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에서 충남 금산으로 보냅니다 (vol. 12)

다시 부치는 편지

이 편지는 새로 쓰는 편지입니다. 11월 29일에 보낸 저의 편지가 너무나 경솔하고 오만해 도저히 다시 쓰지 않고는 안되겠다 싶었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프리랜서 선배"라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고충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로 가득 찼거든요. 그래서 아시다시피 나름의 해결책(이라 쓰고 흑역사라고 읽는)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보냈었지요. 그런데 보내고 나니 어쩐지 계속 찝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편지 속에 적은 방법으로 해결되었다기엔 지금도 전 여전히 일과 휴식 속에서 갈등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노트북을 켜고 솔직하게 편지를 써 내려갑니다. 귀찮이 처음 만들어졌던 2015년부터 무수한 마감을 해왔어도, 여전히 일 앞에서 이렇게 휘둘리고 방황하는 사람이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싶어서요. 혹 못 믿으실까 저 역시 구린 면모를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봅니다.

 

우선 메일로 문의가 옵니다. 홍보 만화, 강연, 일러스트 외주, 연재 등 종류는 다양하지만 과정은 비슷합니다. 견적과 대략적인 일정을 조율하고 나면 일이 확정되죠. 그럼 전 다이어리를 펼쳐 일정을 적습니다. 이를 테면 강연 자료 마감, 콘티 마감, 스케치 마감, 채색 마감, 업로드 일, 강연 당일 같은 것들이죠. 그렇게 제 다이어리 먼슬리 페이지엔 언제나 일이 가장 먼저 적힙니다. 아니 일이 대부분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그 외에 적힌 걸 보니 각종 세금 신고 마감일, 세무사님께 신고 자료 넘길 것, 원고료 입금 확인처럼 그 마저도 일과 관련된 일이거든요. (그 외엔 가족 생일 정도가 있네요) 그렇게 짧으면 다음 달, 길면 그 다음 달까지 적힌 일정들은 저에게 늘 이렇게 말해줍니다.

 

“넌 이 날은 아무것도 못해”

“그나마 이 날이 네가 마음껏 쉴 수 있는 날임”

“이 날 놀고 싶으면 반드시 이 날까지 끝내야 함”

그렇게 저의 모든 시간은 “일”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특히 그게 강연일 경우는 그 강도가 더 심해져요. 오늘이 12월 3일이고, 만약 12월 15일 즈음 강연이 하나 잡혔다고 하면 12월 15일만을 기다리면서 매일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낼 것 입니다. “강연이 2주도 안남았네” “일주일 남았네? 이제 진짜 시작하자” “3일 뒤면 강연인데 하나도 준비가 안됐잖아” 하고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실제로 책상에 앉아 진짜 강연을 준비하는 시간은 보통 강연 이틀 전일 때가 많았단 겁니다. 그럼에도 강연 열흘 전부터 스스로를 옥죄며 쉴 틈을 틀어 막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다는 거죠. 그렇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강연 이틀 전을 맞이하면 성격은 더 괴팍해지고 예민해져 가족들에게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덕유산이나 전주에 놀러 갔다와”라는 말 속에 얼마나 큰 압박과 초조함이 있는 지 잘 알고 있어요. 그 말이 얼마나 정제된 표현인지도요. '마감에 휩싸인 사람에게서 그토록 선한 워딩이 나오다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마감 중인 저에겐 그런 사려 깊은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한 예로 동생이 마감 하고 있는 제게 “언니, 옷 개어 놨어 이따가 언니 옷장에 넣어” 라고, 친절히 옷까지 개어 제 옷장 앞에 딱 갖다 놔도 마감에 쫓기고 있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 일하고 있는데 그걸 꼭 지금 말해야 돼?"

"마감하고 이야기 해도 되잖아!"

