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2일 (목) 웹에서 보기 | 구독하기
VOL.117 인터뷰: 『하라의 세계가 열리면』 이은용 작가

✍ 이야기
이야기는 믿음을 만듭니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무엇은 어떤 것인가가 결정되곤 합니다. 다만 모두가 매일 이야기를 만들고 있지만 모든 얘기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 이야기는 사람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남의 얘기가 내 얘기로, 내 얘기가 남의 얘기가 되기도 합니다. 얽히고설키는 와중에 오해는 이해보다 흔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 오래된 해결책이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하고 정리하기. 이야기가 오해를 조장하는 세상에서 다시 이해를 구하는 소설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거나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을 마땅한 곳으로 옮깁니다. 닫힌 세계가 열리는 그림, <하라의 세계가 열리면> 이은용 작가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무수한 선택 앞에서 '나의 행복'을 먼저 살펴도 괜찮다

『하라의 세계가 열리면』이은용 작가 인터뷰


"마음이 뭐 꺾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 작가님은 십 대 때 장래희망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지만, 미대에 가는 게 목표였고 장래희망도 그쪽 계통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라랑 비슷했죠. 막연하게나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이십 대 이후였고,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한 건 그보다 훨씬 뒤였어요. 작가가 되어 있는 제 모습은 상상한 적도 없었죠.


▷ 작가님도 하라처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실수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저는 완벽주의자예요. 실수하는 것이 싫어 그만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지만, 그럼에도 실수를 많이 합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늘 변수는 있기 마련이에요. 완벽을 추구할 뿐, 완벽하지는 못한 거죠. 입시장에서 하라가 저지른 실수는 사실 제 경험을 각색한 거예요. 그 실수에 대해서 저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변명을 하는 것 같고, 그 기억을 소환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 때로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그 기억을 작가님은 어떻게 지나왔나요?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큰 실수를 극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 실수가 전부도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어려운 일을 맞닥뜨리는 순간은 분명 올 거예요.
요즘에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말이 있던데요. 마음이 뭐, 꺽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다만 꺽인 채로 하염없이 있으면 안 되고요. 그 마음이 소멸되기 전에 꺽인 마음을 분갈이해서 심어야죠. 아주 사소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반드시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 이 작품을 쓰게 된 시작점은 무엇이었나요?
제 십 대를 가득 채웠던 만큼 그림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한 번쯤 쓰고 싶었어요. 그때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보통 글을 쓸 때 저는 발상과 제목이 동시에 떠오르거나, 첫 문장 또는 이야기의 핵심이 될 만한 문장이 연상되거나, 아니면 이미지나 장면이 그려지면서 시작해요. 이번 이야기는 세 번째에 속합니다.
2019년에 독일 여행을 갔는데, 그때 실제로 열차 사고가 있었어요. 사고를 직접 목격한 건 아니고 구조대가 오고 누군가 들것에 실려가는 장면을 보게 됐죠. 며칠 뒤 그날의 사고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엄마와 아들이 선로에 떨어지면서 어린 아들이 목숨을 잃게 된 일이었어요.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하나의 이미지가 그려졌죠. 그 아이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어떨까. 그 마음과 깊이 품고 있던 소재를 꺼내 같이 엮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 평행세계라는 세계관에 대해 독자들에게 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루에도 여러 번, 우리는 크고 작은 선택을 합니다. 때론 그 선택들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꾸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언제나 어려워요. 더 많은 선택을 하고,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지요. 저는 이것만으로도 평행세계의 무수한 가능성은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선택한 것뿐만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일들도 전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까요. 또 하나는 과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말 하나일까, 하는 거예요. 소설에서 안나도 말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아직 많고 밝혀지지 않은 일도 많으니까요. 그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 더 행복할지 아닐지는 몰라도, 적어도 상상하는 건 즐거운 일이잖아요.


▷ 작품에는 병아리 감별사라는 독특한 직업이 나옵니다. 이 직업을 작품 속에 등장시킨 이유가 있을까요?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은 저에게도 좀 생소했는데요. 역시나 독일 여행을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파독 광부나 간호사에 관한 얘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러 갔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죠. 그들의 얘기를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었어요. 새로운 세계와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를 연관 짓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알'이 상징하는 '세계'의 의미는 문학에서 이미 익숙하지만 특별하기도 하니까요.


▷ 하루하루 온 마음을 다해 살고 있을,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앞으로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와 마주하게 될 거라고,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기준은 '나의 행복'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은용

2008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고, 『열세 번째 아이』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맹준열 외 8인』으로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쓴 책으로 『어느 날 그 애가』, 『내일은 바게트』, 『그 여름의 크리스마스』, 『우리가 만난 시간』 등이 있다.


지난 북뉴스는 지금까지의 연재를 모아 소개하는 콘텐츠로 꾸렸습니다. 지난 북뉴스 피드백 간단히 소개합니다.

*다음 북뉴스에서는 새 연재를 소개합니다. 『단단한 고고학』 김상태 작가님의 새 글입니다. 돌과 뼈와 사람에 관한 새로운 연재. 먼 듯하지만 실은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독자 | 🎱: 담당자

👀 RSD
모아 주신 연재 링크들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에 혼자 찬찬히 읽어보고 싶네요. 레터도 연재도 늘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RSD 독자님? 일주일이 지났네요. 주말 동안 연재글 읽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읽으셨을까, 독자님의 감상 또한 기대되네요. 아직 출간되지 않은 글이니 독자님의 평은 책의 만듦새를 좋게 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다음 피드백 기대하겠습니다 : )

👀 우듬지
출판사의 고민은 결국 책을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알릴 수 있을까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계절출판사는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다 좋은데, 선택과 집중도 잊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어렵다는 건 알지만요!

🎱
반갑습니다, 우듬지님. 저희를 유심히 보시는 독자님이신 게 분명해 보입니다. 관심에 답할 수 있도록 잘 정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렵다는 건 알지만요!
뉴스
🎼 전시 기간: 2024. 2. 14 ~ 3. 25
🎼 미란 작가의 친필 사인본을 판매합니다. (한정 수량)

광화문에무, 요가 워크숍 + 북토크
📘 일시: 2024. 3. 6 수요일 오후 7:30 
📘 장소: 복합문화공간에무 지하1층 팡타개라지
📘 출연: 유지영 비건 안무가, 송은주 번역가

🎈 일시: 2024. 3. 8 ~ 3. 24 (월요일 제외)
🎈 장소: 예술의전당
📚원작 읽기: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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