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4
예술적 하루를 위한 작은 쉼표,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김희경 기자입니다. 

 '7과 3의 예술'에서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뜻하는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예술은 모두 7계음과 3원색으로부터 탄생합니다.
 '7과 3의 예술'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공연이나 전시 등을 살펴보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채워줄 작고 소중한 영감을 전합니다. 

 31회는 따뜻하고 화사한 작품들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한 프랑스 출신의 화가 르누아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서른 한번째 편지>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 오르세미술관 (*그림을 크게 확대해 보실 수 있습니다.)  
 화사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춤도 추네요. 이들의 입가에 옅게 번진 미소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꼭 봐야 할 작품으로 꼽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입니다. 프랑스 출신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대표작이죠. 도시의 자유분방하고 멋진 광경, 이곳에 사는 파리지앵의 여유롭고 활기찬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35세의 자화상, 1876, 매사추세츠포그미술관  
  이 작품을 비롯해 르누아르의 그림 대부분은 아름답고 생기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죠.

 그럼에도 행복이 가득한 그림을 그렸던 것은 르누아르만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림은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건 인생이나 다른 작품에도 충분히 많다"라고 말했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그리고 행복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으려 했던 르누아르의 삶과 작품 세계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피아노 치는 소녀들, 1892, 오르세미술관
 르누아르는 가난한 가정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공부를 하는 것은 물론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일찍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재봉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평소 그림을 즐겨 그리는 걸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으로 평생 밥벌이를 할 것을 권했습니다.
 
 르누아르는 13세에 도자기 장인 밑으로 들어가 도자기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이 이 일을 워낙 좋아했고, 재능도 뛰어나 돈을 꽤 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모든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도자기도 기계에 의해 대량 생산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도자기에 일일이 그림을 그려 넣는 일자리도 사라졌습니다. 

 르누아르도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그만둬야 했죠. 그는 대안으로 부채 등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며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서도 그의 꿈은 자라났습니다. 루브르 미술관 옆 골목에 살던 그는 그곳에 걸린 명작들을 보며 >자세히 보기 

김희경 한국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 겸임교수.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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