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나온 신간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에 이런 말이 나와요. “행위만이 생산적이다.”

책도 냈겠다 일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싶지만 마티 편집자들은 서둘러 각자의 생산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41* 각주에서는 편집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전해 드려요. 5, 6, 7월을 채워줄 책들의 예고편이기도🙌 

사람이 떠나도 고양이는 그곳에 남아서: 단단의 『사람의 일, 동물의 일』(가제) 

🧼 퐁퐁


길고양이에서 동네고양이로

한국에서 고양이가 그저 고양이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을까요? 오랫동안 고양이는 요물이었고 도둑고양이었습니다. 인간 중심으로 조성된 도시에선 고양이가 안정적으로 깨끗한 먹이와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고양이가 사람 음식 좀 먹는다고 도둑이라 부르는 건 부당한 일이죠. 도둑고양이를 ‘길고양이’라고 부르자는 움직임은 2010년대 초반부터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낮잡아 부르는 대신, 길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이름 붙이기로 한 것이죠. 일상에서, 인터넷에서, 민간기업 사전에서는 진작부터 길고양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사용되었지만 표준대국어사전에 등재되는 건 요원한 일처럼 느껴졌어요. 그럼에도 꾸준히 목소리를 낸 활동가들 덕분에 2021년 8월부터 표준대국어사전에서 ‘길고양이’를 검색하면 그 뜻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인데, 사실 몇 년 전부터 또 다른 움직임이 일고 있어요. 우리가 바깥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를 ‘동네고양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이에요. 고양이는 이주하는 동물이 아니라 정주하는 동물. 길에서 살고 길 따라 떠돌아다니지 않고, 태어난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아갑니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 한 동네에 사는 동네고양이인 거죠.


고양이들의 아파트

‘동네고양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어요. 지난주에 개봉한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들의 아파트」입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고양이 그리고 서울의 동쪽 끝에 자리 잡았던 대규모 단지 둔촌주공아파트입니다. 2017년 재건축을 앞두고 아파트 주민들은 하나둘 이사를 떠나요. 한때 약 2만 명 안팎의 사람들이 살았던 대단지가 텅텅 비어가는데, 아랑곳 않고 하루하루를 분주하고 또 나긋하게 보내는 존재가 있으니 약 250마리 고양이들입니다. 사람이야 이사를 간다지만 고양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민과 활동가 들은 ‘둔촌주공아파트 동네고양이의 행복한 이주를 준비하는 모임’ 일명 ‘둔촌냥이’ 모임을 만들어 고양이 이주 준비를 시작합니다. 고양이에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어볼 수 없으니 사람들은 그저 고양이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요. 카메라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비추고, 사람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투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주로는 고양이들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춥니다. 보드라운 털, 오동통 살이 오른 모습, 여유로운 발걸음을 보면 이 동네 고양이들이 제법 안정적인 환경에서 지내왔다는 걸 단박에 알게 됩니다. 고양이들은 매일매일 부지런히 아파트 곳곳을 누벼요. 풑밭에 누워 햇볕을 쬐며 낮잠을 즐기고, 등이 근질거리면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부비고, 새소리가 나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커다란 나무에 올라가 구경하고, 사람들이 곳곳에 설치한 밥자리에서 배를 두둑이 채우고, 주차장 한복판에서 그루밍을 하고, 밤이 되면 아파트 지하실로 내려가 잠을 청해요. ‘안방 드나들 듯’ 건물 안을 드나드는 게 아니라, 둔촌주공아파트는 고양이들에게 정말로 제 집 안방이고 마당이고 화장실이고 침실이었어요. 이곳이 집이고 동네인 거예요.


