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잃으면 끝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곧 무언가를 잃는 것은 흥미진진한 새로운 세계, 완전히 새로운 세계, 전혀 다른 세계, 더 만족스러운 삶의 시작이 된다. 마시는 물과 흐르는 물은 그 성질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게 진실이다. 곧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인생의 변화가 올 때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때다.”

-조앤 치티스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중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인생의 단계들을 경험한다. 어쩌면 각자 인생의 단계를 무사히 넘어가 다음 단계에 안착하려는 과정이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만 간다고 미래가 오지 않기에 그 과정 안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점철이 결국 각자의 인생이리라.

  그렇다면 살아 온 삶을 돌아보고, 다시 살아 낼 삶을 내다보는 시간 중 가장 농익은 인생의 단계는 언제일까?.

  개인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기에 인생의 단계를 일률적으로 정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인생의 변화 중 노년 단계로의 진입이 다른 인생의 단계들과는 달리 사뭇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늘 그 안에서 역할을 찾고, 이뤄 나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노력의 대가인 성장으로 성취감을 맛보며 인생의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 또 다른 내 삶의 역할을 찾아서. 하지만, 가장 농익어 인생 다음 단계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인생의 변화를 찾고 맞아야 함에도 노년 인생 단계에서 그래야만 한다는 ‘역할 재단(裁斷)’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월에 장사 없듯 노화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 그 어떤 단계에서든 당사자가 이해할 수 없는 ‘역할 재단(裁斷)’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 간의 거리는 공간의 밀도로 결정되고, 공간의 밀도는 그 공간 내 사회적 관계를 결정한다고 한다. 노년의 역할에 대한 인식 부재가 공간 내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노후 ‘사회적 고립’이라는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음 또한 현실이다.


인생의 단계에 있어 그래야만 하는 ‘역할 재단(裁斷)’ 현상이 왜 일어날까?


   비슷한 역사적 배경과 유전적 유사성을 가진 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경험하며 유사한 심리적 특성을 발전시키고, 그런 성향들이 모이고 상호작용하여 그 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런데 한 사회의 문화 심리적 특성이 그 구성원에게 잘 느껴지는 시기에는 양적 성장을 넘어서 질적 변화를 경험하게 되어 과거의 당연했던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느껴 본 적 없었던 욕구와 변화를 직면하면서 과거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부정이 시작된다고 한다.

  

  “근데, 그 시절이랑 다르잖아요!”

  X 세대, Y 세대, Z 세대, MZ세대, 베이비부머 세대 등이 다름 아니며 각 세대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 인식 또한 공존한다. 자기중심의 최선은 최악이라는 말처럼 세대 갈등 차원이 아닌 문화 심리적 특성을 공유하는 각 세대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못하기에 삶의 인생 단계에서 ‘역할 재단(裁斷)’ 현상이 일어나지 않나 생각한다.


  "사자(獅子, lion)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중에서


  삶의 방식이 다르고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달라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이해하기에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삶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요즘, 각 세대의 숨어있는 역사와 공간에 귀 기울이려 노력해야 한다.

  다시 삶의 인생 단계에서 노년의 역할과 역할 재정립을 생각한다.

  먼저, 노년에 대한 고유의 존엄성, 가치, 권리를 지닌 주체로서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물론 그 중심은 인생의 정리가 아닌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하는 노년이다. 그러므로 시혜 대상으로서의 ‘역할 재단(裁斷)’이 아닌 상실된 역할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 나가는 선배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남긴 상처가 많은 노년이지만,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의미가 되듯이 그들의 흉터 속 숨어있는 역사와 공간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시혜가 아닌 노년의 성장에 중점을 둔 정책 수립과 노후 역할 상실로 인한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선배 시민으로서 역할 찾기가 중요하다.

  ‘인생의 다음 단계’가 흥미진진한 새로운 세계, 완전히 새로운 세계, 전혀 다른 세계, 더 만족스러운 삶이 시작되는 세계가 되기 위해서 비워 낼 것은 비워 내야 한다. 그리고 그 비움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생의 다음 단계’를 채우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노년을 맞는다. 그래서 노후 역할 재정립에 대한 우리 모두의 관심과 공감이 필요하며,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함께함은 산길과 같아서 자주 오고 가지 않으면 그 길은 없어진다고 한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공감이 세상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리라 확신하며, 그 관심과 공감이 의미로 자리매김하는 순간 ‘인생의 다음 단계’는 특별한 무엇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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