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 작가

자원봉사자 오디오 클립 만들다가 멘탈이 와르르😱

 

 평소 돌멩이 수프를 한 그릇 얻어먹으면 무슨 맛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림책 『돌멩이 수프』와 비슷한 『단추 수프』도 있지만 아무래도 냄비에 머리통만한 돌멩이가 들어 있으면 맛이 더 좋지 않을까요? 늑대가 자루에 돌을 들고 찾아온 곳은 닭네 집이었습니다. 닭은 자기를 잡아먹으러 온 줄 알고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왠지 늑대의 말에 믿음이 가고 평생 늑대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호기심 때문에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처음 사람을 만날 때의 기분이 그렇습니다. 평생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해 오신 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오디오클립으로 제작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처음 만난 날 저도 어색하고 그들도 어색했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오디오클립으로 만든다는 것은 배가 산으로 갈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일인 데다 초반에 헛발질을 많이 해서 이야기의 실타래가 엉킨 느낌이었습니다. 모두들 웃고 있지만 결과물에 대한 압박감, 지루한 주례사처럼 될 것 같은 두려움, 자원봉사자가 공개를 원치 않을 정도의 불만족스러움.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끝에 생각난 그림책이 『돌멩이 수프』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는 파격만이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예술적 결과물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마지막 토크쇼를 이어 나갔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썼던 자술서, 소모임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행간에 감춰진 문장들을 찾아내고 빙산의 일각처럼 일부분만 나타난 것을 과감히 드러내 질문으로 만들었습니다. 돌멩이를 넣고 돌멩이 수프를 끓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인생은 재료가 되고, 사건은 조미료가 되어 요리가 익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이런 맛이었구나! 돌멩이 수프가 이런 맛이었겠구나!

 서늘하게 이야기하자면 남의 인생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 관심사가 되기 위해서는 관심을 둘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돌멩이 수프가 맛 있는 까닭은 돌멩이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멩이가 들어 있지만 돌멩이를 잊어버리는 요리. 그것이 바로 자원봉사 스토리텔링을 대하는 태도이자 목표였습니다.

 

 엄청난 헛발질과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사실은 ‘자원봉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수투성이에다, 부끄럽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재료로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부끄러운 경험을 과감하게 들추어내기도 하고 난감한 질문들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돌을 하나 던지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 자리를 빌려 자원봉사자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대들을 빛나게 하려면 저는 조금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박국찬 선생님께 정중히 사과를 드립니다. 박국찬 선생님의 오디오 클립 작업은 작가로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귀중한 경험과 고귀한 자원봉사 이야기들이 그저 그런 교훈 이야기로 남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고민했었고, 그래서 날카로운 질문들도 많이 던졌습니다. 마치 ‘극장 골’처럼 터져 나온 막판의 이야기보따리는 희열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다 받아주시고, 오디오클립이 제작되었을 때도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 주셨습니다. 나는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 돌멩이 자루를 등에 지고 선생님의 시간 속으로 요리를 하러 갔습니다. 박숙자 선생님, 홍현이 선생님, 김정득 선생님, 고은실 선생님, 황규순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제주시자원봉사 오디오클립은 홈페이지 들어오셔서 오른쪽 끝 ‘교육’이라고 적혀 있는 곳을 클릭하시면 여섯 가지 오디오클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변이 조용할 때, 마음이 여유로울 때, 시간이 좀 있을 때 들어주세요. 꼭.