동네고양이 3대 관찰기

둔촌냥이 활동가들은 고양이들을 돌보고 입양 보내고 이주시키며 수시로 무시로 고민해요.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 계속 살고 싶냐고.” 이 한마디에 마음이 아주 묵직하게 내려앉은 건 제 앞에 놓인 원고 때문일 겁니다. 서울의 한 오래된 동네에서 30년 넘게 살던 저자는 어느 날 창밖 공터를 내다보다 고양이 가족과 마주쳐요. 무심코 “야옹아” 부르며 먹이를 던져주었는데, 엄마고양이는 주변에 산 있고, 물 있고, 건물 폐허지만 숨을 곳 있고, 밥도 절로 나오는 동네라 생각했는지 그만 그 공터에 자리를 잡아버립니다. 그렇게 저자는 고양이 가족의 삶을 지켜보고 관찰하게 돼요. 그저 밥과 물만 주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생각보다 꽤 복잡다단한 일이었어요. 하루라도 안 보이면 밥은 먹고 돌아다니는지, 어디서 괴롭힘 당하고 있진 않은지, 길을 잃진 않았는지, 염려하는 마음이 점차로 커지는 일도 감당해야 하는데, 고양이를 싫어하다 못해 해코지를 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또 얼마나 버거운지요. 하지만 그중 제일로 어려운 일은 고양이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고양이들은 무얼 원할까요? 무얼 좋아하고 또 싫어할까요? 저렇게 우는 건 도와달라는 소리인지,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소리인지 알 수 없어요. 가끔은 사람의 마음만 지나치게 앞서서 기어이 고양이의 일에 개입했다가 후회하고 자책하고 반성하는 일도 부지기수. 저자는 고양이들의 일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사람의 일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찾아가며 고양이는 단순히 밥을 주며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사람의 일, 동물의 일』(가제)은 저자가 고양이 3대 가족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관찰하며 기록한 책이자,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책이에요. 3대라고 하면 꽤 긴 시간 같지만 동네고양이 평균 수명은 약 3년. 그들이 대대손손 살아가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자는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엇이냐고요. 고양이들을 향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를 향해 자꾸만 질문을 던지는 책이에요. 부지런히 편집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여름이 오기 전에 소식 전할게요!


고양이들의 안방, 둔촌주공아파트 생애사

「고양이들의 아파트」 또 다른 주인공은 지금은 철거된 둔촌주공아파트. 고양이의 움직임을 따라 단지 곳곳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요즘 아파트 단지에선 보기 어려운 저층형, 고층형, 타워형, 복도형 건물과 단지 내에서 오랜 시간 자란 나무들이 이룬 숲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고양이와 아파트의 공통점이 있다면 여러 얼굴을 지닌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점일 겁니다. 우리는 그 여러 면면들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지금 한국에서 아파트만큼 정치·경제·사회 온갖 영역의 들끓는 욕망이 뒤얽힌 단어는 없을 거예요. 오래된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일을 결사반대하거나 대환영하거나. 그 양극단 사이에서 한 번도 아파트 그 자체를 제대로 바라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둔촌주공아파트’를 검색하면 시세, 분양 정보, 매물, 투자 가치,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같은 단어만 보이거든요. 궁금하지 않나요. 1970~1980년대에 무슨 일이 있었고, 둔촌주공아파트는 어쩌다 그런 이름을 달고 서울의 동쪽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오랜 시간 한 자리에 굳건히 서서 무얼 지켜봤을까요. 영화에도 등장하는 둔촌냥이 활동가 이인규가 둔촌주공아파트 단지가 생겨나고 없어질 때까지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 겨울이 오기 전에 나올 거예요.

악서의 졸가리를 엮다: 장정일의 『신(新)악서총람』

👂 팔랑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책들의 고리 찾기
장정일의 원고를 작업 중입니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 서평가 가운데 무엇을 앞에 놓아야 할지 몰라 그저 장정일이라고 씁니다. 형성되어 불리는 직업들보다는, 징그럽게-단호하게-산만하게-치밀하게-질기게-질리게 읽는 자, 라는 표식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들고 있는 원고 역시 독서일기이자 독후감이자 서평입니다. 다 같은 말이기도 하고 꼭지마다 조금씩 다른 출발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마티에서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8권(2010), 9권(2011), 10권(2014)을 출간했었습니다. 1993년 첫 독서일기 발간 이후로 글의 얼개가 제법 달라져 마티에서 낸 8권부터는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라는 제목을 앞에 달고,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부제를 달아 시리즈 안에 두었더랬죠. 
지난 몇 년간 한국에 무슨 무슨 책이 나왔나, 어떤 굵직한 사건들이 휩쓸고 지났나, 세간의 반응이 어떠했나를 신뢰할 만한 정치적 견해를 장전하고, 일관성을 유지한 채, 어느 정도의 지적 기반에 대해 서로 동의한 사람이 정리한 내용으로 읽고 싶다면, 장정일의 서평집이 매우 적절합니다.

