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해의 각도가 변하잖아요. 저는 해의 각도와 그림자의 길이를 보며 비로소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채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겨울해의 각도를 참 좋아합니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낮고 길게 드는 빛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마음 깊게 파고드는지, 햇빛에도 성격이 있다면 겨울햇빛의 성격은 다정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계절에 유독 유리잔의 그림자 사진을 많이 찍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아무래도 김장을 해야죠. 중년의 조여사(=엄마)와 친구들은 근거리에 사는 끈끈한 관계라 모여서 김장을 해왔는데요, 올해는 다들 사정이 있어 김장을 따로 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고로 올해는 가족들이 모여서 같이 김장을 했습니다. 절임배추를 사왔기 때문에 아주 복잡한 과정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가족들과 뭔가를 했다는 기분이랄까요? 저는 조금 뿌듯했는데, 조여사님은 힘들어서 다음엔 다시 친구들이랑 할거라며 몸져 누우러 가셨습니다 😇 

이날 담근 김장 김치랑 막김치는 가지고 와서 잘 먹고 있어요. 사실은 언젠가 저도 조여사와 친구들처럼 4~5명이 모여서 10포기 정도의 김장을 하고, 나눠가지는 모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서울에 김치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사실 묵은지파라....새김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아마 올해 담근 김치는 내년 봄쯤, 조금 신맛이 돌기 시작할때부터 먹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안녕! 김치냉장고 한 구석에서 잘 익고 있길 바래!

김장 하다 갑자기 양파? 이게 뭔소리야....싶으시죠? 하지만 구독자님 이제 아시잖아요 이게 바로 제 스타일이라는 것을...맥락이 중요합니까...! (뭔소리야 콘텐츠에서 맥락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 갑자기 웬 양파야 그쵸. 근데 겨울이 되니까 프렌치어니언수프가 갑자기 마음속에서 떠다니지 뭐에요. 따끈한 프렌치 어니언 수프....근데 거기에 들어가는 양파 볶기가 워낙 오래걸리다 보니까 한 번 볶을 때 많이 볶아두면 좋거든요. 냉동 해 두었다가 조금씩 꺼내 쓰면 참 마음이 든든하고 그러니까요. 그리하여 겸사겸사 양파를 좀 대량으로 사서 볶게 된거죠. 

아니 근데 생각을 해보니까요, 김장이라는게 꼭 김치를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긴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 채소 요리를 만드는 것이잖아요....? 저도 겨우내 먹을 양파를 좀 볶겠다는 것이고....? 그럼 대충 양파김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양파 6kg를 전부 까고, 썰고, 볶아 캐러멜라이즈 양파를 만드는 김장을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This is 고통의 서막🤸‍♂️

근데 양파 6kg가 말이 6kg지 사실 거의 열다섯개에 가까운 양이었거든요. 칼로 썰었다간 분명히 제가 양파 볶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이 뻔해서 슬라이서로 샥샥 다 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제가 가진 가장 큰 사이즈의 냄비에도 양파 15개는 들어갈 수 없어서 두 번에 나눠서 양파를 볶아야 했습니다. 지금 사진 속에 있는게 그 반절의 양이에요. 자 본격적으로 양파를 볶아볼까요?

냄비에 올리브오일을 넉넉하게 두르고 양파를 붓고, 센불로 가열하기 시작합니다. 양파를 처음에 볶기 시작하면 물이 많이 나와요. 양파에서 나온 물이 끓고, 양파가 그냥 삶아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초반에는 센불로 볶기 때문에 바닥에 눌어붙을 수 있어서 열심히 볶아줘야 합니다. 너무 뜨거우면 중불로 줄여줘도 되는데 저는 조금 힘들어도 초반에 센불로 빠르게 물기를 날리는 것을 선호해요. 양파의 양이 30%정도 줄어들면 불을 중약불로 바꿔줍니다. 

이후에도 계속 바닥이 눌지 않게 볶아줍니다. 물기가 꽤 많이 줄고, 양도 많이 줄었죠? 여기까지 한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몇 퍼센트쯤 됐다고 이야기해야할까, 아마 10%정도? 아직도 물기가 촉촉하죠? 아래쪽에는 고여있기도 하고요. 

계에속 볶아줍니다. 이때가 한 20분 정도가 더 지났을 때였어요. 수분이 더 많이 줄었죠? 슬슬 양파가 신나게 눌어붙기 시작하는데요, 진짜 잠깐이라도 정신을 팔면 바로 눌어붙기 시작합니다. 사진의 정도는 괜찮아요, 근데 눌어붙으면 정말 빠른 속도로 타버리거든요. 한 곳이라도 타면 이 양파는 모두 버려야 합니다. 탄맛이 나면 수습할 방법이 없거든요. 그래서 멈추지 않고, 불 앞에 서서 바닥의 눌은 부분들을 싹싹 긁어가면서 양파를 끝없이 볶아줍니다. 

