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아 패션해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구운김입니다.

패션 하우스들의 컬렉션은 우리가 사는 계절보다 두세 발자국 앞서 공개됩니다. 올해 3월, 2022 겨울 컬렉션 쇼를 연 발렌시아가처럼 말이죠.

출처: Unsplash 

발렌시아가의 이번 겨울 컬렉션 런웨이는 눈보라 치는 설원을 옮긴 듯한 쇼장부터 쓰레기봉투같이 생긴 가방,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향한 시 낭송까지, 다양한 화젯거리로 가득했습니다. 벌써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요. 이 쇼는 컬렉션 속 코트 하나가 출시되면서 다시 한번 회자되었어요. 평범해 보이는 이 코트, 버섯에서 추출한 소재를 가죽처럼 만들어 제작했다고 합니다. 대안 가죽 제품은 꾸준히 출시되었는데 이 코트는 왜 화제가 되었을까요? 그린워싱으로 이끌어낸 하입에 불과한 것일까요?


오늘은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성 미션에 도전하는 패션 산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발렌시아가의 2022 홀리데이 캠페인은 최근 논란이 되었는데요. 이번 레터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어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해당 논란은 목요일에 발송되는 Zoe님의 레터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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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1. 발렌시아가의 버섯 코트가 화제인 이유
2. 타임지가 선정한 발명품이 보여주는 것
3.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그들의 큰 그림

발렌시아가의 버섯 코트가 화제인 이유

비건 새우, 먹어본 분 혹시 계시나요?


저는 비건은 아니지만, 한창 비건 음식점을 탐방하던 시절 비건 새우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어요. 비건 새우는 해초나 완두콩, 곤약 같은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대체 식품인데, 제법 진짜 새우 같아서 먹자마자 입을 틀어막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먹기 전에 ‘그래 봤자 비건인데’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했을 만큼 새우 특유의 탱글한 식감과 풍미가 잘 느껴져서 너무 신기했어요. (꼭 한 번 츄라이 해보세요!)


발렌시아가의 올해 겨울 컬렉션에서 등장한 화제의 코트는 제가 먹었던 비건 새우와 비슷합니다. 어마무시한 길이를 제외하면 평범하고도 멋진 이 가죽 코트는 버섯의 균사체에서 추출한 신소재 ‘이피아’로 만들어졌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그동안 출시된 다른 대안 가죽과 다르게, 소재의 부피, 두께, 촉감, 광택까지 실제 가죽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원료가 되는 버섯을 재배하고 소재를 추출, 가공하기까지 환경에 가해지는 영향을 실제 가죽 대비 현저하게 줄일 수 있고, 소재 자체도 재생 가능하고요.

좌- 22 겨울 컬렉션 런웨이 속 화제의 코트, 우- 코트 상세 이미지 (출처: Balenciaga)

이번 컬렉션을 통해 처음으로 제품화된 이피아 소재 코트는 발렌시아가에서 독점적으로 개발된 프리미엄 대안 가죽이자, 실제 가죽의 대체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받으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1,500만 원 이상의 가격(11,350달러)에도 전 사이즈가 품절된 걸 보면 관심이 더 컸나 봅니다.


동물성 섬유의 또 다른 대표인 울도 뛰어난 대체품을 찾기 위한 여정을 나섰습니다. 동물권리 보호 단체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가 지난달 비건 울 챌린지를 연 것인데요. 약 13억 원(1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양모와 유사한 질감, 기능, 형태를 가진 대체 소재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코코넛 추출물로 만들어진 비건 울이 있지만, 널리 활용될 만한 대체 소재는 아직인가 봐요.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맥시 롱 코트가 그린워싱을 이용한 하입이라고 묻는다면, 약간의 망설임을 보태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이피아 코트는 합성 섬유로 만든 페이크 퍼나 페이크 레더가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하는 친환경 천연소재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실질적인 대체품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이 소재가 가방도 구두도 될 수 있기를, 제2의 이피아 소재가 매스 브랜드에도 등장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기존 패션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수요를 지속 가능한 대안 소재로 옮겨오기 위한 미션은 순조롭게 첫걸음을 뗀 것 같습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발명품이 보여주는 것

발렌시아가의 이피아 코트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얼마 뒤, 타임지에서 선정한 ‘2022 최고의 발명품 기사를 보게 되었어요. 이맘때가 되면 타임지에서는 그 해 출시된 가장 파급력 있는 신제품과 아이디어를 분야별로 선정하는데요. 스타일 부문에 선정된 발명품을 보면서, 현시점 무엇이 혁신으로 읽히는지를 둘러보았습니다.


5-6년 전만 해도, 스타일 부문 최고의 발명품 자리는 기술과 결합한 신제품이나 사회/문화적인 의의가 높은 제품이 차지했습니다. 2016년 자동으로 끈을 묶고 풀 수 있는 나이키 운동화, 2017년 무슬림 여자 운동선수를 위한 나이키 프로 히잡이 대표적이죠.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된 제품들의 결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변화를 잘 보여주는 그 해 최고의 발명품 몇 가지를 소개해 볼게요.


2020년에는 섬유 기업 리뉴셀(Re:newcell)에서 개발한 서큘로스(Circulose)가 소개되었어요. 서큘로스는 폐기된 의류를 재가공해서 만드는 신소재입니다. 버려지는 옷을 소재로, 생분해 가능한 직물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최근에는 H&M, 자라와 같은 SPA 브랜드와 함께 협업하고 있고요.

