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준비하는 과정이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요? 피드백 채널에서는 종종 '레터를 쓰는 일에 관한 레터' '레터 일지'에 관한 요청이 보였습니다. 과연 시작은 어디지? 레터 발행일을 달력에 체크하는 일? 원고를 요청하는 일? 아니면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 구독자 여러분의 피드백을 보면서 '아, 다음엔 이걸 해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일? 특별함은 없지만 한 번 적어볼까 해요. 제가 요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책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과 『그때 치마가 빛났다』도 소개해드립니다. 부쩍 추워진 날씨, 모두 건강 잘 챙기셔요!
 ⏳ 모래마케터의 신간 소개
🌡️'왜?'를 믿는 사람들

이 책을 읽고 잊고 있었던 하나의 일이 떠올랐어요. 몇 년 전, 저는 퇴사를 한 후 베를린에 건너가 살 생각이었지요. 목돈이 필요했어요. 친구와 함께 아르바이트 앱을 깔아 이른 시일 내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공장'에 취업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 우주복처럼 생긴 연한 하늘색 옷을 옷 위에 겹쳐 입고, 파마할 때 쓰는 비닐을 머리에 썼어요. 손에는 두 겹의 장갑을 끼고요.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라인장'의 말에 따라 공정을 바꾸어가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납땜을 하기도 하고, 솔에 약품을 묻혀 닦아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몫을 챙겨 독일에 가게 되었을까요? 저는 림프샘에 종양이 생겨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월급을 수술비에 보태고, 회복하느라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죠. 그 일터에는 오래 일한 슈퍼주니어의 멤버 규현을 닮은 언니가 있었는데 생리를 몇 년에 한 번씩 한다, 맨날 병원에 간다, 그런 말을 했었어요. 사람들은 농이랍시고 <광화문에서>를 <병문안에서>라고 바꾸어 불렀고요. 규현 언니는 돌연 소식 없이 퇴사를 했습니다. 수술 직후에는 단순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생각뿐이었어요. 나는 규현 언니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고 나니 나에게 일어난 일이 '일'과 무언가 연관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일에서 '문제'가 된 경험이 제 안에서 일어난 거죠.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에도 '왜 우리 아이는 아프게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왜?'라는 말은 파헤쳐지기보다 한탄이나, 좌절에 붙을 때가 많아요. 도대체 왜···. 파헤치기에는 우리는 너무 바쁘거나, 지켜야 할 것이 많거나, 너무나 혼자인 것 같으니까요. 그러나 여기 이 책에 '왜'의 꼬리를 물고, 말하고, 밝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르고 아이를 키우고, 모르고 퇴사를 하고, 모르고 회사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회사 후배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백혈병이든 암이든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단체가 있다고 연락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아이의 질환도 관계가 있을까 싶어 무작정 연락했다. 그렇게 반올림 사람들을 알게 됐다. (31)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단체와 직접 증언하는 노동자, 2009년 제주 의료원 산재 사건(간호사 4명이 선천성 심장 질환을 지닌 아이 출산· 5명 유산) 관계자, 노무사, 연구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록하신 희정 작가님께서 그동안 덮여 왔던 생식독성물질에 관한 문제, 그에 따른 2세 질환 문제, 재생산과 노동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엄마'가 어쨌길래 애가 저렇게 태어났어?" "생리통? 공부(일)하기 싫어서 꾀병 부리는 거지?"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예민하게 굴지 마" 글을 쭉 따라가다 보면 결국 뿌리는 깊게 내재한 사회 속 여성 혐오와 성 편견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여성 노동자의 입을 막았던 것은 무엇인가 깨닫게 되거든요. 저는 읽으면서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한문화)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1970년대 교과서를 보면 월경통은 "호르몬 불균형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성격장애"라고 했다. 여성은 생리 주기가 여성을 약화해 남성과 똑같이 일할 수 없다는 의학계 주장에 저항하는 동시에, 몇몇 여성은 정말로 생리 기간에 심신이 약화된다고 주장해야 했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302)

