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스마트폰 어플의 알람을 보고 흠칫 놀라는 일이 있었어요. 올해 1월1일부터 ‘마이루틴’이라는 기록용 어플을 깔아서 사용하고 있는데요, 어플을 설치한지 330일이 되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올해가 35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아직도 2023이라는 숫자와 완전히 친숙해지지 못한 것 같은데 말이죠.

올해는 무얼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다 지난 2월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 있는 다누리 관제실 취재를 갔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다누리는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이에요. 2022년 8월5일 발사돼 12월27일 달에 도착했습니다. 4개월 반을 날아간 것이죠. 달이 지구로부터 38만km나 떨어져있기는 하지만 곧장 날아간다면 4~5일 내에 도착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다누리는 개발 과정에서 여러 사정이 겹쳐 ‘BLT 궤도’라는 길을 택해 한참을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이 기사를 봐주세요. ‘달로 간 다누리 앞에 놓인 6개의 미션’)

‘BLT 궤도’는 처음에는 태양 쪽을 향해 날아가다가 중간에 방향을 바꾸어 달로 가게 됩니다. 이게 얼마나 희한한 경로냐면 한 천문학자가 말하길 “농구공을 골대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바로 던지지 않고, 반대편 골대로 던져서 그 골대의 백보드를 맞춘 뒤 그 탄성으로 농구공이 튀어나와 우리편 골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매우 어려운 루트이고, 다누리 전에 이 길로 달에 갔던 탐사선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BLT 궤도라는 길을 택하게 되었지만 다누리는 모두가 깜짝 놀랄만큼 안정적으로 먼 우주를 항해 해서 달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달로 직행했다면 포착할 없는 우주의 광경들을 지구로 보내와요. 대표적인 사진이 지구와 달이 나란히 찍힌 바로 이 사진입니다. 

다누리는 한국에서 지구 아닌 다른 천체로 보낸 첫 번째 우주선이기도 합니다. ‘이걸 운영하는 관제실이라니! 그런 장소가 한국에 있다니!’ 저는 꼭 한번 르포 기사를 써보고 싶었어요. 항공우주연구원 홍보실의 문을 두드렸는데 생각보다 쉽게 취재 허락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관제실을 배경으로 연구원들 인터뷰를 하거나 짧은 영상 스케치를 요청하는 곳은 있어도, 관제실에서 다누리를 운영하는 과정에 관심을 보인 언론사는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시사IN>에서만 볼 수 있는 다누리 관제실 르포 기사 ‘달로 간 우주선을 운행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나오게 되었지요.

다누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달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원래는 올해 12월까지 1년으로 미션 기간이 정해져있었지만 다누리의 상태를 다각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2025년 12월까지 3년으로 임무운영 기간이 연장되었습니다. 지구에서 달까지 항행이 너무나도 성공적이라 연료 약 30kg을 아낄 수 있었던 덕분이에요.

이제는 달을 올려다볼 때마다 다누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소형차 크기의 작은 탐사선에 실어 보낸 꿈과 열망도 함께 떠오르지요. 우주를 향한 탐사에는 인류가 가진 호기심 두 가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우리 말고 또 이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하는 궁금증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이런 질문을 심고 사는 존재들이라면 우리 심성의 선한 구석에 대해 한 뼘쯤은 더 믿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요즘 밤하늘에 ‘에이 저거 위성이지’ 할 정도로 밝은 별이 뜨는데요, 위성도 별(항성)도 아닌 목성이랍니다. 각자 서있는 곳은 다르지만 같은 천체들을 바라보며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다면 꽤나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올해도 <시사IN>을 격려하고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겨울 보내시길, 다음 편지로 또 소식 전해드릴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