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로 향하는 여정에서 얻은 네 가지 교훈 ✈️

에디터 일상

비행 지옥에 대처하는 자세

글 / 사진 주원 테일러


꿈의 휴가지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의 고생을 감내할 수 있을까? 

지난 24시간 동안 나에게 이 질문을 묻고 또 물었다. 방금 겪은 ‘비행지옥’에서 얻은 따끈따끈한 교훈을 공유하는 이유는 휴가를 앞둔 당신에게 혹여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다.


L이 올해 다섯 번째로 ‘번아웃’을 외쳤을 때 우리가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팬데믹과 출산으로 집순이 집돌이의 관성에 박혀 지낸 지 어느덧 2년이었다. 하와이는 L의 번아웃의 치료제로 제격이었다. 피냐 콜라다와 로코모코, 야자수와 부드러운 모래사장, 차가운 바닷물과 알로하, 캘리포니아인들의 제주도 하와이. L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우리는 이틀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빅아일랜드로 향하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Lession 1: 왠~만하면 수하물을 부치지 말고 여행해라. 


잠시 여행으로부터 휴식기를 가지긴 했지만 우리는 프로 여행가다. 2년의 장거리 연애 동안 차곡차곡 마일리지도 잘 모았고, 샌프란시스코로 함께 이주한 이래로 매년 두 차례 해외여행을 했다. 나는 여행업계에서 3년간 리서처로 일했고, L은 뉴욕에 살 적에 유럽을 동네 마실 가듯 다녔다. 그런 우리의 첫 번째 룰은 수하물 없이 여행하는 거다. 실속 있게 디자인된 캐리온 가방과 앞 좌석 아래에 들어갈 수 있는 백팩 만으로 겨울 2주 여행이나 40일 유럽 배낭여행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는 우리의 룰을 어겼다. 아이와 하는 첫 비행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챙겨야 할 물건도 많을 뿐 아니라 카시트와 유모차를 들고 가는 상황에서 캐리온까지 끌면서 비행기에 오르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급작스러운 항공편 변경이나 경유 상황에서 짐칸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수하물은 종종 여행객의 발목을 잡는다. 수하물 위탁은 공항에 도달해야 할 시간에도 크게 영향을 준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으려는 차에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당신의 비행이 3시간 연기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짐을 빼고 집으로 돌아가 3시간을 기다리는 대신 원래 시간에 맞춰 공항에 가기로 결정한 것도 그래서였다. 출발 시간이 연기되어도 수화물 위탁 마감 시간은 연기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함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운지 클럽에 일찌감치 들어가서 공짜 간식도 먹고 쉬면서 기다리지 뭐.’ 우리는 참 순진했다. 

비행지옥의 서막

Lesson 2: 출발 수속 후 결항 시 게이트 근처 안내 데스크의 도움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고 

곧바로 수하물 수취구역 혹은 출발층의 체크인 카운터로 가라.


라운지에 앉아 디저트를 먹고 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운영상의 문제로 당신의 비행이 취소되었습니다.’ 지연에 이은 결항.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여행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비행기 상태가 안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안전이 최고지.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클럽 내부의 안내 데스크 앞으로 향했다. 줄은 빠르게 길어지고 있었다. 인생 첫 비행을 앞두고 잔뜩 흥분 중인 아기의 미소와 옹알거림이 혹여나 좋은 대체 항공편을 받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J를 한쪽 팔에 끼운 채로 줄을 섰다. 일종의 미인계였다. ‘죄송합니다. 대체 항공편을 찾아드릴 수가 없네요, 모두 만석이라서요’ 이 한마디의 대답을 듣기 위해 1시간 가까이 줄을 서고 또다시 30분 동안 컴퓨터 자판을 조용히 두드려대는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짐을 찾기 위해 수하물 수취 구역으로 내려가서야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 어떤 수하물 수취대도 우리의 결항된 항공편의 수하물을 쏟아내지 않고 있었다. 저 멀리 수하물 수취 관련 안내 데스크 앞에는 놀이공원의 인기 놀이기구 앞의 줄을 연상케 할 정도로 길고 두꺼운 줄이 있었다. 


