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에서 충남 금산으로 보냅니다 (vol. 04)
이 편지를 펼쳐 볼 땐
맑은 날이길 바라요 .

반잡초파 입장문 잘 읽었습니다. 김 알토란 미리 작가님. (작가님의 미들네임으로 손색없네요) 편지를 쓰면서 작가님의 알토란 같은 면모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예상과 다르면 어쩌지?', '넘겨 짚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1% 정도 있었는데, 그 예견을 훌쩍 뛰어넘는 슈퍼 알토란 면모에 감탄한 나머지 깔깔대며 읽었어요. 특히 친잡초파였던 작가님이 포털에 “광대나물”을 검색하는 대목에선 “아아..” 하며 함께 좌절했다가, “5년이나요?”에선 외람되지만 진짜 깔깔깔 웃었습니다. 불안을 닮은 광대나물이라고 하셨지만, 읽다 보니 광대나물이 오히려 불안을 잠재워 주는 것 같더라고요. 작가님이 불안해할 때마다 '세상에 미리가 불안해할 새가 생겼네..?' 하며 광대나물이 보랏빛 자태를 더 휘황찬란하게 뽐내는 거죠.

  

그런 광대나물을 마주한 작가님이 미처 불안할 새도 없이 목장갑을 낀 손에 다부지게 제초 호미를 쥐고, 밭일 모자를 쓰고 광대나물을 뿌리까지 뽑아낼 모습을 상상하면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더라고요. 이런 말 하면 서운하시겠지만, 전 앞으로도 광대나물이 작가님 옆에 머물며 적당한 광대 짓을 유지해 주길 바라요. 알토란같이 밭을 정리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불안으로 심란할 때마다 광대 짓으로 불안을 잠재우는 귀엽고 성가신 친구를 두신 거 같아 든든해져 버렸거든요.


저도 광대나물 못지않은 생존력을 자랑하는 집업실 텃밭 친구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바로 쇠비름나물이에요. 지금도 집업실 텃밭의 엄청난 지분을 차지하는 쇠비름은 땅에 거미줄 치 듯 납작하게 퍼지는 잡초에요. 납작하게 자라는 데다 뿌리도 깊어 쥐어 뜯기 권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튼튼함을 자랑하죠. 솔직히 광대나물은 여리여리하고 예쁘기라도 하지 이 친구는 다육이를 연상시키는 통통한 잎사귀에 비해 노란 꽃이 너무도 옹졸해서 정말 볼품이 없어요. 꽃이 피었을 때도 언뜻 보면 꽃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니까요. 게다가 납작하게 자라는 친구들의 특성상 퍼지기는 또 얼마나 잘 퍼지는지 허락도 없이 들어와 집업실 텃밭을 제 집 안방처럼 쓰고 있답니다? 마을 할머니들 말로는 먹을 거 없고 가난한 시절엔 이 쇠비름나물을 데쳐 된장에 무쳐 먹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 집에 살던 어르신께서 쇠비름을 좋아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날 리가 없거든요!



그런데요 작가님, 제가 이 편지를 쓰다가 쇠비름의 엄청난 능력을 알게 되었어요. 답장을 쓰면서 쇠비름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는데, 알고 보니 이 친구가 염분 흡수율이 높아 염도 높은 토양에서 염분을 제거하는 용도로도 쓰인다네요?  염분이라니, 집업실 텃밭에서 제가 제일 걱정하던 문제가 염분이었거든요! 제가 머무는 산북면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가 오지 않는 지역이라 음식물이 남으면 물에 씻고 미생물 처리기에 넣어 분해시킨 뒤 텃밭에 거름처럼 뿌리는데요. 덕분에 소똥으로 만든 퇴비 없이도 작물이 잘 자라는 텃밭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깨끗이 씻어도 소금기가 씻기지 않는 절임 반찬들, 가령 김치나 장아찌 같은 친구들 때문에 늘 염분이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쇠비름이 그 염분을 흡수해 주는 기특한 잡초였다니요! 맙소사! 자연은 어느 정도까지는 스스로를 정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염분 높은 집업실 텃밭이 스스로 선택한 것 아니었을까요? 알고 보면 여기에 살던 어르신이 아니라 토양 스스로 "음~ 몸에 염분이 높아지고 있군" "안 되겠어, 쇠비름나물을 불러야겠어" 하고 부른 것일 수도요! 이렇게 보니 역시 세상에 알고 보면 버릴 게 하나도 없네요. 하등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저 작은 잡초가 알고 보니 이토록 중요한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었으니 내일부턴 쇠비름을 보면 기특해해 주어야겠어요. (이렇게 방임형 텃밭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