"한 사람이라도 더 힘을 보태야 좋은 일 아니겠어요?" '왜'를 위해서 모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없던 문제가 아니었는데, 왜 문제가 되지 못했을까 돌이켜보면 이 역시 여성의 위치 중 '엄마'라는 자리와도 관계가 있어요. '모성보호관계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출산과 육아문제에 대한 지원제도를 마련한 것으로 출산휴가의 30일 연장, 유급육아휴직제도의 도입, 남성근로자의 육아휴직사용인정 등 표면적으로 보호를 위한 조치로 보이나 여기서 핵심은 여성이 '출산하는 존재'로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산하는 존재로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임신하길 거부하거나, 임신중단을 하거나, 아픈 자녀를 낳을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 시댁의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걱정하는 엄마들은 감내를 택합니다. 여기에서 선택은 절대 자유와 등치시킬 수 없죠. 희정 작가님은 '생식독성 질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아빠'와 '엄마'를 나누고, 법의 이름마저 '태아(산재법)에 가두는 기존의 방식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태아산재'라고 납작하고 생경하게만 느껴지게 했던 것을 글 속에 엉겨있는 인터뷰, 연구 결과, 통계, 기록을 통해 가까이 살펴볼 수 있어요.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선생님께서 추천사에 실어주신 말처럼 노동권과 재생산권, 장애인권과 건강권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풀어냈거든요. 그리고 이 책은 그저 기록이 담긴 보고서가 아니라 기록이 글이 되기까지의 희정 작가님의 무수한 시선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할 일이 많거나 두려워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며 '왜'를 믿고 파고드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빛은 지금 이 순간의 현재*  

위 제목은 안미선 작가님이 『그때 치마가 빛났다』서문에서 사진가 필립 퍼키스에게 빌린 문장을 제가 다시 빌린 것입니다. 과거가 모여 현재가 된다는 말은 무언가 성취하려 할 때 많이 듣고 써보셨을 거예요. 자기계발의 말에서 쓰이는 경우 저 문장 속 과거는 바로 현재, 현재는 바로 미래가 되겠죠. 미래를 위해 지금을 달리겠노라···. 하지만 이 책의 현재는 현재. 지금에서 쓰였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현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빛'에게 "빛나고 있었다"는 고백을 하기 위해 과거를 따라가죠. 치마는 그 여정에서 동행하는 것이기도 하고, 빛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온 힘을 다해 외면해온 여성의 돌봄과 그 돌봄에서 비롯되는 힘에 관한 이야기, 모성적 사유,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부조리와 비애가 치마를 통해 이어집니다. 
치마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초등학생 시절 학예발표회에서 캉캉 춤을 출 수 있길 바랐습니다. 춤을 출 때 입는 캉캉스커트가 예뻐 보였거든요. 발로 힘차게 앞을 차며 그 스커트를 나풀거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반에서 첫 번째로 키가 컸던 저에게 맞는 캉캉스커트는 없었어요. 선생님은 저에게 댄스스포츠의 '남자 역할'을 권했습니다. 검은색 바지를 입었어야 했죠. 그날 일기에 속상한 마음을 모조리 적었습니다. 선생님은 참 잘했어요 도장 대신에 빨간펜으로 빼곡히 답글을 적어주셨어요. "치마 입은 여자만 여자는 아니란다. 바지를 입은 여자도 멋질 수 있어. 모래는 다리가 길어서 댄스스포츠를 출 때 앞으로 멀리 나아갈 수 있잖니?" 제 빛도 현재에 도착한 셈입니다. 

에세이는 결국 다 남 얘기인데 우리는 왜 그것을 읽는 걸까요? 남에게 너무 관심이 많아서? 한 사람을 너무나 알고 싶어서? 이유는 앞서 말한 것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에게 있는 것이 내게도 있을 때, 그래서 곧 나를 알게 되는 순간에 있기도 할 겁니다. 안미선 작가님께서 무엇이 자신을 살렸고, 키웠고, 또 누구에게 빚졌는지 말하는 동안 나 역시 내 삶 속에서 무수히 자리를 내어준 여성들을 생각해보게 돼요. 여성이 또 다른 여성들을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이 땅에 어떤 존재로 와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또한 이 책의 도입은 생애 주기에 맞추어져 내 삶의 리듬과 견주어 볼 수 있게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 엄마의 포근함을 찾을 때면 만져졌던 치마, 여덟 살 때쯤 만났던 마론 인형의 치마, 열두 살쯤 생긴 원피스··· 엄마의 치마 속에서 포근함을 찾지 않았더라도, 마론 인형을 가져본 적 없더라도 가게 주인이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까만 비닐봉지에 생리대를 넣어준 경험과, 교복 치마를 입고 기합으로 엎드려뻗쳐를 할 때 매만져댔던 치맛단을 기억하는 식으로요. 이러한 구체적 경험은 "헐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하면서 은어로 작용할 테지만, 이들의 발화가 모인다면 공통의 기억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더 많은 여성의 발화를 도울 수 있을 거예요. 안미선 작가님이 살아온 삶 속의 어머니, 이모, 여자 친구들, 버지니아 울프, 덴동어미, 무당과 신을 만나 제가 멋진 선생님을 기억해냈듯이 여러분도 살지 않은 삶 속에서 살았던 삶을 만나는 기분을 누려보세요. 반가울 거예요. 

