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은 잘못된 것일까요.

 

최근 친한 친구들이 임신하거나 출산하는 일이 생기며 단톡방 대화 내용이 관련된 이야기들로 채워질 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화의 80~90%가 아이 이야기로 도배되어 친구 사이가 어색해졌다는 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가끔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로 등장할 때마다 아이의 탄생이나 양육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 이후론 채팅방을 대하는 제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임신한 친구의 초음파 사진 혹은 막 태어난 조카의 사진을 보며 귀여워하는 친구들 사이로 영혼 없는 리액션을 보내는 저의 모습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더라고요. 사실 제게 그 사진들은 그저 평범하고 별 감흥이 없는 사진일 뿐이었고 작은 생물을 바라볼 때 드는, 귀엽고 어리다는 당연한 마음이 들기야 했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감탄하는 모습이 저는 유독 어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이가 폭 안기는 느낌이 그 자체로 충만했다”라거나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사랑이라” 빨리 출산하고 싶다는 한 친구의 말은, 그 메시지 자체에는 십분 공감하는 한편…아이를 보며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저 자신이 어쩐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를 보고도 귀여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연스럽게 출산과 육아에 대한 희망(?)을 품지 못하는 저는 어딘가 결여된 사람인 걸까요? 머리로는 여성들이 가진 모성애는 환상일 뿐이라는 걸 잘 알지만 때때로 생활을 하며 이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사실은 제 마음의 어딘가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어떤 겨울 님의 사연을 읽는 동안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이런 기분 정말 잘 알지!’,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해야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이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쓰며 진행한 인터뷰에서 “혹시,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나쁜 사람 아닐까 생각해본 적 있나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와, 맞아요!”라는 민하 님의 대답을 들었을 때 무척 안도했어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아기한테 말 걸고 그런 걸 못했고, 별로 예뻐하지 않았어요. 다른 친구들은 애들을 보면 ‘아~너무 예쁘다’ 그러는데, 저는 약간……뒷짐 지고 있었죠.” ‘뒷짐 지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아서 웃음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민하 님의 말씀에 저도 조금 씁쓸해졌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생각했어요. 내가 너무 성격이 모났나?”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미래의 엄마’로 간주되기에 그러한 규범에서 벗어나는 감정은 부정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됩니다. 아기를 보고 귀엽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갖거나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의 절대다수는 아마도 여성일 겁니다. ‘자연적 모성’이라는 신화는 온갖 곳에서 여성을 재단하고 옭아매는 데 쓰이곤 하죠. 한 딩크 부부의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여자가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싸이코패스 아닌 이상 자기 남자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게 정상입니다.”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남의 인생에 이 정도로 악담을 퍼붓는 사람이 아이 없는 저보다 싸이코패스에 한 발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그러니 어떤 겨울 님께서도 모성애가 환상이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아신다면 이제 ‘내가 어딘가 결여된/부족한 사람인가’라는 자책은 접으셔도 좋겠습니다. 다만 저는 표현을 조금 구체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해요. 10여 년 전쯤의 저는 “아이가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성 역할에 진저리가 났고 공공장소에서 아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이나 돌발상황에 참을성이 없는 편이었거든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모습을 보며, 또 ‘노키즈 존’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통해 아이는 내가 ‘좋아한다/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데 생각이 이르렀어요. 얼마 전 무자녀 삶에 관한 인터뷰에서 저는 아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이와 장시간 함께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그거 같지만, 후자의 경우엔 아이를 문제의 원인으로 두는 대신 나의 한계와 취약성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물론 아이 없는 사람이 아이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건 어느 쪽이든 어려운 일입니다. 1995년 결혼해 아이 없이 살아온 미국의 사회학자 에이미 블랙스톤은 <우리가 선택한 가족(원제: Childfree by Choice)>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은 종종 자신의 선택을 변명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중략)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이 미성년자를 무조건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틀렸다. 이런 억측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 중 일부는 자기가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선택을 과잉 변명하거나 사과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종류의 사과를 ‘나도 아이는 좋아하지만’ 전략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략은 주로 아이를 갖지 않은 데 대한 비난을 피하려는 유명인들에게 자주 나타난다고 해요. 아이를 보고 절로 귀엽다는 탄성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런 비난을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단톡방은 은근히 복잡한 사회생활이죠. 친구라도 서로의 삶이 점점 달라질수록 부동산, 주식, 좋아하는 연예인, 정치, 드라마, 연애, 결혼 생활 얘기 등 다양한 관심사에 매번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초음파 사진이나 아기 사진은 대개 구체적 서사나 맥락이 드러나지 않는데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사랑”이므로 긍정적 반응만을 보여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 있기에 영혼 없는 리액션을 보낼 때 스스로 위화감이나 피로를 느끼게 되죠. 그런데 이런 상황은 아이에 대한 인식과는 별로 관련이 없고,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의 영역 같아요. 제 친구 하나가 이럴 때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리액션 노하우를 알려준 적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읊으면서 감탄사를 더하는 거죠. “와, 빨간 옷 입었네!” “어머, 이제 걸어다니네!” 이 글을 쓰다가, 최근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조카들의 성묘 사진을 보고 제가 뭐라고 했는지 찾아봤습니다. “절을 아주 성실하게 하고 있네!” 아니, 하지만 그게 제 가장 솔직한 감상이었거든요.

 

두서없었지만 어떤 겨울 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 같은 사람은 우리만이 아니고 우리의 감정 또한 잘못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사실 저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제 삶의 방향성이 명확해지면서 이런 상황에 예전만큼 스트레스받지는 않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이 말하는 충만함이나 감동은 그 사람의 감정일 뿐, 내가 마땅히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님을 확신하게 되자 그런 말들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더라고요. 에이미 블랙스톤 역시 아이의 삶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사람이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사랑과 미움이라는 이분법보다 한층 미묘하다고 설명하며 말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어른이 되면서 내가 사는 마을에 아이가 없다고 해도 나로서는 전혀 불만스럽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나 미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활발하게 소통하지 않고서도 인류 전체의 행복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들을 존중하고,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 아닌가 싶어요. 내가 사는 마을인 우리 집에는 아이가 없지만, 운전대를 잡았을 때, 카페나 식당에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우리는 어떤 어른으로 아이들을 대할 것인지 말이죠.

 

 

안녕히 계세요.

 

 

추신 – 얼마 전 대학원 동기들에게 이끌려 롯데월드에 다녀왔습니다. 21세기 들어서는 처음 간 것 같아요. 발밑이 꺼지는 것 같은 놀이기구 위에서 정신없이 절규하며 생각했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굳이 줄까지 서서 극한의 공포를 맛보다니 인간은 정말 어리석은 존재로구나. 하지만 평소의 저라면 하지 않았을 경험이라 즐거웠던 걸 보면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