쇠비름나물로 제 스스로 염도를 맞춘 집업실 텃밭을 생각하다 보니 저도 제 스스로 일과 삶의 균형를 적당히 조절하며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고 싶어졌어요. 사실 프리랜서를 하면서 워라밸 따위 진작에 포기했지만, 그래도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 편지를 쓸 때만 해도 상반기 내내 일이 없어서 불안했다고 했는데, 덕분에 7월부터 들어오는 일들에 신명 나게 엑셀을 밟았어요(부아아아아앙-!) 덕분에 한 달에 한 번도 할까 말까 한 광고 협업을 3번이나 하고, 거기에 강연과 책 출간이 겹쳐 하루하루 스케줄이 빠듯했지요. 일이 없어 손가락 빨던 날이 고작 한 달 전이라 이런 일들이 얼마나 귀하고 간절하게 원하던 일이었는지 알고 있으니 도무지 절제가 안 되더라고요. 덕분에 어느덧 일에 완전히 잠식되어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일만 하다 문득 마루와 놀아줄 여유도 잃은 저를 보고 나서야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단 느낌이 들었어요.

 


하얀 강아지가 한창 바쁜 제게 공을 물고 와서 치근덕대면 단호히 말해요.


"마루 안돼, 누나 바빠"

"안돼, 마루 자리 가 있어"


그럼 마루는 따분해 죽겠단 얼굴로 몸을 돌돌 말고 지루하게 잠들어요. 그 모습이 딱해서 '마루 잡아라' 놀이를 하고, 공을 던지고, 온몸을 와구와구 긁어줘요. 그럴 때 신이 난 마루의 표정은 말하죠.


"누나,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이런 거야, 돈 버는 게 아니라 이런 거라고!"


그제야 깨닫죠. '아 내가 엑셀을 너무 밟았구나' 그런데 그것도 한 5분..? 정도 지나면 "아 맞다 그거 해야지"하면서 귀신에 홀린 듯 다시 노트북 앞으로 가게 돼요. 마루는 그조차 익숙한 듯 다시 책상 옆 소파에 자리를 잡고요. 그리고 전 없던 일처럼 또다시 엑셀을 밟고 있죠. 산책이라도 충분히 해주었으면 마루가 저 정도로 딱하진 않았을텐데 최근 폭우가 많이 왔잖아요? 덕분에 실내에 머무는 날이 많았기에 더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7월엔 비도 참 많이 왔네요. 햇빛 본 지가 오랜 것 같아요.

 



비 좀 그만 와라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마였어요. 땅이 굳어질 새도 없이 계속된 비에 집업실 텃밭 잡초는 하루가 다르게 무성히 자랐지만 딱 두 포기 심은 오이 중 하나가 죽었어요. 부지런히 속을 채워가던 양상추와 상추도 궂은 비에 모두 녹았고요. 오이와 상추는 명을 달리했지만 다행히 토마토와 고추, 가지는 살아남았지요. 근데 말이죠, 이렇게 말하면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렇게 바쁠 땐 살아 남은 작물조차 부담스러워요. 모든 작물은 보살핌이 필요하고 지금의 전 그 보살핌이 조금 버겁거든요. 아무리 방임형 텃밭이라고 해도 한 없이 늘어지는 줄기들을 지주대에 묶어주어야 하고, 누렇게 시들어버린 죽은 잎사귀들을 정리해야 하고, 과실이 너무 익기 전에 따주어야 하잖아요. 눈에 보일 때마다 틈틈이 했다면 일이 크지도 않았을 텐데, 비도 오고 바쁘단 핑계로 몇주 손 놓고 미뤄온 일들이라 저 조그만 텃밭에서 해야 할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 그래서 요즘 제 텃밭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방학 내내 일기를 한 장도 쓰지 않았는데 내일 개학인 초등학생의 마음처럼 무겁고 막막한 느낌이 든답니다.

