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해도 괜찮은 시간

시간과 공간이 말하는 나

님, 항간을 떠도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내가 어떤 공간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행위에 얼마나 시간을 쏟는 지가 나를 설명한다.” 세상 모든 존재는 24시간의 하루를 부여받습니다. 방학 계획표를 그리던 때처럼 머릿속에 커다란 원을 그려두고 어디서 무얼 하며 보내는지 쪼개보세요. 하나의 행위에 몰두한 때를 곰곰이 따져보니,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건 개인적인 공간에서의 잠과 휴식이 아니던가요? 해가 건물 틈으로 잠기고 눈꺼풀이 슬금슬금 무거워지는 그때가 뜬눈으로 보낼 때보다 나를 더 잘 설명할지도 모릅니다. 님은 오늘의 잠과 휴식을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그 시간으로 나를 무어라 설명하고 싶은가요? 결론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어라운드의 지난 발자국을 되짚어 보았어요. 술 한 잔과 즐거움을 꼴깍꼴깍 넘기는 작가 김혼비, 마음이 들여다보이는 밤을 지새는 뮤지션 오지은과의 대화를 이번 뉴스레터에 꺼내둡니다.

10.19.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무얼 해도 괜찮은 시간


11.02. What We Like취향을 나누는 마음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을 소개해요.


11.16.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책에 실리지 못한, 숨겨진 어라운드만의 이야기를 전해요.

나… 뭘 하고 온 거지? 대화를 정리하는 내내 골치가 아팠다. 인터뷰를 이어가다 말고 “이 술 진짜 맛있다.”, “와, 여기 친구들 데리고 와야지!” 감탄과 대꾸를 가장한 주정이 뭐 이리 많은지.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미 취했다. 맥주 한 캔이면 하루 치 알코올을 꽉 채우는데, 막걸리 세 통이라니. 미쳤지, 미쳤어. 작가 김혼비와 함께라면 나 같은 술 바보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술꾼이 된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

소주 첫 잔 따를 때 소리, ‘똘똘똘똘 꼴꼴꼴꼴’을 처음 발견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요?

스물한 살, 대학생 때였어요. 많이 슬펐던 밤에 발견한 소리예요. 지금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술을 아예 안 마시지만 그때만 해도 속상할 땐 혼자 술을 마시곤 했거든요. 학교에서 밤새 작업할 때였는데, 과실 냉장고에 소주밖에 없더라고요. 소주랑 종이컵을 챙겨서 아무도 없는 국기 게양대로 갔어요. 딱 두 잔만 마시겠다 생각하고 그 고요한 밤에 소주를 따르는데 ‘봉봉봉봉’ 소리가 나는 거예요. 당시 단편영화 촬영장에서 붐 마이크를 담당할 때라 소리에 민감해서 그랬는진 몰라도 처음 그 소리를 알아챘어요. 기분이 확 좋아져서 ‘다시 들어야지!’ 싶었는데, 두 번째 잔부턴 안 나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그 소리는 첫 잔에서만 나는 소리였던 거예요.

 

저는 원고가 잘 안 써질 때 맥주를 한 캔씩 따곤 해요. 술 먹고 쓴 글이 몇 개 있죠(웃음). 술 마시고 작업해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저는 글 쓸 땐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아요. 글이 잘 안 풀릴 땐 한 잔 마시면 잘 풀린단 이야길 들은 적이 있는데, 술 마시고 작업했다가 잘 풀리는 순간을 경험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시도조차 안 해봤어요. 진짜 잘 써지면 글 쓸 때마다 술을 마실 것 같더라고요. 아, 제가 글 쓸 때까지 술을 마시면 진짜 답이 없거든요. 그걸 경험하게 될까 봐 무서웠어요. 끝까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에요.

 

술친구 삼합에 관한 내용도 흥미로웠어요. ‘알맞고, 술 좋아하고, 웃기고’였죠.

이 삼합 중 ‘웃기고’에 정말 많은 게 포함돼요. 유머 소재로 누군가를 희화화하는데, 희화화하는 대상이 제 기준에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건 정치관도 맞는단 뜻이잖아요. 이 삼합에 두 가지 요소를 더 보탠다면, ‘함께 솔직해질 수 있고’, ‘무례함의 선을 지킬 수 있고’ 정도겠네요. 솔직해진다는 건 술 마시고 적당히 풀어진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해요. 근데 그 솔직함이 무례함까지 가면 힘들어요. 아니, 사람마다 무례함의 기준은 다르니까 무례해질 수도 있는데요. “이건 무례한 거 같아요.” 했을 때 멈출 줄 알고, 그 뒤로는 그 선을 잘 지켜주는 사람이 좋아요.