J의 스타일
어떤 분야 책이든 간에 모든 졸가리(장정일이 수시로 사용하는 단어)에서 세상사 시끌거리는 와중에 좋거나 싫거나 옳거나 나쁜 것이, 꽤 겹치기도 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옳거나 그르거나가 분명코 어느 정도 있고 그걸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장정일 식의 판단이 있어요.

지금 작업 중인 책은 2015년 책세상에서 출간되었던 『악서총람』 이후의 얘기입니다. 제목은 『신(新)악서총람』. 그가 읽고 쓴 독후감 가운데 악서(樂書)만을 가려 뽑은 것입니다. 바삐 정리 중인데 꼭지로는 80여 꼭지, 다루는 책으로는 120여 종이 될 성싶습니다.

樂書, 라고 썼지만 사실 여러 악(岳, 握, 惡, 堊, 渥, 愕, 齷, 鍔)들로 바꾸어도 그럭저럭 틀린 말들은 아닙니다. 거대한 책들[岳, 큰산 악] 안으로 파고 들어가 맥락을 손으로 움켜쥐고[握, 쥘 악] 문자 안에 숨은 추함을 간질여 드러내고[惡, 악할 악] 자신이 평생 개어 놓은 색으로 회칠하고[堊, 흰흙 악] 놀래키듯 직언하고[愕, 놀랄 악] 악착같이[齷, 악착할 악] 칼을 들이대는데 간혹 칼등이기도 합니다[鍔, 칼날 악].

樂書, 라고 썼지만 예의 그렇듯 스트라빈스키에서 황금심, 카뮈에서 하루키, 록에서 힙합, 국악까지 종횡무진하고요, 음악과 음악가, 음악의 세계에 모든 글이 다리를 걸치고 있지만 딱히 음악 애호가를 위한 글도 아닙니다.
인상적인 지점은, 아무리 책을 사랑하고 책을 많이 사는 애서가. 장서가라 할지라도(거주하시는 지역에서 5%[알라딘, 교보, 예스 등 주요 서점들의] 이내의 탑오브탑 구매자라 할지라도) 장담컨대 언급된 책들 가운데 아는 책이 손가락 수를 절대 넘지 못할 겁니다. 장정일은 어쩌다 이 책을 알게 되었을까, 어떻게 이 책과 저 책을 연결하지, 싶은 호기심이 끝까지 페이지를 내리는 힘이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카스트라토’의 역사를 훑다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거의 하나도 유명하지 않은 소설 『사라진』을 언급하다가 롤랑 바르트가 기호학 비평의 새 지평을 연 『s/z』로 이어갑니다.
음악과 애증, 음악과 종교, 음악과 혁명, 음악과 이데올로기, 음악과 정치, 음악과 계급, 음악과 산업을 이야기하다보면, 사실상 세상 얘기는 다 나오는 셈입니다.

장정일은 다른 책 안에서 “지식은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는 문장을 퍼오고, “과학과 기술에는 혹 진보가 있을지 몰라도, 인류 안에는 결코 진보가 없다는 사실”을 끄집어내지만 짧은 독후감은 거기서 그치고 말 뿐 읽기는 다음 읽기로 무지렁하게 넘어갑니다. 
재미있냐고요? 하! 당연합니다. 따로 목적을 설정하지 않은 읽기가 얼마나 재미진지는 잘 아시리라 사료됩니다.

혹자는, 한없이 읽기만 하는 시간의 효용을 따져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효용과 쓸모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에게 책은 사는 것(lives)이기에, 몰각과 자각 양극단의 쾌락은 진자의추처럼 쾌락의 연쇄반응을 불러올 따름입니다.
요새 같은 때, 이런 방식의 몰각과 자각의 극단적 쾌락을 좇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어요.

* 5월 출간이 목표입니다. * 장정일 선생님에게는, 그의 견고하고 고집스런 이력과 저력을 존경하여, 글속에서 특별히 존칭의 뜻을 따로 꼬리붙이지 않았습니다.
❝ 전공은 사회학, 편집 중인 책은 건축학 ❞
🌱죽순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 본문을 파서 제 유골함으로 만들 거라고 악에 받쳐 있었던 2016년 이래로, 전공한 사회학과 무관하게 마티에서 만든 건축 책은 현대 건축』을 비롯해 건축의 고전적 언어』, 건축이 바꾼다』, 전후 일본 건축』, 한국주택 유전자』가 있고, 지금 건축이 바꾼다』 저자 박인석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님의 20년 강의의 산실인 서양 건축 생산사』(가제)를 작업 중입니다.

