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국경선평화학교가 학교 부지를 마련하여 건물을 짓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꿈같이 생각되었다. 꿈은 누구라도 꿀 수 있지, 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땅도 마련했고, 그 땅에는 역사를 담고 있는 흔적도 있기에 이제 국경선평화학교의 내용이 하나씩 차례로 들어설 수 있도록 준비가 다 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는 독립된 자체적인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주춧돌이 놓아질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면 이미 10년 전에 국경선평화학교가 세워진 일부터가 기적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기적이다. 초기에 국경선평화학교가 세워지게 된 이야기를 정지석 목사님으로부터 직접 들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이리라.
얼마 전, 남편이 국경선평화학교의 여러 건물 중에서 '평화기도의 집'을 돌아가신 아버지 성함으로 우리 형제들이 지으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남편은 국경선평화학교의 이사이면서 건축위원이다. 건축에 대해 많이 생각하다가, 평생 기독교 신앙인으로 사시면서 평화를 추구하던 아버지가 생각났으리라. 국경선평화학교를 돕고도 싶고, 아버지를 기리고 싶어서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의 아버지 원경선 선생은 풀무원 농장의 원장으로, 유기농업을 우리나라에 처음 받아들이고 시작한 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몇 년 전에 농림부가 건국 70년을 맞아 70년간 우리나라 농업 발전에 큰 영향을 준 13인을 선정했는데, 거기에 나의 아버지도 계시다. 그러나 아버지는 평생을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인으로 사신 분이다. 6.25 후에 서울에서 시작한 큰 사업을 다 접고 부천에 내려와 정직하게 당신 손으로 일해서 먹고살겠다고 농업을 선택한 것도, 환갑이 지난 연세에 유기농업을 접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하신 것도 다 신앙 양심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한 것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40년 넘게 거창고등학교의 이사장이셨던 아버지는 또한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신다. 평화를 세우는 일꾼을 기르는 국경선평화학교를 아버지께서 생전에 아셨다면 누구보다도 기뻐하셨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계시던 괴산 평화원은 안양에 있는 가향공동체가 새로운 농사 터전으로 삼았다. 올 초에 가향공동체가 마지막으로 구입 비용을 보내주었다. 그때 남편은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계시던 평화원에서 나온 것이니까 국경선평화학교 평화기도의 집을 짓는 데 쓰는 것이 가장 유익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자녀인 나의 형제들이 좋은 생각이라고 하며 힘을 모아주었다. 모든 일이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다.
평화나무농장 김준권, 원혜덕(글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