 

술친구 삼합을 고루 갖춘 동거인 T 얘기도 궁금해요.

T는 여전히 제 인생 최고의 술친구예요. T랑 함께여서 정말 좋아요. 근데… T랑 술을 마시다 보면 “우리 너무 순조롭게 망해가는 거 아닐까?”라는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T와 함께 살게 된 후 제일 좋은 건 술 한잔 나누면서 의논할 사람이 늘 곁에 있다는 거예요. 안 좋은 점은 한 잔이 한 병 되고, 한 시간을 약속한 술자리가 새벽까지 길어지는 거죠. 지난주에도 밤 열한 시에 먹기 시작한 술이 새벽 네 시까지 이어져서 두 시간 반만 자고 회사에 간 적이 있어요. 이런 일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생기는데, 이럴 때마다 폭삭 망하는 게 아니라 행복해하면서 망해가는 기분이 들어요(웃음).

어느 늦은 밤. 특별히 마음 아픈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던 밤. 왜인지 가슴을 후려치는 이 노래 때문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도대체 ‘새벽 3시’는 그녀에게 어떤 시간이었길래 듣는 사람까지 이렇게 잠 못들 게 하는 걸까. 그녀를 찾아가 물어보고 싶어졌다.


에디터 정혜미 포토그래퍼 안선근

도대체 ‘새벽 3시’가 지은 씨에게 어떤 시간인지 궁금해요.

되게 재미없게 대답하면 일하기 좋은 시간이죠. 음악 만드는 것도 일이고 글 쓰는 것도 일이잖아요. 막 흥에 겨워서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남에게 전달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나만 좋다고 하는 일은 아니거든요. 다만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에요. 근데 이 시간 전에 자야 건강에 좋다면서요(웃음)? 그래서 낮에 작업하는 습관을 많이 들이려고 했어요. 요즘 음악을 다시 시작했는데, 결국 또 밤에 하게 되더라고요.

 

영감이 떠오르는 시간인가 봐요.

음, 어떤 걸까요. 남과 완전히 차단되는 시간이니까요. 엘리베이터 타고 깊은 곳으로 가는 느낌인 것 같아요. 평소에는 1층 로비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북적북적 지내다가, 물론 그것도 너무 좋지만, 뭔가를 해야 할 때는 엘리베이터 타고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사람인가 봐요.

 

보통 곡을 집에서 쓰시나요?

저는 아무 곳에서 다써요. 대부분의 시간은 침대에 누워있기 때문에, 침대에서 쓸 때가 많아요. 부끄럽게도(웃음).

 

노랫말들이 시 같아요. 아무래도 글쓰기도 좋아하셔서 그런 것 같은데, 가사는 특별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쓰시나요?

1, 2, 3집 때는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적나라하게 작업하는 사람이어서요. 근데 현재는 공식적으로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이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물론 비공식적으로도 하고 싶지 않고요(웃음). 그래서 이 부분이 좀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이야깃거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그게 음악이 되고, 글이 되고. 음악이 그렇게 1차원적인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인풋, 아웃풋이 되는 세계 도 있지만 다른 세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최근 작업은 듀엣 작업이라서 약간은 다른 지점에 가게 되요. 팀에 가사와 곡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곡 작업하고 있어요. 내용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 같아요. 가사를 생각해보니 완전히 제 것도, 그렇다고 허구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이네요. 단편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가사를 쓰는 것 같아요. 소설의 모든 주인공의 어느 부분은 작가의 분신이잖아요. 그렇게 쓰는 듯해요.

 

개인 사이트에서 항상 헤어짐과 끝, 어긋남 이런 것들만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부분이 가사에 잘 녹아있는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모든 창작자들은 꽂히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흰색 그림만 그린다든지, 또 어떤 사람은 나무만 그린다든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것에 꽂히는 거요. 그리고 작업을 하다 보면 ‘나는 왜 여기 꽂혀있나’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 답을 본인도 못 찾을 수도 있고 또 답을 몰라도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희한하게 뭔가 어긋나는 때에 ‘이게 인생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언가 일이 잘 풀리거나 잘 맞아 돌아가면 약간 불안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곧 망하게 될 거야’라며 생각해요(웃음). 그러다가 망하게 되면 ‘역시!’ 이런 느낌이 들어요. 그때 또 무언가 창작물이 나오고. 아이러니하죠. 뭔가가 잘 맞아 떨어질 때 아름다움을 그리는 분들도 있죠. 그게 각자 창작자로서의 사명감 같아요

