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그다지 가깝지 않은 회사 동료(무자녀 가구)와 우연히 수박과 멜론 이야기를 하며 급격히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화를 나누었어요. 외식이나 배달음식이 집밥보다 더 가까운 생활을 하며 작은 죄책감을 느끼는 지점, 두 명이 소비할 수 없는 수박 한 통의 양 때문에 몇 년째 수박을 사지 않은 일. 동시에 멜론! 을 외치며 공감한 사실…. 정말 사소하지만 반갑고 안도감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그런 공감을 얻고자 지은 님의 메일을 받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번 메일은 새벽 4시에 보내주셨네요. 숙면이 함께하는 건강한 생활 되시길 바랍니다:>

 

리콜라 님의 편지를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지난여름에 수박을 한 번도 사지 못했다는 걸요. 저도 수박을 무척 좋아하는데, 큰맘 먹고 한 통을 사면 아무리 부지런히 먹어도 냉장고에서 얼어버리거나 오래되어 식감이 나빠지더라고요. 그런 일이 한두번 있고 나서도 수박이 너무 먹고 싶어서 크기가 작은 애플수박을 사본 적도 있지만, 수박 특유의 수분 가득한 사각거림과는 조금 달라서 다시 사지는 않게 되었어요. 

 

과일이나 채소류 관리에 관한 고민은 1~2인 가구의 비슷한 경험 같기도 합니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어제 뭐 먹었어?>는 중년 게이 커플의 식생활을 중심으로 한 일상 이야기입니다. 수박을 무척 좋아하는 주인공 시로 씨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마트에서 커다란 수박을 싸게 파는 걸 발견합니다. 너무 사고 싶지만 둘이 먹기에 한 통은 많고 냉장고에 자리도 부족해 망설이던 중, 같은 고민을 하며 서 있던 중년 여성 카요코 씨와 즉석에서 의기투합합니다. “수박 하나 사서 반 나누지 않을래요?” “그거 좋죠!” 그 후 두 사람은 복숭아, 양배추 등 각종 식재료를 나누는 친구가 됩니다.

 

저도 이웃과 수박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의 지난번 책 편집자분께서는 1인 가구이신데, 공교롭게도 저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셨거든요. 어느 여름날, 막 사서 자른 수박 반 통을 들고 서로의 집에서 2분 거리인 관리사무소 앞에서 접선하던 순간 눈이 마주치자마자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박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이던지요. 지금은 그분도 저도 이사를 해서 그럴 수 없게 되었지만요.

 

수박 외에 은근히 속을 썩이는 건 대파입니다. 저희는 둘 다 프리랜서고 남편이 요리를 즐겨 하다 보니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먹는 일은 잦지 않은데(하지만 오늘은 파파존스 피자 할인행사가 있는 파파스 데이라서 벌써 두근거립니다.) 점심은 쌀국수나 샐러드로 간단히 먹는 편이라 정식으로 ‘밥’을 차려 먹는 건 저녁 정도거든요. 게다가 요즘 제가 학교에서 점심, 저녁을 먹는 날이 늘어나서 파 한 단을 손질해 냉장고에 넣어두면 적어도 1/3은 곰팡이가 피거나 말라서 못쓰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파가 없으면 라면 먹을 때 아쉽고, 국밥 먹을 때 허전하고, 김치볶음밥에도 파 기름이 필수고, 그렇다고 냉동해뒀다 쓰자니 식감이 좋지 않고…. 결국, 얼마 전에는 그냥 세척 대파를 사서 얼른 먹자 생각하며 마트에 갔는데 세척 대파(3대)가 4980원, 흙 대파(5~6대)도 4980원인 걸 보니 아까운 마음에 또 흙 대파를 사고 말았습니다. 이번엔 잎사귀보다 흰 줄기 부분부터, 아끼지 말고 팍팍 먹으려고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가며 식재료를 사고 냉장고의 재고를 관리하지만, 가끔 폭탄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몇 년 전, 부모님이 텃밭을 하실 때는 여름 내내 엄청난 양의 상추를 토끼처럼 먹어야 했어요. 갑자기 가지 세 개와 애호박 두 개, 꽃게 다섯 마리 등 다소 두서없이 꾸려진 식재료 꾸러미를 두고 가셔서 사흘 연속 꽃게탕만 먹은 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밤중에 커다란 배추 한 통을 투척하고 떠나신 덕분에 샤브샤브로 한 끼, 오뎅나베로 한 끼씩 배가 터지도록 먹고 속잎으로는 겉절이를 한 통 담가 열흘째 먹고 있습니다. 저는 새미네부엌 겉절이 양념을 사용하는데, 엄밀히 말해 이게 겉절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춧가루 소스로 무친 배추 샐러드라고 생각하면 괜찮더라고요.

 

사실 오늘의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써도 되는 걸까 고민했는데, 리콜라 님과 동료분이 그러하셨듯 이런 사소한 이야기에서 서로 반가워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일상의 작은 즐거움 아닐까 하는 기대로 떠들어보았습니다. 내년 여름에는 과일주스 가게에서 파는 수박 도시락을 사보기로 하고, 언젠가는 수박과 멜론을 나눌 이웃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tmi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밑반찬은 고추장 진미채 볶음입니다. 네, 이건 2인 가구인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도 새벽 4시가 지난 시간에 편지를 보내게 되었네요. 이놈의 집중맞은 도둑력 때문에 큰일입니다. 게다가 기말과제 시즌이 닥쳐와 제 발등이 불타고 있는 관계로 다음 편지는 한 주 늦춰집니다. 12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만나요. 

 

편안하고 즐거운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