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은 '누가 칼로 협박했냐'의 줄임말인데요. 용례는 이렇습니다. 누군가가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하면 "그런 회사 들어가라고 누칼협?", 취업 과정에서 학력 차별을 당했다고 투덜거리면 "그런 대학 나오라고 누칼협?", 영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는데 금리가 올라 힘들다고 하면 "집 사라고 누칼협?", 심지어 대형 참사가 벌어져도 왜 거기를 갔냐며 "누칼협?"

개인적으로는 '2022년 제일 끔찍했던 인터넷 밈' 1위를 꼽자면, 주저 없이 누칼협을 꼽고 싶어요. 그만큼 저는 이 유행어가 싫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대놓고 조롱하는 표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칼로 협박 당하지 않는 한' 개인이 선택의 결과에 무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고 방식에 거부감이 느껴져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도생의 세계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위기감도 들고요. 

약자가 낙오되는 것이 당연한 누칼협의 세계에선, 공동체의 회복이나 제도적 해결같은 이야기는 무가치한 것이 됩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항할 무기는 없을까요. 수많은 노력들이 모여야겠지만, 일단 기자로서 제가 찾은 방법론은 '목소리'입니다.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세상에는 개인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개인이 이 모든 비극을 감당하게 내버려둬서도 안됨을 느끼게 되거든요. 사회 구조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바로 이러한 깨달음에서부터 시작되고요.

이번주 플랫에 소개한 [나 어린 엄마] 시리즈는 이러한 목소리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조해람 정책사회부 기자는 수차례의 구술생애사 인터뷰를 통해 청소년 한부모 2명의 삶을 온전한 이야기로 기록했습니다. 알콜 중독인 아버지의 방임으로 시설을 전전하다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서연, 술집에서 일하던 어머니의 폭력을 피해 잭나이프 하나를 몸에 지니고 거리로 나선 상아… 세상의 편견과 홀대와 폭력에 무너져내렸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이들은 '불쌍한 피해자'나 '철없는 문제아'라는 이름에 갇히기엔 너무 크고 강인했습니다.

📌[나, 어린엄마] ①트리에 빛이 열렸다, 새까맣던 열여덟 서연에게 온 아이처럼

📌[나, 어린엄마] ②잭나이프 들던 성아가 엉엉 운다, 갓난쟁이 밥 안 먹어 무섭다고

📌[나, 어린엄마] ③우리 같은 엄마들 많아요, 잘 안 보이는데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플랫은 이 기사의 댓글창을 닫기로 결정했어요. 지금 한국 사회가 청소년 한부모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업자득'으로부터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거든요. 그러게 왜 몸을 헤프게 굴려서, 그러게 왜 저런 이상한 남자를 만나서, 그러게 왜 집을 나와서…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들은 끊임없이 애정과 안정의 대상을 갈구했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도 습득하지 못했으며,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사회의 선택지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린 엄마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댓글창 이곳저곳을 떠돕니다. 애초에 주어진 선택지 자체가 많지 않았으니, 좋은 선택을 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쉽게 무시되어 버립니다.

자신도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주기 위해 애쓰는 어린 엄마들에게 '누가 칼로 협박했냐'라는 말은 무책임하고 가혹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