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식물을 보존하는 사람들?!
Feb 7, 2023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10
정글플랜츠계의 지존, 라비시아 sp.

🔫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5년 전, 인터넷의 한 식물 동호인 카페가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열대의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죠. 이름도 생소했습니다. 호말로메나, 라비시아, 소넬리아, 아르디시아 등등. 홍콩야자나 행복수에 비하면 이름부터 야생미가 철철 흘러넘쳤죠.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식물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얼마면 되는지!’ 말이죠. 식물 사진만 올려도 감탄과 환호의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 식물들은 ‘정글플랜츠(Jungle plants)’라고 했습니다. 원예종으로 개량된 식물과 달리 원산지에 서식하는 ‘원종’이었습니다. 대부분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이나 수마트라섬 등에서 자생하는 식물이었죠.


그곳은 1년 열두 달이 우기이기 때문에 정글 플랜츠 역시 습도 80% 이상을 유지해주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고 했습니다. 원산지의 환경을 재현해줘야 산다니! 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은 잎이 녹색이지만, 정글플랜츠는 은빛이 감도는가 하면 핑크빛에 무지갯빛, 심지어 형광빛까지 뿜어댔습니다. 크기도 작아서 테라리움과 같은 작은 생태계를 재현하는 데 안성맞춤이었죠.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탓에 대량으로 번식한 개체들이 많지 않은 것도 마니아들의 소유욕을 자극했습니다. 오직 보르네오섬의 깊숙한 정글을 탐험하여 채집해야만 키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새로운 종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제발 분양받을 수 있게만 해주세요!”


이미 취미 강국 일본에서는 10년 전부터 정글플랜츠의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몇몇 동호인들은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누군가는 일본의 정글플랜츠 판매상과 접촉해 수집을 시작했고, 구매대행을 통해 조금씩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5천 원이면 풍성한 스킨답서스 화분 하나를 살 수 있었지만, 스킨답서스 잎 한 장 크기의 정글플랜츠는 5만 원에서 십수만 원을 호가했습니다. 특히 일본 유명 셀러의 이름이 붙은 식물은 같은 종이라고 해도 프리미엄이 붙었죠.


“그래도 좋아요. 구할 수만 있게 해주세요!”


정글플랜츠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자 정보는 더욱 세밀해졌습니다. 급기야 대한민국의 정글플랜츠 동호인들이 일본의 판매상에게 바가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죠. 이에 분노한 동호인들은 직접 인도네시아 현지 수입을 진행하기에 이릅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일본 수입 개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다양한 정글플랜츠를 분양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심지어 학명도 정해지지 않은 정글플랜츠가 수입되면서 수입한 사람이 식물의 닉네임까지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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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동호인이 접촉한 인도네시아 현지 사람들은 ‘플랜트 헌터’였습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직업이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플랜트 헌터는 식민지를 거느린 나라에서 먼저 생겼기 때문입니다. 18세기 무렵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동남아나 남미 등지의 식물들을 채집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열대식물의 ‘심마니’ 정도가 되겠네요. 영국의 왕립식물원 큐가든의 웹사이트에는 플랜트 헌터를 나름 시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플랜트 헌터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에요. 모험심으로 무장한 열정과 풍부한 지식을 겸비한 식물학자죠. 그들은 특이하고 아름다운 식물을 찾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100마일은 더 갈 수 있는 사람들이죠.


당시 채집한 식물과 표본, 씨앗 등은 유럽의 식물원이나 대학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는 데 쓰였습니다. 어쩌면 플랜트 헌터들이 발품을 판 덕에 지금 우리가 몬스테라 알보나 안스리움 같은 식물을 집 안에서 키울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죠. 관상용 식물뿐만이 아닙니다. 16세기 남미에서 플랜트 헌터들이 감자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은 아마 메뉴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이런 식물은 ‘전리품’입니다. 18세기 유럽 국가들은 식민제국 건설에 열을 올렸고, 지식에 대한 갈증도 커지면서 이국적인 거라면 뭐든 약탈했으니까요. 큐가든은 무려 4만여 종, 700만 점의 식물을 수집해 키우고 있습니다. 플랜트 헌터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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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국내의 정글플랜츠 마니아들이 플랜트 헌터와 직거래를 한 덕(?)에, 저 역시 듣도 보도 못한 식물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에도 수입되지 않은 식물을 국내에서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이쯤 되니 고민이 생겼습니다. 야생의 식물을 키우겠다고 사들여서는 키우는 족족 죽여먹고 있으니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죠.


‘내 욕심을 채우자고 희귀식물의 씨를 말리는 건 아닌가?!’


그런데 고민이 무르익기도 전에 그 고민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정글플랜츠의 유행은 여의도불꽃축제처럼 한순간 폭발하더니 순식간에 꺼져버렸거든요. 수요가 없어지면서 공급이 줄었습니다. 적어도 국내 마니아 때문에 정글플랜츠의 씨가 마를 일은 없어진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집사로서 여전히 그 고민은 숙제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나마 관엽식물은 정글플랜츠와 달리 야생의 채집개체가 유통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안심이지요. 개량종이 훨씬 예쁜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야생의 채집개체는 저에게 트라우마를 남겼으므로, 어떤 이유에서든 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활동하는 플랜트 헌터들은 200년 전보다 훨씬 더 상업적인 활동을 합니다. 새로운 종을 시장에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하지만 그들 역시 종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프리랜서 생태학자인 소피 레길은 지금의 플랜트 헌터의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플랜트 헌터들의 목적이 상업적일지라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종을 보급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종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줘요. 게다가 상업적인 플랜트 헌터들은 지역기관과 손을 잡고 채집식물의 표본과 정보를 공유하여 전 세계적으로 식물 지식을 축적하고 있죠.

-Plant Hunting in the 21st century


그들이 식물을 ‘사냥’하는 한편으로는 식물을 보존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플랜트 헌터인 톰 하트 다이크는 2000년 콜롬비아의 정글로 희귀 난초를 채집하러 갔다가 콜롬비아 게릴라군에게 납치되어 9개월간 감금됐다 풀려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 후, 그는 영국 켄트에 ‘세계의 정원(The World Garden)’이라는 식물원을 세워 지금까지 수집한 6,000여 종의 식물을 키우며 종 보존에 힘쓰고 있죠.


식물집사 역시 식물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종을 보존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내가 번식한 식물을 당근마켓에 내보내는 일, 화분 위에 포자가 앉아 처음 보는 고사리가 자라는 일, 실력 있는 집사가 안스리움을 교배하여 새로운 종을 만드는 일 모두 식물을 이동시키고 적응시키며 종이 유지될 수 있게 도와주는 식물집사의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피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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