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ㅣ  구독  지난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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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기자
이번 주 지식인 ‘픽(pick)’은 안토니 J. 블링컨(Antony J. Blinken) 입니다. 블링컨 장관이 얼마 전 서울을 찾았지요. 블링컨 장관은 14일부터 22일까지 8박9일 간의 해외 일정을 보냈는데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시작으로 서울과 필리핀 마닐라를 거쳐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이집트 카이로,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도는 그야말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일정입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미국 국무부 제공>

여기서 잠깐. 미국 국무장관만의 독특한 사실들이 있어서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미국 이외의 모든 나라는 외교(foreign affairs)장관이라고 하는데 유독 미국만 국무(state)장관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미국과 상관있고, 미국이 일일이 다 컨트롤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요? 물론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이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알게 모르게 관여하고 있지요.


사실 미국도 처음에는 외무부(Department of Foreign Affairs)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국내 업무가 추가되면서 국무부(Department of State)라고 이름을 바꿨습니다. 미국은 연방국가이기 때문에 국무부의 역할이 타국에 대한 외교 뿐만 아니라 연방정부-주정부, 주정부-주정부 간의 업무 조정 및 협약의 권한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내 업무 상당부분이 내무부 재무부 국토안보부 등으로 옮겨가고 현재는 외무업무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만 이름은 여전히 국무부입니다.


또 하나, 세계 대부분 나라의 장관은 ‘minister’라고 하는데 미국의 장관만 유독 ‘secretary’라고 합니다. 이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창기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지배자는 당연히 영국 여왕이었구요. 미국의 지도자는 일종의 Governor(총독)였는데 Governor를 보좌하는 사람은 minister가 아닌 secretary가 맞는 셈이지요.


블링컨 장관은 이번 해외 순방에서 방문국마다 각각 다른 임무가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유엔 마약위원회에 참석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마약 위기에 대응전략을 모색했습니다. 또 비엔나를 찾은 김에 라파엘 그로시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을 만나 핵 안전조치를 논의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세 대통령, 엔리케 마날로 외무장관을 만나 미국-필리핀 동맹에 대한 의지를 표시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필리핀은 중국보다 미국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낫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에서는 각국 지도자들을 만나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확대, 이스라엘 정부와의 평화 유지, 후티 반군에 대한 공동 대응 등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찾아 하마스와의 전쟁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설득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의 지구 한 바퀴 여정의 한 가운데에 대한민국 서울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이 18~20일 주최한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석한 일이었는데요. 블링컨 장관은 이 회의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오늘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남긴 블링컨 장관의 메세지를 돌이켜보려고 합니다.

3민주주의정상회의개막…‘허위정보민주주의 균열 <ⓒVOAKorea/YouTube>
블링컨 장관은 서울에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총 3번의 연설을 했습니다. 개막식 연설과 장관급 회의 발언, 그리고 다자간 원탁회의 연설입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서울에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매경DB>

18일 오전에 열린 개막식에서 블링컨 장관은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을 예로 들며 “민주주의가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과 눈부신 성장의 과실을 인간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냉전 이후 최근 20년간 민주주의는 퇴보를 거듭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많은 곳에서 기본적인 자유권이 침해당했고, 선거권이 공격당했으며, 부패가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다”고 거론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여러 나라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먼저 ‘부패와의 전쟁’을 언급하며 “불가리아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고 검찰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케냐는 공공 조달을 위한 공개 계약 데이터 표준을 채택하고 공공 실소유권 등록부를 만들었다. 캐나다는 전 세계의 자금세탁을 근절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강조하면서 “스위스는 선거를 앞두고 폭력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술적인 전문 지식과 지침을 통해 신흥 민주주의 국가를 지원하고 있다. 보츠와나는 대통령 임기 제한을 옹호하기 위해 아프리카 연합 및 지역 경제 공동체와 같은 지역 기구와 협력하고 있다. 호주는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 국가에 선거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언론에 대한 보호’도 거론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공익 인터넷 미디어를 위한 국제기금을 마련해 12개국 미디어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위해 보조금을 지원했고, 저널리즘 보호 플랫폼을 통해 망명 중인 언론인 등 언론인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인권과 관련해서는 “네팔이 강간사건 공소시효를 늘렸고, 체코는 인권 옹호자들에게 긴급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으며, 바하마는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는 모바일 도구를 출시했다”고 말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민주주의가 우리 모두의 필요에 부응하고 삶과 생계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데 맞서 우리는 신기술이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유지하고 지원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8일 서울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매경DB>