"아, 네가 그거 지금 말해서 방금 쓰려던 거 다 까먹었어"

 

마루가 놀아 달라고 슬픔이와 사랑이(마루가 좋아하는 라텍스 공 이름이에요)를 하나씩 갖다 놓고 책상에 앉아 있는 제 다리를 박박 긁으며 놀자고 하면 곤두섰던 신경이 잠시 풀어지지긴 하지만, 그것도 정말 잠깐 입니다. 라텍스 공 두어번 던져 주고는 다시 책상에 앉아 신나게 공을 물고 온 마루에게 말합니다.

 

“마루야 오늘은 안돼”

“누나 일해야 되잖아”

 

잠깐 신났다가 급격하게 풀이 죽은 마루는 우울한 표정을 하고 제 옆에 동그랗게 말고 억지로 잠을 청하죠.(마침 지금도 이러고 있네요) 매번 이렇게 미친 것처럼 마감 할 때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지만 달리 해결할 의지도 없었던 이유는, 자칫 평가절하 당하기 쉬운 제 삶을 일이 정말 든든하게 방어해주기 때문입니다. 서른이 한참 넘어, 회사도 안다니고, 시골에 살면서 결혼도 안한 애가 바쁘지도 않으면 세상은 그 작은 틈새를 비집고 집요하게 물어오거든요. "결혼 안 해?" "돈은 벌고 있는 거야?" 일을 하는 수 많은 이유 중엔 그런 시선을 보내는 세상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려는 못된 마음도 있습니다. "자, 나 이만큼 벌어 먹고 살아" "그러니까 나한테 아무 소리 하지마!" 하지만 아무리 잘 번다한들, 프리랜서의 소득이 직장인만큼 안정적일리가 없잖아요. 잘 벌어서 요즘 같은 겨울철 시골 보일러 등유값 80만원 정도는 기분 좋게 턱턱 내는 때가 있는가 하면(저희 집업실 기름통 용량은 3드럼(600L)이고, 오늘자 등유 시세는 1350원입니다..) 등유값 감당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땐 앞서 말했던 그야말로 나이 서른이 한참 넘어, 회사도 안다니고, 시골에 살면서 결혼도 안한 애가 바쁘지도 않은, 쓸모 없는 애가 된 기분이죠. 그럼 뭘해도 자격 없는 인간이 된 느낌입니다. 친구들이랑 놀 자격도, 어디 놀러갈 자격도 없는 인간이 되어 자존감은 바닥을, 불안함은 하늘을 찍죠. 이토록 쉽게 불안해지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된 것 같아 무기력해지고요. 결국 일이 없을 땐 일이 없어서, 일이 많을 땐 일이 많아서 힘든 일상밖에 남지 않죠.

 

세상에 일보다 중요한 가치가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일을 하다니, 누군가 본다면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문제를 쉽게 해결 할 수 없을 듯 해요. 제게 있어 일은 여전히 제 존재와 자아에 큰 의미가 되어주거든요. 일을 함으로써 저의 쓸모와 필요, 제 삶의 가치를 느끼니까요. 단순히 돈이 되는 것을 넘어 내 창작물을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것에 대한 기쁨이 큽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가치를 느끼고 싶지만, 그러기엔 아직 불안함을 너무 자주 느껴요. 그 불안을 일에서 자주 해소하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일은 제 삶에서 너무나 크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이런 모순적인 인간이 나름의 해결책이랍시고 작가님께 이런 저런 말을 써서 보냈으니 며칠 내내 찝찝한 게 당연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작가님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사실 저에게 특별한 해결책을 바라며 쓰신 것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의 처지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외로운 말이었을 텐데 말이죠.

