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경의 플레이리스트
목정원 작가의 책을 읽다 알게 된 것인데 ‘몸 풀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échauffement는 ‘데우기’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여기 ‘다시’를 뜻하는 re를 붙이면 ‘따뜻한 계절이 돌아옴’이라는 말도 된다고. 중얼거려 본다. 다시 데워짐, 그리고 돌아온 계절. 처음 맞이한 봄보다 훨씬 애틋하고 벅찬 느낌. 사랑하는 이와 손을 맞잡고 느릿하게 도는 춤이 떠오르기도 한다. 너무 갑작스럽게 쨍한 그런 봄 말고, 뭉근하고 조용하게 다시 데워주는 봄의 음악들. 

1. 막스 리히터, <Three Worlds: Music from Woolf Works> 2번 트랙 <In the Garden> 
2. 올라퍼 아르날즈, 닐스 프람, <20:17>
3. 캐롤라인 쇼, <Plan & Elevation> 중 V. <The Beech Tree>, 마리 사무엘슨 연주

🔥윤혜의 플레이리스트
물을 끓일 때면 한참을 바라본다. 맹렬한 불꽃과, 그 아래 물의 침묵을. 침묵은 불사름으로 조금씩 깨어진다. 누군가는 제 몸을 불살라 우리에게 나은 미래를 남겨주었다. 그의 희생으로 조금씩 나아질 사회를 꿈꾸며. 그런 세계를 위해 오늘도 남은 이들은 조금씩 나아간다. 말로, 글로, 음악으로 침묵을 깨고, 세상을 데워 나간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성대를 조였다 푼다. 선율은 늘, 충분히 더운 피가 돌 때쯤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옆자리 음을 위한 것이기도, 함께 부르기 위한 것이기도 한 음들. 세상을 향한 사랑. 각자의 불꽃들.

1. 프레데릭 제프스키,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변주곡 중 테마, 제프스키 연주
2.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Dreaming of Equity>
3. 포레, 레퀴엠 Op.48 중 7. <In Paradisum>,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합창단 연주

🎻혜선의 플레이리스트
베토벤을 생각한다. 그는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 모차르트에게 뒤처질 것 같으면, 그 장르를 애써 미뤄두었다. 실내악, 소나타, 협주곡에 비해 그의 첫 교향곡 발표가 늦춰진 이유일 테다. 브람스를 생각한다. 그는 베토벤이 남긴 아홉 교향곡을 이을 만한 첫 교향곡을 내놓기 위해 한참을 망설이다 펜을 들었다. 시벨리우스는 어떠한가.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를 포기한 그가, 그토록 바이올린을 사랑했던 그가, 왜 바이올린 협주곡은 단 하나만 남겼는지. 사랑하기에, 그만큼 잘 해내야 했기에, 멈칫했던 순간의 시간들이 지금의 고전을 만든 건 아닌지.

1.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정경화 협연, 앙드레 프레빈 지휘, 런던 심포니 연주
2. 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 연주
3. 베토벤 교향곡 1번 3악장,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지휘, 빈 필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