이어 열린 장관급 회담에서 블링컨 장관은 인공 지능과 디지털 도구가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이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해 거듭 강조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AI(인공지능)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미치고 있고, 그 파급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가 AI 혁신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를 원하며, 우리는 AI가 사용되는 규범, 표준, 규칙을 설정하는 데 있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에도 블링컨 장관은 AI를 활용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각국의 노력을 소개했습니다. 케냐에서는 여성과 소녀들이 포괄적이고 정확한 생식 건강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AI 지원 봇을 배포했고, 칠레는 젊은이들이 사회 변화를 촉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기여하도록 장려하는 AI 지원 도구인 ‘Creamos’를 개발했으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반부패 조직과 기술 기업이 AI 지원 시스템을 통해 함께 모여서 문화유산과 민간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정확하게 기록했으며, 전쟁 범죄 기소를 확대했다고 전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AI가 사람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개선하는 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AI는 농업 생산성 향상부터 기아 퇴치, 질병 발생 감지 및 예방,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지구를 보호하는 청정 에너지 전환 가속화에 이르기까지 목표를 향한 진전을 80% 가속화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블링컨 장관은 일부 세력의 AI를 활용한 민주주의 위협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AI와 기타 디지털 기술의 힘을 민주주의 보호에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일부 정부는 동일한 기술을 남용하여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얼굴 인식이나 봇과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여 자국민을 감시하고, 언론인, 인권 옹호자, 정치적 반체제 인사를 괴롭히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훼손하거나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다른 부분과 대립시키는 잘못된 정보와 허위 정보를 퍼뜨린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를 유지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지원을 구축하고 있다. 유엔은 AI에 관한 최초의 독립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특히 미국의 노력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상업용 스파이웨어의 사용이 보안 위험을 초래하거나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경우 미국 정부의 상업용 스파이웨어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인권운동가 보호, 검열방지 기술을 위한 금전적 지원 등을 언급했습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연설하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사진=매경DB>

18일 오후 다자간 원탁회의에서 블링컨 장관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으로 떠오른 가짜뉴스에 대해 연설했습니다. 그는 “정보 공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혼잡하고, 더 복잡하고, 더 혼란스럽고, 더 많은 경쟁을 벌이면서 가짜뉴스가 쉽게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경고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모든 사람이 아침에는 신문, 저녁에는 3~4개 텔레비전 채널에 모든 정보를 의존했는데, 지금은 셀 수 없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있다”며 “여기서 가짜뉴스들이 생겨나고, 혼란을 가중시키고, 양극화를 강화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특히 코로나 시즌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가짜뉴스, 기후위기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거론하면서 “대선이 있는 올해, 선거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더욱 범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우리의 경쟁자와 적들은 가짜뉴스를 이용해 민주주의 내부의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며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가 낳은 불행한 부산물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가짜뉴스가 많아지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견제받기 때문이겠지요.


블링컨 장관이 자신이 언급한 ‘경쟁자’와 ‘적’에 대해 직접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라고 지목했습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선전을 퍼뜨리고 글로벌 정보 환경을 왜곡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쓴 것을 알고 있다”며 “아프리카에서 케이블 TV 플랫폼을 구매한 후 구독 패키지에서 국제 뉴스 채널을 제외하는 행위, 현지 자회사를 이용해 동남아시아의 미디어 회사를 은밀하게 인수한 후 친중 뉴스를 주로 보도하는 행위 등이 만연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어 “유럽 전역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키려는 크렘린의 은밀한 켐페인을 확인했으며, 라틴아메리카 미디어에서 친러시아 컨텐츠를 확산시키는 시도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독립적이고 건강한 언론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가 광고비를 공평하고 투명하게 할당해야 하며, 미디어 규제기관이 미디어에게 특정한 선전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보다 미디어가 독립적으로 공익에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또 미디어 지분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해 정치적인 단체 또는 적들에게 협조하는 외국 단체가 미디어를 인수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블링컨 장관의 메세지는
"인류의 행복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는 최고의 가치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와해하려는 시도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AI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쪽이 아니라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쪽으로 쓰일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또 민주주의의 새로운 적으로 떠오른 가짜뉴스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독립적이고 건전한 언론을 통해 가짜뉴스가 싹틀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블링컨 장관의 이야기는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현실과도 거의 일치합니다. 블링컨 장관의 연설을 흘려들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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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s Pick!

[풀영상] 대한민국 인구 대역전

제34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

제가 픽한 영상은 ‘제34차 국민보고대회: 대한민국 인구 대역전’ 영상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든, 유튜브를 보든 한번쯤은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인데요. 저출산은 국가경제에 큰 위협이 됩니다. 아무래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그 사회의 동력은 서서히 멈출테니까요.

저출산이 한국에게 특히 큰 문제로 다가오는 이유는 두 가지 같습니다.
첫 번째, 한국의 산업구조입니다. 한국은 노동력이 재산인 나라입니다. 다른 자원이 없죠. 뛰어난 인재들을 자원삼아 한국은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그 자원이 줄어들어 거의 소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인구 소멸의 속도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올해 국민보고대회는 한국의 인구 감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네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기자들의 심도 싶은 취재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만들어진 방안들을 많은 분들에게도 보여드리고 싶어 이 영상을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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