이쯤 되면 건축학과 대학원에 입학해도 생초짜 티는 안 날 것 같은데(근거 없는 소리입니다), 기원전 2000년 이집트 신전 건축부터 1970년대 해체주의 건축까지 관통하는 건축 역사서를 편집하는 건 좀 (많이) 벅찹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정신줄을 붙잡는 사이사이, 주말을 반납하고 교정지를 보는 사이사이를 저는 막간 공부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야 편집이 재밌거든요(네?). 관례적인 표기법이나 건축 용어, 건축계 문법, 역사서 서술의 방식을 익히려고 보는 것도 있습니다. 틈틈이 유용하게 본 세 권을 소개해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사회학 전공입니다. 

데이비드 맥컬레이, 『고딕성당
엄청난 높이의 고딕 성당을 크레인 없이 어떻게 세웠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인장력이니 횡압이니 이해하려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저는 그림책을 보기로 했습니다. 속이 시원했습니다.

피터 머레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
통사를 다루는 책은 큰 줄기를 이어가기 위해 분기점이 될 만한 주요 사건과 인물, 건축물만 세세히 다루고 나머지는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습니다. 더 깊게 쓰고 싶어도 덜어내야 하죠. 그러니 좀 더 알고 싶으면 각론으로 파고 들어야 합니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건축의 기술과 미를 정점에 올려놓은 작업들이 궁금해서 읽...다 말았습니다. 교정지는 매일 8시간+ 보지만, 책은 1시간도 채 못 보는 자의 한계입니다. 
케네스 프램튼, 『현대 건축
제 미래의 유골함은, 19세기 후반이 시작되는 서양 건축 생산사』 3권에 접어들면서 매우 유용한 참고서가 되고 있어요. 어린 시절 '전과'를 끼고 공부하는 척했던 기억이 나네요. 현대 건축』과 서양 건축 생산사』 두 책의 외래어표기법이 어긋나지 않게 맞출 겸, 중요한 건축가들이 내세운 개념어도 되도록 공통되게 쓰면 좋겠어서 자꾸 들추다 보니 교정 속도가 떨어지는 중입니다. 허나 공부하며 일하겠다는 사람 뭐라 하는 이 없는 마티. 조심하세요, 사장님. 이러다 망해요👻 (현대건축』은 내년에 개정증보판을 내려고 계획 중이기도!)
❝ 세 번째 칸타타 청음회 후기 ❞
BWV 54 “죄악과 싸워라”는 알토를 위한 칸타타입니다. 
이번 청음회에서는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바흐는 성령(holy ghost)에 알토 성부를 할당했다고 합니다. 바흐 시절에는 미성의 소년이 불렀을 거라고 추정한다고 하네요. 이 곡으로 구글링을 하시면 놀랍게도 1962년에 글렌 굴드가 이 곡을 설명하고,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영상이 있습니다(위). 여기서도 역시 카운터테너가(러셀 오벌린)노래합니다. 알토 성부가 솔로로 부르는 1악장 아리아 가사는 “죄악과 싸워라, 그러지 않으면 그 독이 너를 집어삼키리라, 사탄에게 눈멀지 마라. 하나님의 명성을 더럽히는 자들은 죽음에 이르는 저주를 당하리니”입니다. 무시무시한 가사와 정반대로 선율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21세기의 글렌 굴드라 불리는 비킹구르 올라프슨은 이 아리아를 직접 편곡해서 녹음했습니다(아래). 굴드의 피아노만 따로 떼어서 듣고 싶었던 이들을 위한 60년 만의 녹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청음회에서 이 곡을 자린고비의 굴비 버전으로(엘피를 두고 스트리밍으로) 함께 들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이 한결같이 세 곡의 칸타타보다 이 곡을 더 좋아하셨어요. 선곡을 아주 잘 했구나 싶어 흐뭇했습니다(역시 칸타타는 인기가 없는 것인가).
이번 주 마티의 각주*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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