 

혼자 일하며 종종, 제 인생에 하등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을 동료들과 사뭇 진지하게 하고 있었던 직장인이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엔 이렇게 열심히 해도 남는 게 없다며 힘들어했는데, 지금 떠올리니 그래도 그 처지를 함께 공감해 줄 동료들이 있어 좋았구나 싶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앞에 서 있는 문제를 같이 해결하긴 커녕, 이야기 나눌 사람조차 없잖아요. 그래서 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든든한 언니가 있어서 힘들 때마다 찾아가 나 힘들다고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하면 진지하게 듣고 끄덕이며 들어줄 언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엉엉 울면 토닥이면서 그럴 땐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해줄 언니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런데 참 슬프게도 현실 그 어디에도 그런 언니는 없더라고요. 제가 지독한 은둔형이라 그럴 확률도 크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으론 프리랜서는 어떻게 해도 혼자라는 것이 나름의 결론이었습니다. 나의 문제를 나 외엔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주변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면, 그건 그 자체로 힘이 되더라고요.   

 

태어나 처음으로 북토크라는 걸 하게 되었을 때 였습니다. 북토크를 앞두고 며칠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북토크를 어떻게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는데 북토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북토크를 어떻게 하는 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네이버에 "북토크 하는 법"이라고 검색해 본 기억이 날 정도 입니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답해주는 네이버 지식인에도, 북토크 하는 법에 대한 답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다하다 안돼서 제 주변에 작가지만 불쑥 전화할 정도로 친하진 않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수라는 친구에게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어요. 북토크는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지요. 마침 그 친구는 경주의 작은 서점에서 북토크를 마치고 돌아오는 KTX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후, 어쩐지 힘이 났어요. 제 주변에 나만큼이나 북토크를 어려워하는, 나와 같이 외로운 창작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좀 더 씩씩해 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작가님, 지금은 오후 3시 44분인데요. 아침 8시부터 씻지도 않은 채 잠옷 바람으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여기 또 하나 있습니다. 미련하게도 앞서 쓴 글이 형편없어 새로 쓰고 있지요. 집안 꼴은 엉망이고요. 중간중간 글이 안 써져서 오늘도 가족들에게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고, 마루 산책도 동생한테 맡긴 채 이 글을 쓰고 있어요. 그런 제가 어떤 멋진 해결책을 갖고 편지를 썼 대도, 그건 작가님의 일을 해결 할 수 있는 답이 아닐 것 같아요.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 요즘 하고 계신 중요한 일들 마무리하고 나면 우리 같이 석화에 소주 한잔 하러 가요. 제겐 지난 편지에 가득 담은 오만함과 경솔함을 만회할 시간이 꼭 필요하거든요. 삼동초와 완두콩 씨앗 물물 교환도 해야 하고, 지난 번에 못 먹은 케이크도 먹어야 하고요! 실용성이라고는 1도 없겠지만 앞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토로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습니다. 아, 재촉은 아닙니다. 우리는 불안함과 외로움이 몰려올 때 만나면 더 좋을 사람들이니 물 들어올 때 힘껏 노 저으시고, 천천히 날짜를 잡아도 좋아요. 그때는 작가님의 목욕재계 프로젝트의 후일담도 들려주세요. 기왕지사 실패담이라면 더 반가울 것 같아요(?)

 

이렇게 쓰고 나니 후련하네요. 오만으로 가득했던 저의 민낯을 솔직하게 보이고 나니 이제야 저도 청소를 하고 씻을 마음이 생깁니다. 지금은 오후 6시 9분인데 이제서야 저도 하루를 시작하겠네요. 영하권의 날씨지만 어제 거금을 들여 등유를 가득 채웠기 때문에 마음만은 풍요롭습니다. 밤 사이 마당의 수돗가가 얼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아직 나가보지 못해서 얼른 나가봐야 겠어요. 어느덧 한 겨울이네요. 수풀집도 동파없이 올 겨울 잘 보내길 바라며 편지 부칩니다.

 

2023년 12월 3일

송년회를 기다리며 귀찮 드림

P.S. 앞서 보낸 저의 편지는 독자님이 궁금하시더라도 책에 담지 않았으면 합니다. 흑역사는 나중에 이 서간문이 나오고, 혹 북토크를 하게 된다면 그때 요긴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북토크는 이런 걸 소재로 하는 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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