수분은 아직 꽤 남았는데, 너무 눌어붙는다 싶으면 기름을 추가해줍니다. 이때 버터를 넣어도 되는데, 저는 버터를 마지막에 넣어서 풍미를 돋우는 편을 좋아해서 일반 올리브오일/식용유를 추가해줘요. 많은 양은 아니고 한 1T정도? 기름을 넣은 다음에 다시 볶는 과정으로 돌아갑니다.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때부터는 편법도 없어요. 그냥 우직하게 불 앞에서 서서, 냄비 바닥을 긁어가며 양파를 볶아야 합니다. 이 때 가장 좋은 친구는 역시 OTT랄까...? 무지성으로 긴 시리즈물을 보면서 양파를 볶으면 드라마 한 시즌 정도는 아주 쉽답니다. 

'양파를 도대체 언제까지 볶아야 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과정인데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연신내의 티그레 전문점 'TIGRE'의 이주연 셰프가 정확한 답을 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그렇습니다. 그것만이 정답이에요. 정말 계속 볶다 보면 색이 더이상 변하지 않는 때가 오거든요. 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이 들 즈음 마지막 색이 나오기 마련이라서요. 그 대답만큼 완벽한 답은 없었다고 아직도 생각합니다. 

근데 사실 양파를 볶다 보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순간과 더불어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걸 누가 알아주나 싶은 순간이 있어요. 라구를 만들 때도 그렇고요. 좀 덜 볶아도 사실 되거든요. 대충 이쯤에서 멈춰도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제가 이걸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근데 그럴때마다 생각합니다. 제가 알잖아요. 조금 덜 볶았을때의 아쉬움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조금 더 애썼을때, 이것이 얼마나 더 맛있어질 수 있는지, 그걸 제가 알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중간에 멈추겠다는건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니까요.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 100%의 진심일 수는 없겠죠. 내가 100%, 아니 그 이상의 진심으로 임해도 과정중에 생기는 다양한 일들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도 분명히 많습니다. 하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80%의 마음만 쓰면 안되니까요.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 임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으면 되니까. 저는 누구 앞에서라도, 어떤 순간에라도 당당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양파를 볶을때마저도, 진심이고 싶어요. 

또 너무 거창해지고 말았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양파를 볶았습니다. 색이 갑자기 확 변한 것이 보이시나요? 여남은 물기도 없고요. 이 타이밍이 되면 주걱에 양파가 닿는 촉감까지도 달라집니다. 어쩐지 착착 감긴다고 해야하나? 이때가 한 2시간 30분을 얼추 지나가고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이때, 이제 버터를 넣어줍니다. 버터를 넣고 마지막으로 바닥의 눌어붙은 부분을 박박 긁어가며 양파를 마무리합니다. 버터를 넣으면 안그래도 착착감기던 양파가 정말 스트레스볼처럼 탱글해집니다. 표면이 반짝거리고요, 볶는 손맛도 좀 달라져요. 이 포인트를 알게 되면 이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냥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으로 만족이 되지 않는, 그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에요. 

다 만들어진 캐러멜라이즈 양파는 비닐에 넣은 후에 판판하게 펴서 냉동실에서 얼려줍니다. 액체가 아니다보니 막 딴딴! 하게 얼지는 않는데요, 그래도 한 1시간 정도 후에 꺼내서 칼등으로 적당히 격자 자국을 내주고 다시 얼리면 다음 번에 사용할 때 원하는 만큼만 떼서 사용하기가 편해요. 넓고 얇게 얼렸으니 녹을 때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구요. 자 이렇게 양파 김장이 끝났습니다.....드디어....드디어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 양파 6kg는 냄비 하나에 다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잖아요.....그렇다면 저는 이 과정을 몇 번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두번...두번이나 했죠...그래서 불 앞에 6시간동안 계속 서있었습니다....같이 양파를 까던 친구도 제 옆을 떠나고 혼자 서서 열심히 볶고 있었어요. 아이고 허리야. 얼마나 오래 볶았는지 이후에 3~4일 동안 집에서 양파 냄새가 빠지질 않아서 혼났어요. 환기를 아무리 해도 빠지지 않는 진한 양파의 스뭴🧅🧅

양파 6kg를 볶았는데 남은건 정말 이렇게 한줌입니다. 보람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맛이 다 저기 압축되어있다고 생각하면 짜릿하기도 하고요. 결국 양파를 볶기가 끝난 것은 꽤나 야심한 밤의 일이었어서, 바로 곯아떨어지듯 잠에 들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끓여야지....하고 생각하면서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프렌치어니언 수프 타령을 하면서 눈꼽도 떼지 않고 주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작은 냄비에 어제 볶아둔 캐러멜라이즈 양파, 와인, 물, 비프스톡을 넣고 중약불로 끓이기 시작했어요. 진짜 저 비주얼 그대로 15분정도 끓였습니다. 원래는 양파를 볶은 냄비에 와인이나 고기육수를 넣어가면서 그 냄비 안에 남은 눌은 것들을 싹싹 녹여내는 과정 있는데요, 어제 썼던 냄비가 워낙 큰 냄비라 그건 무리일 것 같아서 다른 냄비에 볶은 양파만 넣었어요.  

