앞에 아이가 서있습니다. 위쪽에는 'US 드론'이라고 적힌 비행기가 그려져있고요. 드론 조종사들은 이런 문구를 모두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에, 폭격 대상 지역엔 드론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한 현수막이나 문구 등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왼쪽) 오랜 기간동안 고해상도 모니터로 폭격 대상 지역, 인물들을 추적하는 드론폭격조종사들은 '심리적 친밀감' 및 '구체적인 폭격의 결과 관찰'로 인해 오히려 유인 항공기조종사들에 비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Amnesty, Getty Image

이 책의 사례 중, 콘텐츠 모더레이터 노동과 연계해서 인상적인 건 드론 조종사와 실리콘밸리 기술자의 사례였는데요. 이런 ‘최첨단 노동’들은 흔히 사람들이 한층 더 기계화되어있고, 중립적이고 간편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드론 조종사들은 ‘조이스틱 병사’ ‘닌텐도 병사’라는 별명으로 비하되기도 했는데, 오히려 이들은 고해상도로 오랜 기간 표적의 일상 생활을 계속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PTSD가 심했죠.

하지만 이런 기술자들은 보통 ‘비밀유지 서약’을 받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업무는 사회적으로도 공론화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드론 전투가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을 둘러싼 비밀주의 때문이다. 드론 전투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비밀에 부쳐져있고 사망자의 신원마저 공개되지 않는다[...]일부 분석가들은 버튼으로 드론을 조종하는 '조이스틱 전사들'도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원거리와 기술 덕분에 전쟁의 도덕적 부담이 줄고 살인이 비디오 게임만큼 초연한 활동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그러나) 헤더는 집의 부서진 벽을 고치는 남자, 화롯가에 둘러앉은 가족 등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공습 후에 확인해보니 사망자는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어르던 여자였던 적도 있다.”

“더티워크는 구조적 비가시성에 감추어져있다. 교도소와 정육공장은 담장과 장벽에 둘러싸여[...]드론 부대는 비밀주의에 포위되어 있다[...]이러한 계약은 충격적인 사건을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으로 밀어내는 문명화 효과를 발휘한다.”

-이얼 프레스, <더티 워크>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 자신 역시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연루되어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5.맺음말】

SF 작가 어슐러 르 귄의 단편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행복한 도시 ‘오멜라스’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화려한 도시의 지하에는 영원히 고통받는 아이가 갇혀있습니다.

오멜라스가 있는 그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 아이가 고통을 받아야 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애써 그 아이의 존재 자체를 굳이 보려하지 않죠. 이들은 그렇게 살아도 아무런 영향이 없고, 그쪽이 마음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레터를 쓰기 위해 콘텐츠 모더레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곰곰 살펴보면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오멜라스의 아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지하에 숨겨져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 홀로 큰 부담을 집니다.

소설 속 오멜라스 주민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고통받는 아이를 모른 척 하고 그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거나, 혹은 오멜라스를 떠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쩌면 한 가지 선택지가 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과연 오멜라스는 정말로 행복한 것일까?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라고 의문을 품고서 ‘잊혀졌던 아이’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멜라스나 디즈니랜드와 달리, 현재의 인터넷 생태계는 썩 훌륭하다고 볼 순 없으니까요.

이들의 노동을 제대로 바라보고 문제를 판단하고, 책임 소재를 묻는 것(애초에 왜 혐오 컨텐츠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플랫폼에 공유될 수 있는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어째서 중요한 모더레이션 노동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며,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콘텐츠를 보고 있는가? 왜 우리는 그 기준을 자세히 알 수 없는가...)은 곧 우리 모두의 사회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한 길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 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이얼 프레스, <더티 워크>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Sarah T. Roberts, 『Behind the Screen』, Yale University Press, 2019.

-이 책의 부제는 "Content Moderation in the Shadows of Social Media"입니다. 소셜미디어, 디지털을 연구해온 학자인 사라 로버츠는 뉴욕타임즈에서 우연히 한 기사를 읽고 나서부터 약 8년간 전세계의 CCM(Commercial Content Moderator) 노동자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했습니다.(*저자는 콘텐츠 모더레이터 가운데서도, 상업적 플랫폼에 주목한 CCM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냈는데요. 오늘날 대체로 용어의 쓰임새가 CCM과 CM 사이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해 오늘 레터에선 CM으로 통일했습니다)

20세기 후반 인터넷 1세대의 기억을 더듬어 현재의 인터넷 생태계와 비교하며 서술해가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은 '노동'으로 시작된 책이지만, '노동' 뿐아니라 인터넷 생태계 - 문화 시스템 전반을 다루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한 유튜버가 AI시대의 플랫폼, 노동 시리즈 기획을 진행하며 사라 로버츠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영상) AI 모더레이터에 대해서 로버츠가 한 말 가운데 AI 콘텐츠를 '모더레이션'하는 것은 훨씬 난점이 있는데, 이유는 주목도나 신고에 기반해 진행하는 CM 업무와는 달리, AI의 경우 올라와있는 콘텐츠를 '전부 다'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조회수 10짜리 블로그에 혼자 중얼거린 말들도요) 그만큼 더 피로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하고요.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제가 잘 이해한 건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CM이라는 노동에 대한 이슈도 흥미로웠지만 ,그만큼 인터넷에서의 '인간'의 존재 및 긍정적인 소통과 관련해서도 굉장히 많은 해찰거리를 준 책입니다. 조만간 관련 주제를 다루게 된다면 이 책에서 해찰했던 내용이 많이 밑거름이 될 것 같네요.

이얼 프레스, 오윤성 옮김, 『더티 워크』, 한겨레출판사, 2023.