타임지가 선정한 2020 최고의 발명품 (출처: Time)

다음 해에는 주문 제작 데님으로 인지도를 높인 언스펀(unspun)이 실렸습니다. 언스펀은 과잉생산을 막고 생산과정에서 버려지는 옷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맞춤형 청바지를 제작하는데요.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자기 체형을 스캔해서 보내면 3D 직조 기계가 체형에 맞게 제작하기 때문에, 제조 과정상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2021 최고의 발명품 (출처: Time)

2022년에는 나무에서 추출한 섬유소로 면과 유사한 직물을 만드는 스피노바(Spinnova), 의류 폐기물을 프리미엄 재생섬유로 탈바꿈하는 누사이클(NuCycl)이 선정되었습니다. 스피노바 섬유는 생산 과정에서 면직물 대비 99% 적은 물을 사용하는 지속 가능한 소재이고, 올해에 이미 아디다스, 아르켓과 협업하여 제품을 출시했어요. 100% 재활용 가능한 누사이클 재생섬유도 생산 규모를 늘리기 위해 재생 에너지로 작동하는 시설도 짓고 있다고 하고요. 신소재 외에도 코디된 옷을 클릭하면 유사한 빈티지 옷을 찾아주는 스레드업(Thredup)의 AI 기반 검색툴 Thrift the Look도 선정되었습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2022 최고의 발명품 (출처: Time)

2020년 이후 스타일 부문의 화두가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으로 옮겨 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널리 사용되는 옷감의 대안 소재(스피노바)를 개발하고, 버려지는 의류를 재활용(서큘로스, 누사이클) 또는 재사용(스레드업의 Thrift the Look)하며, 생산방식을 변화(언스펀)시키는 발명품들이 보여주는 것처럼요. 특히, 올해 선정된 스피노바, 누사이클은 이미 상업화될 수 있는 규모로 자리 잡아간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지나가는 트렌드가 아니라 규모 있는 영역으로 넓혀가기 위해서는 대중화라는 미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그들의 큰 그림

화제의 버섯 코트를 만든 발렌시아가와 서큘로스, 스피노바 등을 실제 제품에 도입 중인 아르켓의 지속가능성 정책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패션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평가 지표를 제공하는 good on you에 두 브랜드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5점 척도에서 발렌시아가는 4점 ‘좋음을, 아르켓은 3점 ‘보통을 받았더라고요.

출처: good on you

등급 차이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여부에서 갈린 것 같아요. 트렌드에 발맞춘 여러 스타일의 제품이 짧은 주기로 업데이트되는 이상, 환경을 생각한 지속가능성이 충실히 이행되기 어렵다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패션 산업의 성장에 대한 접근을 아예 바꾸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요.


Ellen McArthur Foundation과 BCG의 리포트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15년 사이 의류 생산량은 2배 성장했지만 옷 한 벌당 실제 착용 횟수는 36% 하락했다고 합니다. 패스트패션을 비롯한 패션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생산량을 높여 몸집을 키우는 현 방식에 대한 검토로 이어지고 있어요.


관련해서 등장하는 개념이 있는데, 바로 꽤나 오래전부터 담론화되었던 ‘탈성장’ 입니다.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에 따르면, ‘탈성장주의’는 ‘에너지와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줄임으로써 생명 세계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해요. 파이의 크기를 유지하거나 줄여 나가면서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성장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죠.


세계 의류 소비는 2030년까지 6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늘어나는 생산량을 감당하기 위해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또한 비슷한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EU와 미국 정부에서는 의류 생산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고요. 지금 패션 산업이 마주하는 전략적 환경을 고려할 때 탈성장 혹은 그 비슷한 개념에 대한 논의는 불가피한 것 같아요.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는 양적 성장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개념을 ‘순환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순환 모델은 제품이 생산, 소비, 폐기되는 과정을 직선이 아니라 루프화하여, 루프 안에서 폐기물, 원료, 제품을 순환되도록 하는 것이에요. 패션 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70% 이상은 원료 생산, 가공 등 밸류체인 업스트림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순환 모델을 통해 제품 생산과 자원 사용으로부터 수익을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해서 판매하고 매출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i) 사용자당 사용 횟수를 높이거나 ii) 제품마다 거쳐가는 사용자의 수를 늘려서 또는 iii) 실물 상품 이상의 무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양적 성장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죠.

순환 경제 시스템 다이어그램 (출처: Ellen McArthur Foundation)

폐의류로 재생섬유를 만들거나 업사이클링 하는 재활용, 빈티지, 리셀, 렌털 플랫폼을 통한 재사용, 수선 등을 통한 재탄생 모두 순환 모델의 범위 내 있습니다. 글의 전반부에서 언급된 사례 모두 마찬가지이고요.


제가 참고한 리포트는 재활용, 재사용, 재탄생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을 통해 2030년까지 패션 시장에서 뿜어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태국, 프랑스의 연간 배출량만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안적인 비즈니스 모델 4가지 (출처: Ellen McArthur Foundation)

지난주 금요일은 블랙프라이데이였습니다. 제 메일함에는 온갖 브랜드와 플랫폼에서 날아온 할인 소식이 꽂혔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겨울 쇼핑 하울과 추천템을 잔뜩 올려 주기도 했고요.

일개 소비자로서 저는 가끔 친환경을 바라보는 혁신과 발전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특히 의류나 잡화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할지라도 결국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가 모르고 있던 패션 산업의 큰 그림은 무력감을 더 날카로운 관심으로 바꾸는 것 같습니다. 고민하다가 고른 옷 한 벌이 진짜 어디에서 왔는지, 나를 떠난 뒤엔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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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구운김>의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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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구운김 • 식스틴 •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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