근데 양파 껍질을 벗기고 양파를 한참 써는데 눈물이 정말....앞을 가리잖아요. 저는 익숙해서 그런지 좀 덜한 편인데, 이날 저랑 같이 양파 껍질을 벗기고 있었던 제 친구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거있죠. "나만 눈물나?"하고 오열하고 있는 친구가 너무 웃겨서 아침에 수프를 끓이면서도 그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양파수프를 이야기할 때 눈물젖은 수프라는 표현을 써요. 양파를 썰때 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으니까 😂 물론 2~3시간동안 불앞을 지키는 제 허리가 흘리는 눈물이기도 할 듯....

프렌치 어니언수프는 원래 바게트와 그뤼에르 치즈로 마무리해야하는데, 집에 그뤼에르 치즈가 없어서요. 와중에 프렌치어니언수프 하나 만들겠다고 그뤼에르 치즈를 사기도 뭐해서, 피자치즈와 페코리노치즈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빵도 며칠 전 먹고 남아 딱딱해진 사워도우를 올렸고요.

참 별 것 없죠. 근데 후후 불어서 한 입 떠 넣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양파국밥 아니냐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뜨끈하고 든든한 그런 어떤 맛.....크....지난주에 마신 술도 해장되는 것 같다구요! 왜 프랑스 사람들이 굳이 이 난리를 쳐서 양파를 볶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 누가 처음 이런 말도안되는 과정을 시작했을까요? 참 잘했어요 스티커 붙여드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사실 이번 레터를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캐러멜라이즈 양파 만드는 이야기가...재미가 있나 싶어서요. 이미지도 계속 비슷하고, 특별한 과정도 없고. 제 사진첩을 보시면 알겠지만 3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정말 잔잔한 그라데이션일 뿐이라서요. 하지만 꼭 쓰고싶었습니다. 양파를 볶는 동안 떠오른 '진심을 다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꼭 하고싶었거든요. 대단한건 아니지만, 이야기가 저를 찾아오는 순간에 그걸 글로 쓰지 않을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 순간은 아주 특별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렌치 어니언수프가 정말 맛있기도 했고요!

양파 1개

올리브오일 적당량

버터 1t

와인 약간

물 300ml

비프스톡 큐브 1/2개

소금 약간

바게트 1조각

그뤼에르 치즈 2T

하지만 솔직히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집에서 해먹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고, 솔직히 정말 솔직히 추천하고싶지는 않거든요 여러분....글이나 사진으로 볼 때면 정말 약간 환상속의 음식같은 그런 것이 되어버리는데 사실 만들다보면 이게 진짜 사람이 할일인가 싶고요....그리고 또 처음 끓여보면 기준점이 없어서 이 니맛도 내맛도 아닌 것이 완성되어 버리기 때문에 말이죠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마음입니다....오늘의 레시피는 진짜 "나는 체력이 넘치는데, 너무너무 심심하고 집에 양파가 너무 많다!!" 이런 분들에게만 추천하는 바...! 하지만 구독자님, 저는 맛있는걸 혼자 먹는 의리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비장) 그래서!! 대신 정말 맛있는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맛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네군데 모두 클래식 프렌치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곳인데요, 분위기도 프랑스 그 자체인 곳들이라 연말을 보내기 아주 좋은 곳들이기도 합니다. 연말을 맞아 지인들과 해를 마무리하는 멋진 시간을 계획하고 있다면 괜찮은 선택지가 될 것 같아요. 프렌치 어니언 수프 뿐만 아니라 모든 메뉴들이 다 아주 맛있는 곳들만 추천했으니까! 다양하게 드셔보시길 추천해요! 와인 한 잔도 곁들이시면 더욱 좋을 것 같고요. 🍷 구독자님의 눈동자에 치얼쓰✨

뭔가 겨울이라서 그런가? 평소보다 조금 센치했던 느낌이 드네요. 계절이 급격하게 바뀌고 날이 추워지는 시기에 마음이 약간 울렁거리기도 하는데, 이럴때일수록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면서 지내야 해요. 이번 겨울 독감이 굉장하다던데, 독감 예방 주사 꼭 맞으시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그럼 저는 12월에 돌아올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