현실을 믿을 수 없어 줄에 합류하는 대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사람들이 안내데스크에서 직원들과 어떤 대화를 하는지도 엿들었다. “마우이로 가는 것도 괜찮죠! 감사합니다.” 한 남자가 암울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로 직원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었다. 분명 라운지 클럽의 직원은 하와이의 모든 섬으로 가는 비행이 만석이라고 했었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비행을 배정받았단 말인가? 그제야 나는 과거 비슷한 경험을 떠올렸다.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의 경유 공항에서 발이 묶였었다. 터미널에 있는 모든 직원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지만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대체 항공편을 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5일 내내 만석이라고 했다. 10시간 만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출발 소속을 돕는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그곳의 직원은 마법처럼 다음날 아침 우리의 목적지인 뉴욕 직행 표를 손에 쥐어주었다.


항공사의 모든 직원들이 좌석 배정 시스템 접근에 동등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는 듯하다. 어떤 직원들은 우리가 Kayak이나 Booking.com과 같은 웹사이트를 뒤져보는 거나 마찬가지의 검색을 할 수 있을 뿐 실질적으로 우리를 도와줄 능력이 없다.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하물 수취대의 고객센터는 가장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항공편 재발행뿐 아니라 어딘가에 나뒹굴어져 있을 우리의 수하물까지 함께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옥에서 벗어나 드디어 만난 하와이라는 천국

Lession 3: 항공권 예약 전

항공업계 뉴스를 검색해 보라


‘12시간 만에 짐을 찾았어요.’ ‘저희는 여기 오늘 아침부터 있었어요.’ ‘줄 선지 7시간 됐어요.’ ‘직원들이 제 수화물이 어딨는지 모른대요.’ 머무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암울한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우리처럼 하와이로 향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시카고. 토론토. 샌디에이고. 목적지는 달랐지만 사연은 같았다. 우리의 항공편처럼 지연되었다가 취소된 것이다. 


“기장들은 근무 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대요. 비행이 지연되면서 근무 시간이 초과되어 다들 퇴근한 거래요.” 내 뒤에 서있던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상황은 이랬다. 지난 주말 미국 동부에서는 기상이변이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항공편이 지연되었다. 특히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동부 허브인 뉴왁 Newark 공항이 큰 타격을 입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결항은 나비효과였다. 7월 첫 주,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무려 3천 편을 결항시켰다. 이번 주 내내 항공업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사건이었다. 어차피 막판에 표를 구매한 상황에서 이 기사만 봤더라면 굳이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이상적인 비행 루트를 가지고 있는 항공편을 찾는 것만으로도 이미 버거운데 뉴스까지 챙겨보라니. 오바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야말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뉴 노멀'이다. 항공업계는 판데믹 시절 파산 위기에 이르자 정리해고와 조기은퇴를 강행했다. 여기에 기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판데믹 이전에는 아마 지금 같은 상황에 퇴근한 기장을 대신해 비행 편을 운행할 수 있는 대기조 기장들이 많았을 것이다. 다시 판데믹 이전만큼 여행수요가 올라왔음에도 그에 대응할 직원이 턱없이 부족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약간의 기상이변이나 파업 같은 변수에 공항은 마비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으로부터 대체 항공편을 받을 거라는 희망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 다음날 아침 떠나는 알래스카 에어라인의 1회 경유 항공편을 새로 예약했다. 

Lession 4: 최종보스를 찾아라. 


저녁 8시. 예정대로라면 하와이에 착륙하고 있을 시간에 우리는 안내 데스크의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4시간 만이었다. 왜 항공편의 모든 수하물을 자동적으로 풀지 못하냐는 질문에 직원은 고개를 으쓱한다. “몰라요. 분명한 건, 수하물 수취 요청을 넣어주시면 뒤편에 누군가가 직접 여러분의 짐을 찾아 줄 거라는 거죠.” 운전자 없는 자동차가 거리를 돌아다니고 로봇이 카푸치노를 만들어주는 실리콘밸리에서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한 공항 직원이 서울 가서 김서방 찾듯 ‘보라색 빛깔 파란색 트래블 프로 25인치 소프트 커버 가방 두 짝"을 찾고 있을 생각을 하니 기가 찼다. 찾는 데 두세 시간은 걸린다 하니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 


‘여행이란 공항에 모여 낯선 이들과 함께 줄을 서는 것인가'라고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을 아기를 힘겹게 잠자리에 눕히고 샤워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웠다. 지난 48시간 동안 퍼덕대며 쌌던 짐과, 아기와의 첫 비행을 위해 준비한 각종 장난감과, 이동하면서 몇 번이나 접었다 편 카시트와 유모차, 그리고 땀에 젖은 긴장감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에어비엔비 숙소가 생각났다. 그 숙소의 환불 불가 규정도. 우리는 반드시 가야만 했다. 하와이로. 