*시릴라 모젠터·필립 퍼키스, 《옥타브》, 안목, 2020.

오월의봄'es SAY 

🕊️ 모래 마케터
평소에 계획을 잘 세우는 타입은 아니지만(극강 'P'ㅡ즉흥ㅡ인간) 그렇기 때문에 삶에서 마주했던 절망들을 일터에서 반복할 수는 없기에 일정을 잘 체크해둡니다. 얘야, 오늘 레터를 보냈으니 다음 레터를 보내기 14일 전이구나···. 얘야,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주말에 쉬고 월요일 하루 일하면 그 다음날 레터를 보내는 날이구나···. P의 계획이라 함은 이런 식입니다. 최소 3일 전에는 원고의 85%정도는 다 마쳐놓고, 그런 건 아니죠. 하지만 이것도 엄청나게 도움이 됩니다. 일명 <쪼아야 한다!> 방식.

구성원들과 회의 날을 정해요. 회의에 기획서를 들고 가거나, 누군가의 독단적인 허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각자 '이런 건 어떨까요?' 의견을 주고 받아요. 지난 주에는 저자 인터뷰가 나갔는데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소개하면 어떨까요? 피드백 채널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있었어요, 이번 글은 누가 쓰실래요? 제가 쓸게요. 제가 쓰는 날은 이렇게 씁니다. 우선 책을 읽고 써야 하는 콘텐츠가 대부분이니 주제가 정해지면 바로 독서에 돌입해요. 2주 안에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마쳐야 하니 책을 동시에 많이 읽어야 하는 날에는 병렬적 독서를 합니다. 노트를 펼치고 이 부분을 함께 독자분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적습니다. 최대한 쉽게 적어둬요. 그렇게 적어내려가다 보면 엮어서 소개할 책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그럼 또 그 책을 펼쳐 해당 부분을 목차에서 찾고 관련 내용을 적습니다. (저만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레터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메모인 듯해요. 
책을 소개할 때 오류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관련된 단체나 역사적 사실이 있다면 구글의 문을 왕왕 두드립니다. 내가 쓴 것이 괜찮겠느냐, 이대로 독자분들의 메일함에 박제되어도 정녕 괜찮겠느냐 묻습니다. 물론 단 것의 도움도 많이 받죠. 이번 레터의 조력자는 옆자리 만두맨 편집자님이 공급해주신 크랜베리오트밀 널담 쿠키였습니다. 가장 눈을 덜 깜빡이는 단계는 마무리 단계예요. 3화를 받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레터> 3화, ←이렇게 제목이 보내졌어요. 제목을 입력하다가 키를 잘못 눌러 그대로 전송이 되었던 것인데 메일은 한 번 보내드리고 나면 절대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한나절 한숨을 쉬었더랬죠. 최종_최종_최종_F으로 확인해도 꼭 전송 후에 오탈자가 발견되는 마법이 일어나기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감한답니다. 

사실 위의 내용은 글과 관련된 모든 마감을 하시는 분들이 겪는 일이겠죠? 조금 뻔하기도 하고요. 제가 레터 속 책 소개를 통해 전달해 드리고 싶은 점은 '포인트'예요. 이렇게 한번 읽어보세요. 여기를 중심으로요. 이런 걸 전해드리고 싶어요. 쉽지 않았던 내용도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말을 요리조리 바꿔보기도 합니다. 소개와 말 걸기를 결합하는 그 과정이 저는 정말 재미있다고 느껴요. 물론, 마감날 당일에 하지만 않는다면요. 아, 제가 레터 준비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여러분께 말을 걸기 시작하는 인트로를 적는 시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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