 


그래서 한동안 집업실을 비워두었어요. 외부 일정을 소화하느라 집업실을 나간 사이, 집업실로 가는 길이 유실되어 통제될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못 들어온 탓도 있지만, 채 가방을 풀기도 전에 얼른 어떻게 좀 해보라며 아우성칠 텃밭 잡초와 너저분한 마당을 마주하면 가뜩이나 가득 찬 부담감이 터질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비가 잠잠해지고, 모처럼 날이 개서 집업실에 들어왔어요. 마침 막간의 여유가 생겨 늘어진 토마토 줄기도 정리하고, 시들어 버린 오이 잎도 잘라내고, 잡초도 조금 쥐어뜯고요. 저녁이 되어 마루와 마을을 거닐었는데요. 새삼 좋더라고요. 시내 공원에서 걸을 땐 마루랑 산책하면서도 주변을 돌아 볼 여유가 없었는데 시골의 고즈넉함, 고요함은 풍경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매일 매일 다른 구름과 노을 색을 보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어느새 일에 완전히 잠식되어 들판을 봐도 기쁘지 않고, 책을 봐도 일의 연장선 같고, 하늘을 봐도 '그냥 이렇게 하루가 훌쩍 가버렸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모처럼 맑게 갠 시골 마을을 크게 한 바퀴 걷다 보니 '아쉬운 마음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났구나', '이 아쉬운 계절을 7월 내 한번도 못보다 오늘에서야 보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앞서 걷는 마루가 보였어요. 똥땅똥땅 거닐며 신나게 냄새를 맡는 하얀 강아지가요.


 

그 이후 잡초는 못 뽑더라도 그래도 이 시골을 많이 걸어야지 생각했어요. 제게 필요했던 워라밸은 여기 이 시골 마을의 고요한 걸음 속에 있구나 싶어서요. 핸드폰 그만 보고, 일 생각 그만하고, 그저 걷고, 하늘을 보고, 벼와 마루의 궁둥이를 보고 말이죠. 아마 이 생각도 "바빠 바빠"를 입에 달고 살 때는 또다시 잃어버릴 거예요. 그래서 다짐하려고요.

 

"자주 걷자. 이 시골길을"

"마루의 저 귀여운 걸음걸이를"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걷자."


 

그러기 위해선 비가 좀 그쳐 줘야 할 것 같아요. 이 편지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비가 와요. 꽈과광 치는 천둥에 놀라 오들오들 떠는 마루를 안고 어르고 달래느라 오늘도 산책은커녕 햇빛 한 줌도 제대로 받지 못했네요. 혹시 7월에도 작가님의 불안이 계속되었다면 그 이유도 비가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햇빛을 보고, 하늘을 보고 거닐면 불안 속에서도 작은 틈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요.


 

이 비가 그치고, 볕이 들면 그때는 만사 제쳐두고 거닐려고요. 아쉬운 마음으로,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내쉬려고요. 지금 이 비로 봐선 내일이 되어도 볕이 들 것 같지 않지만요. 혹 거짓말처럼 날이 갠다면, 작가님도 아쉬운 마음으로 거닐어 보세요. 왠지 같이 걷는 기분이 들 것 같네요.


2023년 07월 26일 귀찮 드림

P.S. 실은 이 책을 함께 쓰기로 하면서 작가님과 함께하는 여러 상상을 해보는데요. 언젠가, 혹 작가님도 괜찮으시다면, 그게 쇠비름나물이든, 광대나물이든, 나란히 앉아 작가님께서 선물해 주신 제초 호미로 뿌리까지 야무지게 캐고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함께 하는 날을 고대해 봅니다.

 

P.S. 혹시 작가님만의 워라밸을 지키는 팁이 있나요? 몰려드는 일 앞에서 장사 없지만, 그래도 문득 김 알토란 미리 작가님이라면, 일과 휴식 사이에서도 적당한 균형을 잡을 요령을 갖고 계실 듯 해서요!

 

P.S. 강아지 이야기를 할 땐 무슨무슨법에 따라서 강아지 사진을 꼭 첨부해야 한대요. 그래서 첨부해봅니다. 똥땅똥땅 마루의 뒷모습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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