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번째 편지 : 모험, 여행길, 막찍기와 따뜻한 콩국

2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어 길을 걸을 때 바람과 함께 아득한 꽃향기가 코를 간지럽히기 시작했어요. 봄은 풀과 꽃이 자라나고, 또 모험을 시작하기에도 너무도 좋은 계절입니다. 차근차근 양조를 공부하고, 창업을 준비하던 저는 얼마 전, 넥스트로컬이라는 창업지원 사업에 최종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뛸 듯이 기쁜 소식이었지만, 이제 정말 고된 모험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어요. 순수한 열정과 사랑으로 시작한 이 일 앞에 수많은 허들이 있겠지만 즐기면서 하나씩 뛰어넘어 보려 해요. 

이번에 추천할 곡은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모험을 담은 영화 '문라이즈 킹덤' 을 빛내준 Alexandre Desplat의 사운드트랙, The Heroic Weather-Conditions of the Universe 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안개 낀 숲속을 헤치며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청량하면서도 미스테리한 이 음악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종종 듣곤 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 시작하는 일이 있으시다면 답장으로 고민을 나눠주세요.
🎧  Moonrise Kingdom Soundtrack - The Heroic Weather-Conditions Of The Universe Parts 1-7

구독자님, 구독자님께서도 기나긴 여정의 시작은 즐거웠으나 그 과정은 꽤나 고됐던 경험, 있으신가요? 예컨대 기쁜 마음으로 입학한 대학교에서 졸업학점을 채우는 지난한 과정이라던가... 또는 저렴한 가격에 구한 동남아행 티켓으로 신나게 비행기를 탔는데, 꽉 끼는 좌석 탓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다리가 저릿저릿한 거죠. 저는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낙관주의자도 아니라서, 새로운 모험을 떠나야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온전하게 즐기지 못하고 일단 눈앞에 펼쳐질 고비를 상상해보는 편이에요. 



이러한 습관은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형성되었는데요, 여행길에 화장실이 급해서 차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상황들이 꽤나 자주 있었거든요. 몸을 배배 꼬게 만드는 요의를 참으며 간신히 도착한 휴게소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건 화장실 뿐만이 아니었어요. 

알감자 옆에 떡볶이, 그 옆에 호두과자, 그 옆에 델리만쥬, 그 옆에 소떡소떡을 팔고 있는 마음 푸근해지는 광경!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앞자리에서 운전하던 엄마가 “휴게소 화장실 들를까?” 하고 물어보면, 가끔은 화장실이 급하지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거리던 저는 어쩌면 태생부터 먹짱이었나 봐요. 



요새는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을 때, 기왕이면 걱정보다는 기대를 충분히 하는 편이 더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속도로가 꽉 막혀서 지쳐있던 엄마에게도, 화장실이 급해 괴로웠던 어린 동구리에게도 입안 가득 행복을 주었던 휴게소 음식이 있었듯, 삶의 여정 틈틈이 우리를 분명하게 기다리는 사소한 행복들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봐야겠어요. 

구독자님도 멀찍이 보이는 휴게소 표지판에 마음이 두근거리시나요?

모두가 따뜻하다고 좋아하지만,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제겐 괴로운 봄이 지나가고 있네요. 구독자님께서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전 일주일 전 부모님 결혼기념일 여행을 빙자한 가족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경주-울산이라 먹어보고 싶은 곳들을 쭉 정리해서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아쉬웠던 곳들도 꽤 있더라구요. 하지만 그만큼 의외로 맛있었던 곳들도 있었기에, 이번 편지에서는 저희 가족들이 전부 만족했던 몇 곳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경주 초원 암소숯불, '막찍기'
첫 번째는 저희 가족들이 제일 만족했던 초원 암소숯불입니다. 경주 모화 숯불단지에서도 꽤나 외진 곳에 있어서 '여기가 맞나' 싶었을 정도였는데, 막상 들어가니 일하시는 분들도 친절하시고 가게도 널찍하니 깔끔하더라구요! 가격도 좋은 데다 반찬 하나하나, 소고기 가득 들어간 찌개, 후식으로 나온 호박 식혜까지 맛있어서 경주 여행을 가시게 된다면 꼭 추천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경주 초원 암소숯불, '막찍기'
개인적으로 여기서 '막찍기'라는 것을 처음 먹어봤는데, 서울에서는 '육사시미', 대구에서는 '뭉티기'로 불린다고 하더라구요. 채 썬 육회와는 다르게, 두껍게 썰어낸 살코기를 고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 등으로 만든 막장에 찍어먹는 음식이에요. 특유의 고소한 맛과 식감자극적인 막장을 더하니 너무 맛있는 거 있죠? 방문하시게 된다면 신선한 막찍기도 꼭 드셔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카몬시 카페, '딸기 라떼'
두 번째는 여행에 지쳐있던 저희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며 편히 쉴 수 있었던 카몬시카페에요. 제가 먹은 딸기 라떼, 부모님과 동생이 먹은 상하목장 우유 아이스크림- 전부 우리가 아는 그 맛이었지만, 카페들이 모여있는 거리와 떨어져있어 사람도 별로 없고, 힐링하기 좋았어서 소개해드리고 싶었답니다. 빈백, 안마의자 등 쉴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서 더 좋았던 곳이에요.

경주 원조 콩국, '따뜻한 콩국'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음식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경주 원조콩국 '따뜻한 콩국'입니다. 그냥 '콩국'은 익숙할 수 있지만, 검은 깨, 검은 콩, 꿀, 그리고... 찹쌀 도너츠가 들어간 따뜻한 콩국이라니!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가족들 전부 맛이 이상할 거라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의외로 맛있었어서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음식이랍니다.

경주 원조콩국, '생콩 해물파전'
또 굉장히 의외인 게, 이 따뜻한 콩국이 이색적인 조합이라 생긴지 얼마 안 된 가게일 줄 알았는데 65년이 넘은 데다 블루리본도 여러 번 받은 유명한 노포더라구요? 콩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보니 생콩 해물파전순두부찌개도 무난하게 맛있었던 곳입니다. 저녁보다는 아침이나 점심 식사로 방문하시길 추천드리니 참고하세요!

모든 여행이 그렇듯 아쉬움이 조금 남기도 했지만, 모든 추억이 그렇듯 점점 미화되다보니 벌써 이 여행이 그리운 거 있죠? 가끔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우선 나나가 말한 것처럼 앞으로의 일들을 즐기면서 뛰어넘고, 동구리가 말한 것처럼 그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아가보려 합니다. 구독자님께서는 어떤 추억이 남아있고, 어떤 시작을 기대하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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