밤의 사색을 꺼내어 둔 오지은은 뮤지션이자 작가, 여행가로 불리기도 해요. 《홋카이도 보통열차》는 9일 동안 기차를 타고 일본의 미나미치토세역부터 삿포로역까지, 홋카이도를 한 바퀴 쓰다듬으며 만든 그의 첫 책입니다. 두 번째 책 《익숙한 새벽 세시》에서는 솔직하고 밝게 빛나던 이십 대를 지나 서른다섯에 다다랐던 그가 교토에 닿아 써 내린 감상과 일상 에세이를 한데 묶었어요. 삶의 파이를 사색과 여행, 노래를 짓는 일로 조각내어 덤덤하게 전하는 그를 보며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문득 찾아보던 필름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작은 움직임마저 커다란 소음으로 느껴질 듯한 하코다테의 순백색 풍경, 거리 곳곳을 거닐던 연인은 부드럽고도 덤덤한 말투로 이별을 고합니다. “넌 아침에 있고 난 밤에 있고, 넌 여름에 있고 난 겨울에 있고, 넌 우주에 있고 난 모래알 틈에 있어. 난 바람에 있고 넌 오래된 집 안에 있지.” 의뭉스러운 내용이지만 시공간을 나눠왔던 연인에게는 그 의미가 마음속으로 녹아들 테지요. 헤어지는 남녀의 대화를 듣지 못한 탓인지 하얀 눈이 슬슬 내리는 하코다테 거리는 아름답기만 합니다. 감독 김종관이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를 소개하기 위해 연출한 이 필름은, 누군가와 생각을 속삭이던 하루의 기억을 살며시 끌어옵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기분으로 나의 지난날을 응시하고 싶어져요.

《AROUND》 별책 부록

매거진과 곁들이기 좋을 소소한 이야기를 안겨드리는 별책 부록. 이번에는 잠과 휴식의 얼굴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본 AROUND Vol.91 ‘잠의 시간(The Rest)’ 부록을 공개합니다. 아래 버튼을 통해, 작고 반짝이는 이야기들이 모인 부록을 펼쳐 두고 각자의 밤을 헤아려 보아요.

누군가의 잠과 쉼

꿈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뮤지션 전진희와 특별한 밤낮을 보내는 ‘책바’ 정인성, 일상과 쉼을 하나로 묶는 ‘삭스타즈’ 성태민과의 대화를 들춰보세요. 잠과 휴식에서 고유한 의미를 건져내는 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사뭇 색다르게 바라봅니다.

잠의 곁에서

우리의 밤을 곱씹어 보며, 어두컴컴하고도 고요한 시간을 채우는 무언가를 한데 모았습니다. 휴식에 함께하는 아이템, 잠에 대한 고민을 한 모금에 삼켜보는 공간을 소개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뒤적여 술과 생각이 흐르는 밤의 이야기도 챙겨 두었어요.

잠깐 한눈을 판 사이, 해가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번지는 시기입니다. 이따금 부는 차디찬 바람에 몸 상하지 않도록 옷깃을 단단히 여며주세요. 11월의 문턱에 서서 전해드릴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어라운드 식구들의 취향을 들려드릴게요. 어라운드가 보내는 편지 한 통이 작은 기쁨이 되길 바라며, 다다음주 목요일에 만나요!

‘잠의 시간(The Rest)’을 주제로 한 《AROUND》 91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AROUND EVENT with Collins


잠들기 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을 누리고 있나요? 《AROUND》 91호에 담긴 콜린스와 함께 각자만의 ‘콜린스 모먼트’를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래 버튼을 눌러 연결되는 구글폼에 고유한 휴식의 순간을 들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콜린스 인센스를 선물로 드릴게요.

오디오 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어라운드의 이야기를 더 특별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AROUND Club을 신청하셨다면, 어라운드가 모으고 다듬은 문장을 귀로 음미할 수 있어요. 지금 바로 홈페이지에서 궁금한 기사를 눌러 오디오 북을 재생해보세요.

어라운드를 보다 더 가까운 일상에서 만나고픈 독자분들을 위해 ‘AROUND Club’ 혜택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간 어라운드가 꾸준히 쌓아온 2,800여 개 이상의 기사를 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 통해 만나보세요. 주변을 살펴 모아둔 다정한 이야기를 여러분의 손에 내어드릴게요.

•《AROUND》 전 호의 모든 기사 열람
가족 매거진 《wee》, 어라운드가 함께하는 브랜드 매거진 열람
매거진에는 없는 비하인드 컷 감상
• 지난 뉴스레터 콘텐츠를 한 번에 감상
• 북마크 기능으로 나만의 페이지 소장
• 원하는 기사와 인사이트를 검색

어라운드 뉴스레터에서는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또 다른 콘텐츠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넓혀볼게요.

당신의 주변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2023 AROUND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