L은 짐을 찾으러 새벽 5시에 공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의 짐은 없었다. 놀라야 하는지 당연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안내 데스크는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직원은 한 시간 전에 우리의 가방이 ‘태그' 되었다고만 했다. 즉, 공항에 머물고 있는 것이 확인만 되었을 뿐,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걸 열심히 찾고 있는지는 모른다는 말이다. 안내 데스크와 달리 수하물 창고 직원들은 24시간 근무하지 않는다. 자정 전에 그들은 퇴근을 했고 그전에 우리의 가방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짐을 하와이 숙소로 보내달라고 항공사에 요청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2-3일은 걸릴 수 있으니까 일단 필수품을 백팩에 더 챙겨 와.” L의 문자에 억장이 무너졌다.


새 항공편은 샌프란시스코 공항보다 40분 더 먼 산호세 공항에서 출발한다. 나는 유모차와 카시트와 조금 더 빵빵해진 백팩과 아기를 낑낑대며 택시에 채워 넣고 L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픽업하기 위해 집을 다시 나섰다. 그동안 L은 안내 데스크를 네 군데나 돌아다녔다. 수하물 검색 요청을 넣고 또 넣었다. 수하물 운반 직원에게도 손을 부여잡고 사정했다. 그러다 눈에 띄는 직원 한 명을 발견했다.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여기저기 전화를 넣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L은 그를 쫓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했다. 


L의 직감은 맞았다. 그의 전화 한 통은 데스크 뒤편 직원들의 수취 요청보다 강력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찾았어요!” 드르륵 커다란 짐가방을 끌며 환호성을 보내는 이들이 그의 주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매니저급으로 보였다. 다른 직원들이 알려주지 않은 현실적인 조언까지 주었다. 수하물 창고 검색 및 운반은 사실 6시에나 재개된다던지, 어제 들어온 수취 요청건만 1000건인데 이제 고작 400건만이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화를 넣어 빨리 찾아보라고 할 테지만 금방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우리는 비행시간을 맞추기 위해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만에, 우리의 짐이 수하물 창고 입구에서 뱉어져 나왔다. L은 가방 두 짝을 끌고 공항을 서둘러 떠나며 그에게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은인이세요!!!!” 나는 가슴팍에 아기를 매고 있지 않았다면 이 ‘최종보스' 직원에게 큰절이라도 했을 거다. 일반 절차를 따르는 것보다 누군가의 전화 한 통화가 더 빠르게 먹히는 이 현실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말이다. 


*


나는 다행히도 이 글을 빅아일랜드에서 쓰고 있다. 석양 아래 마이타이를 한잔 하며 말이다. 알래스카 에어라인의 비행은 1분도 지연되지 않았고, 아기는 첫 비행에서 주변에 앉은 모든 승객과 친구가 되었으며, 낙오된 짐 하나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L은 등에 모래를 잔뜩 묻힌 채로 독서 삼매경이다. 아기는 인생 첫 수영에 햇살보다 밝게 웃는다. 그 광경에 모든 피로와 개고생의 억울함이 싹 가신다. 그래. 오길 잘했어. 

  
이 모든 과정을 함께 겪어낸 전우 L과 아기 J
에디터의 취향
주원 테일러 에디터의
공원 탐험기를 소개합니다.
상상하면 이루어지는 곳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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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블록 정도 걸으면 어김없이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고요해진 아이와 나는 어느새 공원 입구 작은 터널 앞에 와있다. 골든게이트파크로 산책하는 습관은 이때부터 생겼다. 갓난아이와, 머릿속을 끊임없이 헤매던 걱정과, 쩔쩔대는 초보엄마가 모두 눈을 감은 시간. 인간 주원이 잠시 고개를 드는 시간이다. 나는 아기의 꿈이 되어 탐험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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