-이 책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악(욕망)을 더티 워커들이 최전선에서 대신 받아내고 있다. 그들은 도덕적 딜레마와 사회적 지탄, PTSD를 오롯이 겪어낸다. 그들이 자신의 노동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에는 교도관, 드론폭격병사, 도축업자, 석유시추노동자, 실리콘밸리워커(기술자)의 사례가 등장하는데요. 오늘 레터의 CCM의 사례는, 그 노동 자체가 '죄악시' 되진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 비밀스러운 노동을 통해 전체 시스템을 매끈하게 유지한다는 점에선 유사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오늘 두 권의 책을 덧붙여보았습니다.

사라 프라이어, 이경남 옮김, 『노 필터』, RHK코리아, 2021.

-인스타그램 창업자 시스트롬이 어떻게 인스타그램을 런칭하게 됐고, 어떻게 막대한 금액에 페이스북에 합병되고 그러면서도 핵심 가치를 지켜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주로 '알고리즘'에 의존했던 페이스북 피드와 달리 인스타그램의 경우 페이스북에 합병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커뮤니티팀'이 주축이 되어 인간이 직접 큐레이션을 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바라보고, 이들이 항상 인스타그램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길 원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표현의 자유'란 결국 책임의 방기에 가까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은 커뮤니티팀을 가장 핵심적인 부서로 여겨 수백만명의 사용자들이 하나의 기풍을 조성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커뮤니티팀은 패션이나 음악처럼 특정 카테고리에서 유망한 사용자를 찾아내는 일을 전담했다. 예를들어 댄 토피는 애완동물 게시물을 찾아내는 일을 맡았다...그는 목록을 분석해 '주간 털뭉치들'이라는 특징에 맞는 동물을 골랐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의 모더레이터, ‘사이버 경찰’

독서시간: 약 8분 / 글자수: 약 4200자

🖍글 속 한 문장

“웹퓨리파이 직원들은 새로운 가상 공간의 최전선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인종 및 성 관련 발언들을 접한다. 어떤 사용자는 중재자가 인도 여성이란 사실을 알고 소 한 마리를 줄테니 결혼하자고 제안했었다고 말한다.
웹퓨리파이는 중재자에게 24시간 정신 건강 상담을 비롯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재자는 감지하기 힘든 안전 문제들과 씨름해야 하며, 많은 판단력과 감성 지능을 발휘하여 어떠한 행위가 적절한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 사이의 퍼스널 스페이스와 신체적 인사는 문화와 사용자에 따라 다르며 메타버스마다 커뮤니티 지침도 상이하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MIT테크놀로지리뷰의 최근 기사입니다. 인터넷, SNS 플랫폼에 콘텐츠 모더레이터가 필수적이듯 최근 뜨고 있는 VR, 메타월드에서도 모더레이터가 반드시 필요한데요. 아무래도 작동방식이 상이하다보니 메타버스 세계 내에서의 모더레이터는 ‘사이버 경찰’에 가까운 느낌이네요.

메타버스에서 중재자로 활약하고 있는 리바 예칸티가 구체적으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살펴보면서 미래의 모더레이터 업무가 어떤 흐름이 될지 해찰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

영상(약 18분)

🖍글 속 한 문장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 세계에 정확하게 영향을 미칩니다[...]인도, 스리랑카에서는 SNS가 인종 폭력을 선동했습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하산 미나즈가 알기쉽게 핵심을 잘 설명한 유튜브 축약 영상입니다.(본편은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이 영상만 보아도 대부분의 개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무거워지기 쉬운 소재이지만, 코미디언인만큼 유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플랫폼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쉬이 '무책임' '구체적인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지는지의 고리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통신품위법 230조는 '양방향 컴퓨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컨텐츠 포스팅 이전에 편집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정보의 '발행자'로 간주되지 않는데, 이는 유튜브나 아마존 등의 서비스가 책임을 회피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조이스틱 전사’들이 겪는 트라우마

NYT(영문)

🖍글 속 한 문장

"드론 조종사는 며칠 동안 같은 땅을 응시하곤 한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역학자 Jean Lin Otto는 말했다. “그들은 (조종 모니터를 통해) 대학살의 현장을 고스란히 직접 목격한다. 유인 항공기 조종사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가능한 한 빨리 그곳을 빠져나간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오늘 <더티 워크>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드론 조종사가 얼마나 심적 거리를 가깝게 느끼는지에 대해서였습니다. 고해상도의 모니터를 통해, 며칠 간 특정 타깃의 일상생활을 모두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드론 조종사는 '원거리 심리적 친밀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합니다. 타깃이 딸과 놀아주고,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는 등의 모든 일상을 모니터를 통해 함께 하는 것이죠. 타깃이 죽은 후 장례식때 관이 몇개 나가는지까지 볼 수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드론 조종사들의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완전 자동화된 무인기 드론'이 폭격(링크)을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인가? 하는 무거운 물음은, 오늘 콘텐츠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성범죄물 3분만에 잡아내는 AI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2100자

🖍글 속 한 문장

김 연구원은 “디지털성범죄물은 대부분 저조도에서 휴대전화로 촬영돼 화면이 어둡고 흔들리거나 소음이 심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 패턴을 학습한 AI는 원본 영상이 편집된 버전까지 높은 정확도로 잡아낸다. 용기를 내준 피해자들이 있었지만, AI를 학습시킬 데이터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데이터 증강’ 기법을 활용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약 8개월에 걸쳐 디지털성범죄물 잡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한 김준철 서울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인터뷰입니다. 그간 디지털성범죄물 삭제 활동가들의 트라우마가 심각하다는 보도(링크)가 있었는데요. AI가 어느정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법촬영물의 경우 촬영 패턴, 잡음 등의 공통점이 있었기에 이런 영상의 특징을 취합해 학습시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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